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 경영론' IMF도 이겼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인쇄용지 전문생산업체인 한국제지 이연기 사장(60)의 경영철학이다. 이사장은 사업전망이 좋아도 반드시 서너번 검토한후 투자여부를 결정한다. 「스피드경영」이 각광받는 현실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스타일이라고 비난받기 쉽지만 이사장의 경영철학은 IMF체제에서 진가를 발휘했다.한국제지는 지난 89년부터 충남 온산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해 왔다. 1호기와 2호기는 94년부터 가동중이었고 98년 하반기에 3호기를 추가로 완공할 예정이었다. 투자재원은 안양공장을 삼성물산에판매한 8백30여억원으로 마련했다. 그러나 97년 하반기부터 국내외경제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이사장은 최종순간에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한달전이었다.결과적으로 이연기 사장의 「돌다리 경영론」으로 한국제지는 IMF구제금융의 충격에서 비켜갈 수 있었다. 당시 온산 3호기 공장에착수했다면 30%에 육박한 고금리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게 조명기 기획관리부 차장의 설명이다.IMF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사업다각화를 꾀한 경쟁업체들은 극심한자금난에 시달렸다. 심지어 외국자본에 경영권이 넘어가기도 했다.반면 한국제지는 오히려 한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운전자금 조달에 별다른 애로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환율상승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전체 매출액중 50%를 차지하는 수출이 97년에 비해 지난해에는 60%나 증가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 전체 매출액도 3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물론 IMF체제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제지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사장은 안양공장을 매각하면서 3백여명의 직원중 2백여명을 명예퇴직시켰다. 또 능력급제와 팀제를 도입하는 등 조직을 축소하고 의사결정단계를 단축했다. 동시에 전체 원가의 60%를 차지하는 재료비를 절감하는 등 대대적인 구매혁신운동을 전개했다.이같은 구조조정의 성과와 수출호조로 한국제지는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선호하는 인기종목으로 각광받았다. 풍부한 유동성과3백%가 넘는 내부유보율 등으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한국제지의내재가치를 4만5천원에서 7만4천원으로 추정하고 있다.대전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사장이 한국제지와 연을 맺은 것은 지난 70년부터. 이후 생산 판매 기획 자금 등 각부서를 두루 거쳤다. 사장에는 94년에 취임했다.이사장은 최고경영자가 된후 「신제품을 조기출시하여 시장을 주도」한다는 경영전략 아래 「클린카피지」 「슈퍼카피지」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인쇄용지 전문생산업체로 기반을 다졌다. 한국제지에서만 30년 가깝게 근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사관계자들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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