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은 '없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가장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부류의하나로 대기업 직원이 꼽혔다. 흔히 화이트칼라의 대명사로 불렸던이들 샐러리맨들은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거나 사고를 치지 않는한 정년이 보장됐다. 일한 대가로 받는 급여수준도 썩 괜찮았다.전문직종에 비해서는 낮았지만 한 가정을 꾸려가기에는 부족함이없었다. 블루칼라로 상징되던 생산직 근로자들 역시 이런 흐름에서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열심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수 있었다. 특히 회사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현장우대방침에 따라 같은 경력이면 생산직이 사무직보다 더 많은 급여를받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하지만 지난해 막바지에 터져나온 외환위기와 IMF구제금융은 샐러리맨들한테 이런 풍요로움을 일순간에 빼앗아갔다. 자금난과 내수부진 등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졌고, 거리에는 실직자들이 넘쳐났다.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돼샐러리맨들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켰다. 샐러리맨들 사이에 이제는파리 목숨의 인생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는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그러나 샐러리맨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지금의 고통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제까지는 워밍업이라고나 할까.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6월 이후 수천명 단위의 본격적인 정리해고가 시작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자연 그 여파가 2차,3차 하청업체에까지 미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 사태가 전개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급여 역시 정상적인 생활을 위협받을 정도로 크게 줄었다.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 회사가 크게늘었고, 월급마저 깎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홍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서울시내 5백가구를 대상으로 IMF체제 이후 자산과소득변동 등을 조사한 결과 4가구 가운데 3가구 꼴로 월소득이 20%이상 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또 빚이 늘어난 가구(40.5%)가줄어든 가구(24.9%)보다 훨씬 많아 자산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이번 조사대상자 가운데는 자영업자 등도 포함돼 있어 이런 수치가 샐러리맨 가정의 바로미터라고 단정지을 수는없다. 하지만 도시가구 가운데 가장의 직업이 샐러리맨인 경우가50%를 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의미있는 통계라고 할수있다.이제 우리 사회에는 안정되고 반듯한 이미지의 샐러리맨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락하는 급여와 떨어지는 위상 속에서 악전고투하는근로자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에다 이런 상태가 언제끝날지도 모르는 까닭에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클 수밖에없다. 이번 기회에 아예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느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아, 옛날이여」를 외치는 샐러리맨들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넘어 무력감이 물씬 풍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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