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산업, 활로를 찾아라

한글과 컴퓨터사의 아래아 한글만큼 애증이 교차됐던 상품도 드물다. 한컴이 보여온 그간의 경영행태나 서비스 정신을 보면 분노를참을 수 없으면서도, 유일하게 남은 미정복 시장에 대규모 물량 공세를 퍼붓는 마이크로소프트측을 보면 다시 화를 거둘 수밖에 없었던게 저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컴측은 사업을 포기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불법복제를 거론했으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애국심에만 기대는 듯한 회사의 손을 들어주기가 선뜻 내키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다. 이 부분은 아마 양자가 동시에 비난받아야할 악순환이라고 하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국내 투자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예정된 일어쨌든 지난 10년간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온 워드프로세서는 이제 무대 뒤로 퇴장하게 될 운명에 놓였다. 그리고 사태가 이렇게까지 이른데 대해 많은 이들이 착잡해하고 있다. 한컴이 좀 더 경영에 노력했더라면, 소비자들이 좀더 애정을 보내줬더라면 한글은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것이다.하지만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소 냉정하다. 시기만이 문제였을 뿐 어차피 닥쳐올 상황이라는데에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설사 한컴이 재정난을 겪지 않았다고하더라도 기업 수명 자체가 많이 연장되기는 힘들었으리라는 견해다. 이들은 『한컴의 몰락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극명히 드러낸 것』이라며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동시에 기업환경과 문화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문제점은 다음 몇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수 있다.다른 산업도 비슷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 무엇보다 문제가되는 것은 국내 기술력의 한계와 시장의 협소함이다.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패키지 소프트웨어는 사실 한국이 세계를 따라잡기 어려운 분야라면서 이 점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소프트웨어는 크게 패키지와 SI(시스템 통합), 멀티미디어 컨텐츠로 나눠지는데 패키지는 운영체제, 오피스제품군, 통신, 기타응용프로그램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 패키지 분야는 규모의 경쟁이다. 연구개발비를 쏟아붓는만큼 결과물이 나오는데 한국 기업들은이점에서 기본적으로 경쟁이 될수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개발비는 전체 매출액(97년 6월 회계연도 기준1백13억달러)의 20%에 달하고 앞으로는 25%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라고 한다. 반면 한글과 컴퓨터의 97년 매출액은 1백59억원 정도였다. 1천만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한 회사의 전체 매출이다른 경쟁사의 연구개발비에도 못미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경쟁상대가 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소프트웨어 산업은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용하는 특수분야다. 처음의 개발비만 들어갈뿐 일단 제품을 개발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CD 비용 정도의 원가만 들어간다. 그렇다면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부가가치는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일반 공산품이라면 물품 이동에 따른 물류비라든가 무역장벽 등으로 다소나마 제한을 둘수 있겠지만 소프트웨어는 공간 이동에 따른 장벽조차 거의 없다. 결국 한두개 시장 장악 업체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벤처정신 망각으로 몰락의 길 걷기 일쑤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그나마 커올 수 있었던 큰 이유중 하나는 「한국적 특성」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아래아한글이 그렇고 비교적 경쟁력이 있다는 그룹웨어 시장이 또 그렇다. 그룹웨어는 한국의 복잡 다기한 결재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문화가 다른 서구의 프로그램들로서는 뛰어들기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어쨌든 소프트웨어를 국내시장에만 의존하는 것은 매출증대에 한계가 있으므로 대자본을 앞세운 세계적기업에게 장기적으로 대응하기란 대단히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기업의 선단식 운영에 따른 문제점은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스템 통합 업계다. 지금 대기업치고 OO정보기술, OO데이터시스템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지 않은 회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이 존재함으로해서 대기업과 전문중소기업간 공정한 경쟁이 저해되고 시장가격이 교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소 시스템 업체들의 입지는 이들에 의해 원천적으로봉쇄되면서 성장 여지 또한 극도로 좁아지는 것이다. 해당 기업 입장에서야 필연적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볼 때는 대단한 기회비용의 상실이라는게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벤처 기업가 정신의 문제도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요청한 한벤처기업가는 『일에 대한 성실성에 있어 한국의 기업가나 엔지니어들은 외국기업에 비해 커다란 차이가 있다』면서 『너무 쉽게 거품이 생기는게 문제』라고 한탄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평균 주당 근무시간이 90시간에 이른다고 지적, 한국 벤처기업가운데 그처럼 많이 일하는 회사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근무시간에다 한국과 미국기업의 근무 열중도 차이 및고도화된 직원 관리기법 등의 변수가 더해지면 생산성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이와함께 벤처기업가들의 대부분은 젊은층인데 이들이 어쩌다 돈을만지고 언론매체의 조명을 받으면 자칫 「감당하기 힘든 상태」가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준 연예인」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기술력을 놓고 볼 때 당대에 세계를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점을 인식해서,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남겨줘야할 것』이라고 말했다.영세한 벤처 기업에 자금조달 창구역할을 하는 창투사의 문제도 지적된다. 일단 투자를 했으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밀어줘야 하는데도언론 등을 통해 벤처기업을 주목받게 하고는 주가가 오른 뒤 빠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벤처캐피털이 아니라 작전세력이나 다름없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교육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지적되는 것이지만 창의적 교육의 문제는 특히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다음 사회에 진출한 뒤의 훈련과 팀워크에 있어서도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많은 개선점을 노정하고 있다는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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