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 석권후 소매 넘본다

탄탄한 수익구조·리서치로 공격 경영...자딘플레밍·ING베어링 신장세

올해 국내 증권시장에서 두드러진 특징중의 하나는 외국계 증권사들의 공격경영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부실의 늪에서 허덕이는 동안능률적인 수익구조와 리서치부문의 확고한 우위를 바탕으로 국내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지난해까지 4개사에 불과했던 이들 증권거래소 회원사 명단에는 올들어 HSBC, 크레디리요네, CS퍼스트보스턴, 워버그증권, 메릴린치증권 등이 추가로 올랐다. 현재 골드만삭스, W. I. 카 등도 회원사 가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회원사일 경우 자신들이 받은 위탁수수료중 30% 정도를 국내증권사에 떼줘야하나 회원사가 되면 국내 회원사를 거치지않고 직접 매매주문을 낼수 있게된다. 수수료수입을 전액 챙길 수 있어 본격적인 소매영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난 4월10일 50억원을 내고 가입한 크레디리요네관계자는 『유럽계를 중심으로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가입비용을 금방 뽑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외국계증권 지점들의 잇단 회원사 가입은 국내 증권사에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위탁매매 수수료가 자율화되고 외국계 증권사들의현지법인 설립도 자유화돼 있는만큼 국내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갖춰져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계 증권사들은 일본금융시장이 개방된지 몇년 지나지도 않아 일본시장을 석권해버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말 메릴린치 모간스탠리 피델리티등이 노무라 다이와 닛코 등 일본 4대 증권사를 따돌리고 상위 1∼3위를 차지했다고 보도, 일본 증권업계를 충격속에 빠뜨렸다. 국내사들도 일본 증권업계의 침몰을 예사롭지않게 보고 있다.◆ 잇단 회원사 가입 국내 증권사 위협현재 외국계증권사의 약정고는 작년보다 평균 30∼40%가량 증가한것으로 알려졌다. 고려 동서증권이 부도나면서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투자자들이 국내증권사에 맡기던 물량들을 상당부분 외국계로 옮겼기 때문이다. 특히 자딘 플레밍, ING베어링, HG아시아증권의 경우 올들어 월평균 3천억∼5천억원의 약정고를 올리고있어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있다. 여기에다 국가신인도의 하락으로 해외에서 전환사채(CB)나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이 여의치않게 된 국내기업과금융기관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지명도가 높은 외국계증권사들로대거 몰려들고 있다. 포철은 지난 5월 해외CB를 발행하면서 ING베이링과 환은 스미스바니에 주간사업무를 맡겼다.「저비용-고효율」구조도 외국사의 강점이다. 3월말에 결산을 하는외국사의 주요 경영지표를 살펴보면 자딘 플레밍은 지난 1년간 무려 2백3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업계를 놀라게 했다. 고유계정을 통한 자기매매가 27억8천만원에 불과, 주가하락으로 인한 상품손실이 거의 없는데다 영업기금 헤지(위험회피)를 위해 맺어둔 선물환계약이 환율상승으로 짭짤한 환차익을 올려줬기 때문이다. 씨티증권과 뱅커스 트러스트도 각각 2백2억원과 1백6억원의 수익을올리는 빅팟을 터뜨렸다. 이들 3개사는 경영효율성을 나타내주는영업수지율에서 나란히 1백70% 이상을 기록했다.외국사 전체로는 슈로더 닛코 모간스탠리 클라인워트벤슨 도이치모간 등 6개만이 적자를 보였을 뿐 나머지 16개사는 흑자를 기록, 전체적으로 1천49억원의 흑자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중 총 8천3백3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34개 국내증권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좋은 실적이다.작년에 85억8천만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ING베어링의 윤경희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무실 부대설비 인력배치등만보더라도 고정비용에서 국내사와 외국사는 큰 차이가 난다. 국내증권지점은 통상 수백평의 객장을 사용하고 직원도 많게는 1백명에달한다. 그에 비해 고객들의 주문은 대부분 소규모 금액이고, 그나마 투자심리의 위축으로 1개월에 3백억원을 넘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마디로 국내증권사 지점들은 본전을 뽑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작년에 2백50평의 사무실과 55명의 직원으로 한달에 3천억원 안팎의 수탁고를 올리고 있다. 어느쪽이 더효율적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이런 실정임에도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 증권사의 구조조정바람에편승, 조직을 더욱 더 슬림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있다. 불필요한인력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1인당 업무강도를 높이고 사무영역의통폐합도 추진하고있다. 국내 증권사들이 「한국적 영업풍토」와「관행」 때문에 미적거리는 동안에 「구조조정」을 너무도 쉽게해치우고 있다.그러나 외국계 증권사의 최대 강점은 세밀하고 꼼꼼한 투자분석에있다는게 정설이다. 동일한 시장과 종목을 보면서 투자동향을 분석하는데도 국내사와 외국사는 많은 격차가 있다고 한다. 외국인에대한 국내 증권시장의 개방이후 이들의 주문이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로 몰리고 있는 것도 이른바 「선진금융기법」 때문이다. 물론그 기법은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다. 메릴린치 남종원 지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비용-고효율’구조도 외국사 강점『외국계 증권사들의 투자분석은 세계적인 이코노미스트들의 고급정보를 기초로 출발한다. 각종 해외펀드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지켜본 해외본점 이코노미스트의 판단에 의해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의수준과 방법이 결정된다. 국내 주식시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외국인자금의 동향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흐름을 알고 개별종목에 대한 투자를 분석하면 정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작년에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예언해 일약 증권업계의 기린아로떠오른 자딘 플레밍의 스티븐 마빈이사도 이같은 금융분석기법을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때문에 당초 외국인들의 국내유입자금만 주로 중개해왔던 외국계증권사에는 요즘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물론투자분석과 관련, 수요자들의 주문은 까다롭고 자료요구도 많다. 그러나 기관투자가들과의 거래는 일반 투자자들에 비해 수백배, 수천배의 규모이기에 더 정확하고 신중해야 한다는게 이들의 판단이다.이렇게하면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 수 있다는 전략이다.외국계 증권사들은 호전되는 경영여건을 배경으로 국내시장공략에더욱 박차를 가하고있다. 자기매매를 거의 하지 않아왔던 이들은작년부터 자딘 플레밍, 씨티, 뱅커스 트러스트, ING베어링, CS퍼스트 보스턴, 모간 스탠리 등을 중심으로 단기차익실현에 나서고있다.그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계산에서다.특히 최근 미국경제의 활황과 함께 풍부한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는미국계 증권사들의 공격경영은 크게 돋보인다. 예컨대 국내기업의주식이나 채권을 해외투자자들에게 팔 경우 다양한 조합의 금융상품으로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유럽계는 수익구조의 다변화와「박리다매」식의 전통적인 경영전략으로 한국시장을 한걸음 한걸음 잠식할 태세다.그러나 외국계 서울지점중 아직까지 현지법인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은 없는 것 같다. 증권시장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본점이반대하는 분위기지만 구태여 많은 돈을 들여 법인설립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보고있다. 이에따라 외국사들은 당장 소매영업에 뛰어들기 보다는 회사채인수 등 도매업무를 보다 강화하는데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에 사무소를 내고 있는 프루덴셜 리만브라더스 JP모건 등도 국제금융과 연결된 국내도매금융이 타깃이다. 결국 외국사들은 좁은 한국시장에서 도매시장을 완전 석권하고 난 뒤소매금융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정이야 어떻든 외국증권사들의 최종 목표는 한국증권시장을 자신들간의 경쟁체제로 재편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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