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14일 8박9일간의 미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뭣좀 일이 되려고 하니까 (엔저라는) 악재가 또 터졌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사실 달러당 1백46엔까지급락해 1백50엔을 위협했던 최근의 엔화 환율은 한국의 필사적인경제회생 노력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자칫하다간 아시아경제 자체가 붕괴되고 일본발 세계 경제대공황이 시작될 것이란 불길한 시나리오마저 나돌아 불안감은 더했다.물론 지난 17일 미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함으로써 급격한 엔추락에 일단 제동이 걸리긴 했다. 그러나 미국의 시장개입이 단번에 엔저를 엔고로 반전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엔저는 기본적으로 현재 미국과 일본의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두 나라의 경제상황이 뒤바뀌지 않는 한 엔저-달러고의 기조는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엔화 약세로 인한 아시아 경제의 위기감과 그에 따른 원화환율의 절하압력 등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실제로 전문가들은 하반기 엔화 환율이 혼미를 거듭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 3/4분기중 엔화는 달러당 1백35엔 안팎에서 불안한 등락을 거듭할 전망이다. 미국의 시장개입으로 엔의자유낙하(Free Fall)는 피했지만 엔저의 근본 원인이 제거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정부가 영구적인 소득세 감면조치 등내수부양책과 부실은행 정리 등 금융시스템 복구작업을 얼마나 강도 높게 추진할지 여부가 변수이다. 미국의 시장개입은 그런 일본의 노력이 가시화될 때까지 잠시 시간을 벌어준 것일 뿐이다. 그런만큼 아직은 절대로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강한 달러’ 포기 안해만약 일본의 내수부양 효과가 미미하고 금융개혁이 지지부진할 경우 엔의 재추락은 불가피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도이체방크 런던현지법인의 외환 이코노미스트 폴 메기시는 『미국의 루빈 재무장관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엔화가 다시 1백40엔대로내려가면 이번 미·일의 공동개입은 실패작으로 판정될 것』이라고강조했다.어쨌든 중요한 건 엔화 불안이 위기 극복에 몸부림치고 있는 한국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가까스로 진정돼 가고있는 금융 및 외환시장에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물론 한국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갉아먹어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무엇보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파장은 심각하다. 최근엔화 추락이 곧바로 한국의 주가지수 급락으로 이어진 것만 봐도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엔화가 1백46엔까지 떨어졌던다음날(16일) 한국 주가는 2백80으로 곤두박질쳤다. 달러당 1천3백90원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던 원화가치도 다시 1천4백34원까지 떨어졌다. 하향 안정세가 기대되던 금리가 되 오른 것은 물론이다.이는 엔 급락으로 인해 아시아 경제 전체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위앤화의 평가절하 가능성까지 제기돼 금융시장은 한때 극도의 혼란을 겪었었다.중장기적으론 수출이 받는 타격도 가볍지 않다. 엔저로 아시아 경제가 위축되면 이 지역에 대한 수출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그렇지 않아도 동남아 외환위기로 올들어 4월까지 아세안과 일본에대한 수출증가율은 각각 마이너스 27.1%와 마이너스 12%를 기록했다. 엔저마저 겹치면 이 지역에 대한 수출엔 더 이상 기대를 걸 수없게 된다. 아시아 시장에 대한 수출은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또 제 3국 시장에서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이 향상돼 한국제품의상대적인 불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엔화가치 하락은 일본제품의가격인하로 이어져 한국상품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해올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 제품의 전체 수출 규모중 60%정도가 일본제품과 제3국 시장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업종별로는 특히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가격경쟁력 상실로 인한 수출감소 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이해와 무관하게 등락이와관련, 엔화가치가 10% 절하되면 앞으로 2년간 한국의 무역수지가 37억달러 줄어들 것(한국무역협회)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은 달러당 1백40엔 수준이 1년간 지속될 경우 경제성장률이0.2∼0.3% 정도 둔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했다.더 큰 문제는 엔화 환율에 관한 한 한국 입장에선 달리 손을 써볼방도가 없다는 데 있다. 전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시장개입 강도와일본 경제의 운명에 달려있는 탓이다. 엔화 가치는 한국 경제의 이해와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경제 각 부문이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하고 정부 기업국민이 모두 철저한 대응책을 준비해 두어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위엔화 평가절하 되면일본의 엔화 약세로 인한 중국 위앤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은 오는6월25일부터 7월3일까지로 예정된 클린턴 미대통령의 방중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중국 안팎의 정치 경제사정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 위앤화가 평가절하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경제 여건이 지속적으로 위앤화에 평가절하 압력을 가중시킨다면 중국으로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다. 국제금융계는 금년 하반기 중국이 위앤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한다면 그폭은 1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위앤화의 평가절하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과 제3국에 대한 수출에모두 타격을 준다. 특히 전체 금액면에선 자본재와 중간재가 중심인 중국에 대한 직접 수출보다 소비재 분야에서 중국과 경합하고있는 제3국시장에 대한 수출이 받는 영향이 더 클 것이다.위앤화 가치가 10% 떨어질 경우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3.8% 정도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섬유제품의 수출에 타격이 클 전망이다. 대중국 주요 수출 품목인 섬유 석유화학제품과 미래 주요 수출상품인 반도체 등의 수출 감소폭은 각각 8.3%, 3.2% 및 1.5% 정도 될 것이다. 섬유제품의 수출이 평균을 넘어서고 있는 것은 중국시장에서 섬유제품에 대한 한·중 대체관계가 강하기 때문. 이에비해 석유화학은 중국내 수요가 크고 생산능력이 부족해 한국제품에 대한 대체성이 약하고 반도체는 중국내 생산시설이 거의 없어수출감소 효과가 적게 나타날 예상이다.세계 시장에서의 수출감소는 1.2% 정도로 엔화의 10% 절하로 인한수출감소 효과 (5% 정도)보다는 낮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국제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수출 비교우위 품목이 한국과 일본간 수출 비교우위 품목보다 덜 중복되는 탓이다. 즉 국제시장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비교우위 품목이 이미 상당한 구조조정을 거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위앤화의 평가절하가 엔화 추락 및 아시아 국가들의 연쇄적인 통화가치 하락과 어우러질 경우 한국 전체 수출의감소효과는 10%를 넘어설 것으로 우려된다.한편 이러한 분석은 수출가격이 일정한 경우를 가정해 위앤화 평가절하에 따른 파급효과를 분석한 것이다. 수급상황에 변화가 발생해단가가 변하면 이에 따른 수출증감액도 변하게 된다. 금년1∼4월기간 동안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40억9천7백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이는 대중투자 감소에 따른 자본·시설재의 수출감소, 국내 금융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중국측의 가격인하 요구 등에 기인하고 있다. 즉 수출액의 증감은 평가절하보다 다른 비가격경쟁에 의해서도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김화섭·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