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M&A-제휴 서둘러야"

세계적인 거대합병 열풍이 과연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세계 기업들이 국경을 초월한 짝짓기를 통해 국제 산업 및 금융의 경쟁구도를 재편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기업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그파장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올 것인가에 쏠린다.특히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외국자본 유치가 발등의 불로 떨어져 있는 한국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외국기업들의 거대합병 붐에 촉각을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자칫 거대합병의 시류에 잘못 대응했다간 글로벌 경쟁에서 영원한 낙오자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계 기업들이 「강점분야를 특화하고 경쟁열위분야를 퇴출시키는」 강력한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거대합병을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따라서 한국기업들도 세계기업들의 합병 붐을 구조조정과 외자유치에적극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자동차 업계는 직접 영향권최근의 벤츠와 크라이슬러 합병, 벤츠와 닛산의 전략적 제휴 등은한국 자동차 업계에 직접적인 파장으로 연결된다는 게 중론이다.한국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의 핵심인 기아에 미국의 포드자동차가최대주주로 이해관계를 맺고 있고 대우도 미국의 GM(제너럴 모터스)과 글로벌 전략제휴 협상을 벌이고 있어서다.일단 세계 자동차 업계의 잇단 거대합병은 한국 자동차 업체들과선진 다국적 기업간의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을 촉진할 가능성이높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GM과 자본제휴 등을 추진해온 대우는벤츠-크라이슬러의 합병이 GM과의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아시아 시장을 놓고 벤츠-크라이슬러와 경쟁을벌여야 하는 GM 입장에선 대우와의 제휴가 보다 중요해졌기 때문.김태구 대우자동차 사장은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GM과 대우가 손을 잡고 서로의 취약지역에서 차종을 교환 생산하면 벤츠-크라이슬러 못지 않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않았다.같은 논리로 기아자동차의 증자참여를 검토해온 포드도 더욱 기아를 놓지 않으려 할 것이란 예상이 유력하다. 포드는 기아를 아시아지역에 대한 소형차 공급기지로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게다가 생사의 갈림 길에 서 있는 기아도 『포드에 최대주주 자격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이종대 기아자동차 기획총괄 사장)고 공공연히 밝히는 등 포드에 매달리고 있어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일본의 미쓰비시 외에는 확실한 외국 제휴선이 없는 현대자동차도이젠 더 이상 선진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됐다. 현대는 지금까지 『우선 기아를 인수해 연산 2백50만대 생산체제를 갖추는 등 내부 체질을 강화한 뒤 외국과의 제휴를 추진할것』(이유일 기획본부장)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현대의 이런 공식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현대의 해외 제휴를 둘러싼 추측들이 만발하고 있다. 현대가 벤츠-크라이슬러 연합군에 합류할 것이란 한때의 소문도 그런 류다.또 하나 관심은 삼성자동차의 운명이다. 벤츠-크라이슬러 연합이삼성의 기술도입선인 일본 닛산과의 제휴를 선언하고 나서 삼성의입지가 주목된다. 이와관련해선 두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삼성과 닛산의 협력관계가 계속 유지돼 삼성이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지원까지도 받을 수 있는 경우. 둘째는 닛산이 삼성과의 관계를 끊어 삼성이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는 케이스다.삼성은 물론 첫번째 시나리오를 강력히 희망하겠지만 앞 일은 모를일이다. 어쨌든 국내 자동차 업계는 세계 기업들의 합종연횡 대열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금융산업 구조조정에도 파장씨티코프와 트래블러스의 합병과 같은 세계 금융기관들의 거대 합병이 한국의 금융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다. 그러나 간접적인 파장은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외국에 팔기로 정부방침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의 합병 도미노가 한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그렇지 않아도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는 제일과 서울은행의 인수에 적지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기도 하다. 골드만 삭스는 지난 4월초 제일-서울은행의 매각 주간사 선정때 『인수에 더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간사를 맡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골드만 삭스 외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제일-서울은행의 인수 참여의사를 보인외국 금융기관은 없는 상태지만 씨티뱅크와 체이스맨해턴 등 미국계 상업은행들의 참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정부는 일단 오는 6월말까지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의 자산실사를 마치고 오는 11월 15일까지 해외 매각을 마친다는 계획이어서 세계주요 금융기관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또 하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는 은행과 증권 보험 업무가 통합되는 유니버설 뱅킹 조류다. 씨티코프(상업은행)와트래블러스(증권·보험)의 합병에서처럼 이젠 은행과 증권 보험 업무가 통합되는「원스톱 금융슈퍼마켓」이 출현하는게 세계적인 추세다. 여기에 발맞춰 미국에선 체이스맨해턴은행과 메릴린치증권등의 합병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경향이 한국의 금융산업 구조조정에도 중장기적으론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한편 국내 금융기관 구조조정과 관련, 정부는 우량은행끼리의 합병이나 외국 금융기관과의 합작 등을 통해 대형 선도은행을 탄생시킨다는 방침이어서 관심을 끈다. 이 경우 한국에서도 은행간 메가 머저가 이뤄지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은행 국민은행 등 비교적 건실한 은행들이 외환은행 한일은행 등과 합병해 리딩뱅크의 역할을 할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엔 씨티은행 체이스맨해턴은행 등 외국 기관들의 합작투자도 가능해 세계적인 대형은행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구조조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구조조정과 외자유치라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는 국내기업들도거대합병과 같은 M&A나 전략적 제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다국적 기업들이 국경을 뛰어넘는 강자간 합병과 동맹을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세계적 조류에 뒤지지 않기 위해선 해외기업과의 M&A와 전략적 제휴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를 위해선 『기업들이 외국의 경쟁기업에 대해 배타적 감정보다는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적으로부터도 배우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장성원 삼성경제연구소수석연구원)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국민들도 외국기업에 대한막연한 적대감을 버리고 외국기업 외국인을 국내기업 국내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세계시민으로서의 합리적인 사고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