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망하자 직장동료끼리 창업

「어느날 갑자기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가 쓰러졌다.」지난해 말 금융위기 이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겪은 현실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진 것이다. 사무용 레이저프린터전문회사 베리텍의 남무현사장(34)도 그중 한명이었다.남사장은 지난해 12월초까지 큐닉스컴퓨터 연구소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그런데 갑자기 큐닉스컴퓨터가 쓰러졌다. 자회사였던 큐닉스할부금융에 지급보증선게 화근이었다. 어음할인 등 단기대출상품위주로 영업하던 큐닉스할부금융이 채권을 대부분 회수할 수 없게되자 불똥이 큐닉스컴퓨터로 튄 것이다. 결국 큐닉스컴퓨터는 지난해 12월10일 부도를 내고 말았다. 경영진들이 회사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상황이 워낙 안좋아 손쓸 수가 없었다.남사장은 허탈했다. 영업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고 기술력이 없는것도 아닌데 갑자기 회사가 쓰러지다니.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랐다. 막막했다. 취직할 곳을 찾아 다녔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같이 경쟁관계에 있던 기업들의 문을 두드렸다. 억울하기도 했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동안 기울인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창업을 결심했다. 레이저프린터라면 자신 있었다. 부도 3주만의 일이다.창업동지를 찾았다. 과장급 동료 5명을 모을 수 있었다. 집에선 반대도 심했다.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는데 위험하게 사업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자신감으로 설복시켰다. 퇴직금과 예금통장을 털어창업동지 5명과 함께 5억원을 모았다. 하지만 5억원이란 돈은 그리넉넉한 돈은 아니었다. 서울시내에서 사무실 하나 유지하기에도 버거웠다. 특히 프린터사업이란게 투자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특성이있어 어려움은 더했다. 부품이 많은데다 기본적으로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개발장비나 각종 사무집기 등을 마련하는 것도 문제였다.그러나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었다. 큐닉스컴퓨터의 경영진을 찾았다. 『이미 큐닉스컴퓨터를 되살리기엔 늦었다. 개발장비 등을 저렴한 가격에 넘겨달라』고 설득했다. 결국 개발장비와 사무집기 등을 감가상각된 가격으로 인수할수 있었다.◆ 큐닉스 실패 거울삼아 무차입 경영판매망재건도 힘겨운 과제였다. 총판이나 대리점에서 베리텍의 제품을 받아 줘야 하는데 갓 태어난 기업의 신뢰도가 문제였다. 기존큐닉스컴퓨터의 판매망을 찾아다녔다. 큐닉스컴퓨터처럼 제대로된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렇게 기존 판매망을 재건하는데 3개월이 소요됐다.추가적인 자금확보도 이뤄졌다. 신용보증기금의 자회사인 신보창투가 지분참여한 것이다. 물론 쉽게 이뤄진 투자는 아니었다. 『큐닉스컴퓨터에 있던 핵심기술진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없어지면 국내 프린터제조기술력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고 설득했다.신보창투의 투자로 자금운용에 숨통이 트였을 뿐만 아니라 기업 공신력이 높아지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베리텍은 현재 5가지 모델을 새로 개발했다. 매출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남사장은 올해 매출목표인 80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거래선도 하나 하나 되살아나고 있어힘을 얻고 있다. 베리텍은 큐닉스컴퓨터의 실패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절대 당좌거래는 안한다. 차입도 없다. 남사장의 꿈은 『사업이 잘돼 지속적으로 기술개발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사장은 베리텍을 기술기업이라고 부른다.장기전략을 묻는 질문에 남사장은 『프린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프린터를 만드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프린터를만들지만 여기에 필요한 요소기술은 응용가능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프린터가 디지털화하면서 프린터개발에 필요한 인터페이스나 주문형반도체(ASIC) 네트워크 등의 기술은 프린터 뿐 아니라모든 정보기기에 쓰일 수 있게 됐다.복사기와 프린터는 이미 서로의 영역이 없어지다시피 한 상태다.『요는 누가 먼저 시장을 찾아내 필요한 상품을 만들어 내는가』라는게 남사장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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