기업간 정보공유 '가상기업' 출몰

디지털혁명은 기업의 형태도 바꿔놓고 있다. 이제까지 기업이라고하면 한개 법인만을 생각했다. 법인의 범위를 넘는다 해도 그룹계열사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생산 수주 물류정보를 기업내부뿐 아니라 기업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가상기업」이 출현하고 있다. 즉 가상기업은 단일한 법인은 아니지만 특정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단일 기업처럼 활동하는 기업을 말한다. 기존의 그룹계열사가 지분소유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라면 가상기업은 특정 상품을 중심으로 생산과 물류활동을 기준으로 접근한 것이다.가상기업은 기업간 정보공유가 자유롭게 되면서 현실화됐다. 이전에는 EDI를 이용해 수주정보나 생산정보를 주고 받았지만 정보공유에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SCM(Supply Chain Management 총 공급망관리)이 기업과 기업을 긴밀하게 연결함으로써 서로 다른 기업의생산라인이라도 단일기업의 공장처럼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세계 최대의 반도체 조립업체인 아남반도체는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의 칩소자를 조립(패키징)하고 있다. 따라서 아남반도체의 생산계획은 TI의 주문량이나 주문시기 등에 좌우된다. 그런데 TI와 아남반도체에는 공급망관리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서로 칩의 주문상황 재고 및 생산능력정보를 완벽하게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게 돼있다. 따라서 아남반도체는 소유관계에서는 TI와 별개회사지만 TI칩 생산을위해서는 동일한 기업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특히 물류와 생산의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두 기업이 내부정보를 상당부분 공유하는관계까지 가는 것은 지분으로 얽매여서가 아니라 두 기업의 생산능력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이해관계 때문이다.◆ 삼성전자·아남반도체 시험운영중이처럼 가상기업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인 SCM은 크게 △기업 안팎의 가용 자원, 생산비용, 노동력, 자재, 운송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연간 혹은 월단위로 자원관리계획이나 전략을 수립하는기능을 제공하는 「공급계획」 △모델링이나 통계적 기법을 이용해월단위 혹은 연단위로 상품수요를 예측하는 「수요계획」 △현장생산라인의 일정을 조정하는 기능으로 분단위로 일정을 조정하는「생산일정관리」 △생산품이나 부품 혹은 자재의 이동을 분단위로조정하는 「물류」 등 4가지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기업간 공급망관리는 생산 및 물류를 통합관리하는 이상을 실현한소프트웨어로 각광받으며 미국 및 유럽을 중심으로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조사전문기관인 포레스터리서치는 이 시장이 매년35%씩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96년에는 시장규모가 13억5천만달러였는데 2000년에는 3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국내에서 이런 개념으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기업은 아직 손에꼽을 정도다. 올해 초 삼성전자 반도체부문과 아남반도체가 i2테크놀러지의 「리듬」을 이용해 구축을 마치고 시험운용중에 있다.i2테크놀러지 외에 공급망관리 패키지 개발업체로 급성장하는 기업으로 매뉴지스틱스 레드페퍼 로질러티 등이 있다. 특히 i2테크놀러지는 SCM패키지인 「리듬」으로 급성장하는 기업으로 지난 92년이래 매년 2배 이상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이 1억6천5백만달러였다는데 올해 초 미국 포브스지의 ASAP이 선정한 「가장 역동적인 기업」중 1위에 오르기도 했다.SCM이 주목받는 까닭은 ERP와 상호 보완관계를 이루며 「수요공급의 완벽한 조절」이라는 오랜 이상을 현실로 맞을 수 있다는 기대때문이다.ERP는 기업내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업무방식을 혁신하는데상당한 효과가 있지만 생산계획이나 공급계획을 수립하는 기능은취약하다. 이는 당초 ERP가 기업내 업무를 자동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서 설계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ERP를 사용하더라도 최종적으로계획을 수립할 때는 정보시스템에서 출력된 결과를 보고 사람의 머리로 판단하거나 스프레스시트를 이용해 분석해야 했다.◆ SCM·ERP, 상호보완·경쟁 관계 유지또한 ERP패키지로는 지역별로 산재해 있는 물류시설이나 해외에 구축한 생산기지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설사 두개의 공장이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해도 ERP는 두 공장을 하나의 생산라인으로 간주하지 않고 별개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 각지에산재한 공장이나 물류시설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계획을 수립하려면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이런 이유로 ERP업체와 SCM업체 사이는 상호협력적이지만 경쟁관계이기도 한 애증관계에 놓여 있다. 이전에는 SCM이 ERP의 보완적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역전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SCM의 급성장에 대한 ERP업체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새로 SCM패키지를 개발하거나 전문업체를 인수하는 것이다. 피플소프트는 SCM전문업체인 레드페퍼를 인수해 자사의 ERP에 SCM 기능을보강했고 SAP는 자체 개발에 나섰다. SAP은 APO란 이름으로 SCM패키지를 올해 중반 테스트를 거쳐 연내 상용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인터뷰 / 피터젠케 SAP 아시아 태평양지역 총괄 부회장세계 ERP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SAP은 미래를 SCM에 걸고 있다. 지난 4월초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동북아지역 SAP사용자대회에서SAP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도 공급망관리를 통해 사업구조를 바꾸라는 메시지와 사업구조를 바꿀 때는 SAP의 APO(Advanced Planner &Optimizer)를 이용하는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메시지였다.APO는 SAP이 협력관계에 있던 i2테크놀러지와 관계를 끊고 독자적으로 내놓은 SCM패키지다. SAP은 APO를 이용해 수요예측과 공급관리 생산일정 조정 물류관리 등을 모두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4월 테스트버전을 선보였고 올 7월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일본에서는 소니에서 시험적으로 설치 운영할 계획을 잡고있다. 일반 사용제품은 연내 출시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SAP가 심혈을 기울여 APO를 내놓았지만 i2테크놀러지를 따라잡기는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피터젠케 회장은 『APO가 1차버전이라 i2의 「리듬」보다는 다소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충분히 따라잡을 수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젠케회장은 『현재 APO는 다소 기능이 떨어지더라도 R/3 4.0과 통합패키지로 제공된다는 이점과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젠케 회장은 또 『4.0부터는 R/3가 BAPI(Business ApplicationProgramming Interfaces)라는 개방형 프로그래밍 언어로 무장하게돼 R/3가 아닌 어떤 시스템과도 통합성을 높일수 있다』며 『PC에서 윈도가 소프트웨어의 활용 및 개발의 기반이 된 것처럼 R/3는비즈니스소프트웨어의 기반이 될것』이라고 주장했다.또한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방대한 양의 업무프로세스 노하우역시 SAP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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