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제3지대서 국민의힘 끌어내 정계 개편”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03-08 07:56:14
수정 2021-03-08 07:56:14
“관건은 野 단일화 및 그 과정 주도할 수 있느냐 여부…검사色 벗고 경제 외교 등 비전 갖춰야”
[홍영식의 정치판]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낸 직무 배제 집행 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 심리와 법무부 징계위원회 회의를 앞둔 2020년 11월 말 그와 대학(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로 학창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 온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징계위 결정이 난 뒤 여권이 윤 총장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것이다. 여권은 윤 총장이 정권을 흔들 원전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신라젠과 우리들병원 사건도 깊게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돼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윤 총장은 박해받는 모습이 최정점이 될 때 그만두고 나올 것이다. 그 시점은 내년(2021년) 2월쯤 될 것 같다. 대선판에 나올 것 같다.”
역시 윤 전 총장과 가까운 국민의힘 4선 의원도 그즈음 “윤 총장은 대선 출마 생각이 있는 것 같다”며 “대학 시절부터 지켜보니 뚝심이 있고 리더십도 뛰어나다. 대선에 뛰어들면 정치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 기반이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국민의힘 내 강력한 대선 주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정치판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의원들이 따라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이런 예측은 맞아떨어지는 흐름이다. 윤 전 총장이 3월 4일 전격 사퇴함으로써 관심은 그의 대선 출마 여부다. 그는 지난 3월 2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권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에 반대한다고 밝히면서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9년 7월 검찰총장 취임 뒤 조국 전 장관, 추미애 전 장관과 첨예한 갈등을 벌이면서도 직을 지키겠다는 일관된 의견을 나타냈지만 유독 중수청 문제에서만큼 직을 건 이유는 뭘까.
검사, 선거 1년 전 사퇴 ‘윤석열 방지법’추진이 계기
중수청 문제는 이전 그를 압박하던 사안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들의 반응이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검찰 출신 변호사는 “추 전 장관과의 갈등,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문제 등과 달리 중수청은 검찰 전체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경 수사권 조정만 하더라도 검찰의 일부 기능을 떼어내는 것이지만 중수청은 검찰의 생명인 수사권을 모조리 가져가겠다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면 검찰 역사에서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비록 임기가 4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윤 총장으로선 직을 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힘 있는 세력들에 치외 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 정신의 파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권이 6월까지 중수청 설치 입법을 마치겠다면서 내건 명분은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통한 ‘공룡 검찰 개혁’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아예 검찰의 수사권을 떼어내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올해부터 검찰의 일반 수사는 경찰 국가수사본부로,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는 공수처로 넘어갔다. 그나마 검찰에 남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수사마저 중수청으로 넘기게 되면 검찰은 공소 유지만 담당하는 껍데기로 남고 중대 범죄 수사 역량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 윤 총장의 판단이다.
다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중수청 설치 법안과 관련해 윤 총장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밝혔고 여권에서 속도 조절 얘기가 나왔는 데도 윤 총장이 전격적으로 직을 내려놓은 것은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그 이유는 최강욱 열린우리당 의원이 현직 검사·법관이 공직 선거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1년 전까지 사직하도록 하는 ‘윤석열 출마 방지법’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는 내년 3월 9일이다. 만약 윤 총장이 3월 9일 이후까지 자리에 머물러 있고 여권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윤 총장의 대선 출마 길은 막힌다. 이 때문에 3월 4일을 사퇴 시점으로 택했다. 또 오는 7월까지인 임기를 채우면 대선 준비 기간이 7개월밖에 안 돼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도 전격 사퇴한 배경이다.
그의 대선 출마는 기정사실화됐다. 특히 3월 3일 대구 고검·지검 방문 때 그의 언행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그는 여권의 중수청 설치 추진을 강력 비판한 뒤 “몇 년 전 어려웠던 시기에 저를 따뜻하게 품어 준 고장에 5년 만에 왔더니 감회가 특별하고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구 시민을 향한 공개 메시지로, 검찰총장으로선 매우 이례적인 발언이다. 검찰총장 사퇴 전날 대구를 방문해 이렇게 말한데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주도한 전력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찾아 시민들을 위로한다는 의미가 있고 이는 대선 행보의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3월 4일 사퇴의 변에서 그가 한 말은 대선판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는 “제가 지금까지 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야당 대선 주자들은 긍정 반응을 내놓았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와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막는 데 힘을 모을 것을 기대한다”고 했고 유승민 전 의원도 “헌법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길에 함께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무법 정권의 연장을 막는 데 함께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합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윤 전 총장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그룹은 제 3지대론을 띄우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에 들어오지 않고 제3지대에서 힘을 키운 뒤 오히려 국민의힘 의원들을 끌어당길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국민의힘은 해체되고 윤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당이 만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정계 개편을 의미한다.
“과거 제3지대 후보들과 달리 정치 감각 뛰어나”
성공할 수 있을까. 과거 사례를 보면 쉽지 않았다. 박찬종·정몽준·문국현·고건·반기문 등 지금까지 기존 거대 양당을 등에 업지 않은 제3지대 대선 주자는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권성동 의원은 “윤 전 총장은 뚝심과 정치 감각이 훨씬 뛰어나다”며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관건은 야권 재편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느냐와 그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이 주도할 수 있느냐 여부다. 여당은 사실상 단일 정당이어서 단일화 논의가 필요 없는 상황인데 반해 야당은 분열돼 있다. 2017년 대선 때 야권에서 각각 출마한 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의 득표율 합(52.2%)은 문재인 후보(41.1%)보다 많았다. 단순 산술로 보면 야권 후보가 단일화됐다면 문 후보를 이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내년 대선도 야권이 단일화하지 못 하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윤 전 총장이 단일화를 주도하고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그의 대선 명운도 달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 전 총장이 그런 리더십과 힘을 가지려면 세력화를 강력하게 이끌어 내는 게 관건이다.
또 하나의 관건은 검사 이미지를 벗고 대선 주자에 걸맞은 옷을 입을 수 있느냐다. 윤 전 총장 주변에는 법조인 출신들이 유독 많다.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는 “윤 전 총장은 국민에게 검사로서는 정의·공정 등 훌륭한 모습을 보였지만 대선 주자로서의 신뢰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선 경제·외교·복지·교육 등 각 분야의 식견을 갖추고 전문가들을 참모로 기용해 국민이 ‘나라를 맏길 만하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