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입 옛말 ... 일감 찾아 동분서주

의사와 변호사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장 잘 나가는 직업이었다.전문직으로서 고수입이 보장된데다 정리해고를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모든 의사와 변호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열쇠 3개」는지참해야 결혼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끈 신랑후보들이 바로 의사와 변호사였다.그러나 IMF사태가 터지면서 이들 직업의 위상은 말이 아니다. 「자격증=평생 고수입」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수입은 형편없이 떨어졌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뿐이다. 「사」자 전성시대는 이제 옛말이 돼 버렸다.전문직으로서 각광을 받았던 의사들은 IMF한파가 몰아치면서 가장수난을 받고 있다. 옛날 같으면 전문의 자격증을 따면 바로 취업이이뤄졌으나 이젠 그렇지 않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이같은 의사들의 구직난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초 있었던 서울 마포구청 보건소의 관리의사모집. 1명 모집에 무려 48명이응시했다. 과거 같으면 전문의들은 보건소근무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포구청 보건소의 관리의사 응시자중에는 전문의가25명이나 됐다. 일할 곳만 있으면 자리를 불문하고 가고 보자는 식이다.사정이 이렇다보니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서도 「나이트(Night)근무」에 나서는 의사들도 많다. 나이트근무는 병원 야간당직근무를 말하는 것으로 옛날에는 인턴들이 아르바이트로 했다. 올해초 전문의자격증을 딴 이모씨(36)는 『동료 1명과 같이 3~4군데 병원 야간당직 근무를 해주며 돈벌이를 하고 있다』며 병원에 취업한 의사들은그야말로 행운아들이라고 말했다.차선책으로 개업을 모색해볼 수 있으나 이또한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BIS 자기자본비율 8% 맞추기에 급급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있기 때문이다. 의사자격증만 갖고 가면 1억원 정도는 신용으로 대출받을 수 있었으나 IMF가 터진 뒤에는 2천만원 대출받으려면 보증까지 세워야 할 정도로 세태가 변했다.◆ 일부 전문의, 야간당직 나서기도이미 개업한 의사들도 사정은 말이 아니다. 환자들이 줄어 들면서고가의료장비 리스비 내기도 버거운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서울천호동에서 내과병원을 운영중인 김모원장(47)은 『IMF가 터진 뒤환자가 급격히 줄어 임대료 내기도 버거운 실정』이라며 『고육지책으로 간호사 1명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이 경우는 그래도 낫다. 의사들 봉급 못주는 병원도 있다. 올해초 문을 연 인천시 부평구소재 모병원은 3개월째 의사들 봉급을 못주고 있다.변호사도 인기를 끌며 돈을 많이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 수임건수가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어 당장 생존책을 모색해야할 상황에 처했다. 서울 서초동 변호사타운에서는 비싼 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변두리로 사무실을 옮기는 경우도 적잖다.변호사의 위상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수임료 덤핑. 과거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나 이제는 수임료 덤핑은 비일비재하다. 6년전 서울 화양동 동부지청 부근에 사무실을 낸 김모변호사(41)는 『지난해에 비해 수임건수는 40% 정도 줄었다』며 소송의뢰인이 수임료를 깎아달라고 요청할 경우 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분납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고 김변호사는 전했다.의사들과 마찬가지로 개업도 여의치 못하다. 변호사 자격증만 있으면 1억원은 신용대출로 빌릴 수 있었으나 이제는 꿈도 꾸지 못하고있다. 서울지법 모부장판사가 대표적인 사례. 이 부장판사는 과거처럼 전관대우도 기대하기 힘들어 혼자 개업하는 것이 여의치 못하자 최근 모합동법률사무소에 월급쟁이로 취직했다.IMF한파는 변호사 뿐만 아니라 예비법조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있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이모변호사는 『같은 기수중에 아직도 취업을 못한 사람이 10여명에 달한다』며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법고시에만 합격하면 평생이 보장되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