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도 키우고 시장도 넓히고

지난 4월초 존 리드 씨티코프 회장은 트래블러스와의 합병을 공식발표하며 『이번 합병으로 씨티그룹의 고객 수는 멀지않아 10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10억명은 두 회사의 현재 총 고객수(1억여명)의 10배로 지금 지구상에서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거의모든 인구를 합친 것에 육박하는 규모. 샌포드 웨일 트래블러스 회장도 『씨티와의 합병은 상품과 고객이 결합한 것으로 무한한 상승효과를 낼 것』이라며 존 리드 회장의 호언에 맞장구를 쳤다.사실 소매금융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씨티코프와 증권 보험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춘 트래블러스의 합병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적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데 많은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존 리드 회장의 「10억명 고객확보 전망」은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얘기다. 씨티코프와트래블러스의 합병 발표에 세계 금융계가 경악한 것도 바로 이런이유다.메가머저(거대합병)가 노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로 그런 시너지효과다. 서로 다른 강점들을 지닌 두 회사가 합쳐 그 이상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얻자는 것이다. 1+1로 2가 아니라 그 훨씬 이상의효과를 거두자는 게 합병의 근본 목적이다.구체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케이스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메가머저는 덩치를 키워 세계적인 시장지배력을 노리는 것이고 어떤 경우는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합병을 시도한 것이다. 또 경영합리화를 위해 기업간 합병이 성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대형화로 시장 장악최근 빈번히 이뤄지고 있는 거대합병의 가장 일반적인 목적이다.기업 규모를 2배 3배로 불려 세계적인 시장지배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는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에 필요한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게 지난 95년 성사된 록히드와 마틴 마리에타의 메가 머저. 미국 방위산업의 2, 3위 업체인 록히드와 마틴이 합쳐 탄생한 록히드 마틴은 매출 2백30억달러, 종업원17만명으로 맥도널 더글러스(MD)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방산업체로부상했다. 당시 미국 방산업계는 냉전종식으로 인해 경영이 악화되자 M&A를 통한 감량경영을 단행하고 있었다. 지난 93년 록히드가제너럴 다이믹스의 F16전투기 생산사업을 인수한 것이나 94년 노드롭과 그루먼이 합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런 치열한 M&A경쟁하에서 록히드 마틴은 초대형 합병을 통해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강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서로의약점을 보완하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연간 26억달러의 원가절감을거둔 것도 무시못할 성과였다. 록히드 마틴은 이후에도 로럴(96년)등과 잇달은 짝짓기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 현재 미국의 방위산업은 록히드 마틴과 보잉 레이티온 등 빅3가 분할 점령하고 있는 상태다. 이밖에 스위스의 시바가이기와 산도즈라는 제약업체가 합병해 세계 1위의 제약업체로 떠오르는 등 세계시장 지배를 위한 메가머저의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씨티코프와 트래블러서의 합병도 대형화를 통한 시장확대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해외 진출전략 일환다른 나라간이나 대륙간 거대합병의 경우에 이런 목적이 부가적으로 붙는 경우가 많다. 어떤 지역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그 지역에서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과 아예 합병을 시도하는게그렇다. 최근 세계 자동차업계를 긴장시킨 독일의 다임러 벤츠와미국 크라이슬러의 합병 추진건에서도 해외진출 효과를 간과할 수없다.실제로 두 회사가 합병되면 벤츠는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북미에든든한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크라이슬러 입장에선 현재 1%에 불과한 유럽시장의 셰어를 단번에 12%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크라이슬러의 경우 미국시장에서의 만년 3위 자리를 탈출하기 위해선 유럽지역 판매확대가 필수적이었는데 벤츠와의 합병을 통해 길을 찾은 셈이다.또 벤츠가 일본의 닛산자동차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고 닛산디젤을 인수키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벤츠는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에서 생산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닛산에 접근했다. 마침 경영난 타개의 돌파구를 찾고 있던 닛산과 이해가 맞아 떨어져 두 회사간 합병과 제휴 논의는 급피치를 올린 것이다. 한편 이런 차원에서 보면벤츠 입장에선 아시아 생산거점을 닛산으로 정했기 때문에 2.2%의지분 참여를 하고 있는 한국의 쌍용자동차는 상대적으로 그 효용가치가 떨어졌다고 볼수도 있다.●합리화로 경쟁력 회복경영합리화 차원에서 경쟁회사 끼리 합병해 성과를 거둔 예도 적지않다. 지난 96년 일본의 마쓰다가 미국 포드에 합병된 것이 그렇다. 일본의 5위 자동차 업체였던 마쓰다는 엔고에 따른 수출부진과내수판매 전략 실패로 95년 누적적자가 7백50억엔에 달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종업원을 4천여명이나 감원하는 등 자구노력을 기했지만 역부족이었다.이때 마쓰다는 세계 2위의 자동차 기업인 포드에 지분을 팔고 경영권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포드는 아시아 시장에서 기반을 구축해야했고 소형차 개발을 위한 파트너를 찾고 있던 차여서 마쓰다의 합병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이에 따라 마쓰다는 포드에 인수된 뒤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을통해 97년부터는 60억엔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경영정상화를 달성했다. M&A를 통해 적자기업이 흑자기업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예이다. 선진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해외 M&A를 적극 활용한사례이기도 하다.◆ 거대합병의 특징메가 머저는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점 외에도 종전의 M&A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즉 시장지배력을 목적으로 한 「전략적 M&A」라는 점이다.세계 산업계에는 이번 메가 머저 붐 이전에도 몇차례의 M&A 붐이있었다. 멀게는 19세기말에 동일업종 기업간의 수평결합이 성행했다. 이어 20세기 초에는 일관생산체제를 확보하기 위한 수직결합이유행했고 60년대에는 사업다각화를 겨냥한 이업종간 M&A가 큰 조류를 형성했다. 가장 가까운 M&A붐은 80년대에 일었던 적대적 M&A다.그중에도 기업을 사들인 후 이를 운영하기 보다는 자산매각을 통해차익을 얻는 기업사냥식 M&A가 주종을 이루었다. 특히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한 후 이를 매각,은행부채를 갚아버리는LBO(Leveraged Buyout)가 각광을 받았다.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리처드 기어가 맡은 역할이 바로 이 기업사냥꾼(레이더스)이었다.이에비해 90년대 후반의 전략적 M&A, 즉 메가 머저는 세계시장 제패와 생존을 위한 동종업체간의 우호적 M&A가 주류를 이룬다. 트래블러스와 씨티코프,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 등 최근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M&A가 다 이런 유형에 속한다. 한때는 치열한 경쟁관계였지만 「경쟁력 강화」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서슴없이 손을잡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메가 머저 붐을 「동맹자본주의(Alliance Capitalism)」라고 규정하는 학자들도 있다.그러면 이처럼 90년대 후반에 메가 머저 붐을 이루게 하는 동인은무엇일까.그 해답으로는 두가지가 제시될 수 있다. 첫째는 세계화와 정보화라고 하는 시장환경적 요인이다. 보더리스(borderless·국경 없는)경제로 대변되는 세계화에 의해 기업들의 활동무대는 급격히 확장됐다. 또 정보화에 의해 세계 각지의 사업장을 연결하는 네트워킹 경영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가 추구하는 규모자체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확대된 것이다.메가 머저 붐의 또다른 동인은 미국의 증시활황이다. 요즘 미국 기업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M&A를 할 경우 주주들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또 M&A 자체가 주가를 끌어올리는 호재가 되기도 해 이래저래 주가상승과 M&A 붐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과거에도 주가상승기에 M&A가 성행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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