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오락산업 선두가 '맹주'

미·일 우수 인력들, 영상 음반 S/W에서 기량 각축

『세계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엔 콘텐츠(Con-tents)를 잡지 못하면 소니의 미래는 없다』.일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은 95년 사장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선언한 후 일본의 대표적인 하드웨어 업체인 소니의 주력 사업 방향을 콘텐츠로 전환했다. 콘텐츠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영상이나 음악, 게임 소프트웨어 등을 말한다. 이데이 사장은 실제로 사장 취임 직후부터 소니가 89년에 인수한 미국 칼럼비아 영화사와 소니 뮤직사를 앞세워 영상 및 음악 콘텐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전략이 적중, 다음해 소니의 순익은 95년에 비해 1백20% 늘어난 1천3백90억엔(11억달러)에 달했고 94년 3천억엔의 적자는 2년만에 흑자기조로 돌아섰다.소니는 현재 게임 소프트웨어 사업을 확대하고 디지털 위성 방송 사업도 준비 중이다.◆ 사람 즐겁게 하는 상품 ‘성공’95년1월 일본의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57시간만에 구출된 한 초등학교 3학년생이 기자들에게 던진 첫 마디는 『패미콤이 하고 싶어요』였다. 패미콤은 일본의 오락기기 업체인 닌텐도가 판매하고 있는 가정용 오락기기다.지난해 전세계를 휩쓸었던 영화 은 17억5천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영화 뿐만이 아니다. 소니뮤직이 발매한 의 사운드트랙 앨범은 1천만장 가까이 팔려나가며 지난해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위에 나열한 3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상품의 위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즉, 오락(Entertainment) 산업의 영향력이다.흔히들 산업의 패러다임(Pradigm:한 시대의 대표적인 조류)이 바뀐다는 말들을 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끄는 축에는 항상 정보화가 등장한다. 그러나 정보화의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문제는 어떤 정보냐 하는 내용(Contents)으로 귀결된다. 내용, 즉 컨텐츠의 핵심에는 다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거리를 주는 엔터테인먼트, 즉 오락이 들어 있다. 미래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도 이런 의미에서 『상상력이 부를 만드는 오락산업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에서 제조업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오늘날 오락산업을 논할 때 그 중심에는 항상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문화 상품이 세계를 지배한지는 이미 오래됐다.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방송 팝송 게임소프트웨어 등 미국이 제공하는 오락거리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오락산업은 컴퓨터 산업과 함께 미국의 경제를 떠맡치는 믿음직한 기둥으로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96년에 미국의 소프트웨어 및 오락상품 수출액은 6백2억달러로 구소련이 무너진 91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90년대초까지만 해도 케이블TV가 보급되지 않았던 헝가리의 경우 전체 가구의 40%가 이제는 미국의 24시간 뉴스 채널인 CNN과 음악 채널인 MTV를 시청하게 됐다. 미국의 월간지인 는 19개 언어, 48개의 지역판을 통해 전세계를 공략하고 있다. 등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계를 공략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는 말할 필요도 없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도 미국 오락산업의 파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35개의 공연장은 96년6월부터 97년6월까지 관람료와 고용 창출 효과, 관광 등을 통해 27억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연간 공연 관람객만 1천50만명. 이중 21.3%인 2백25만명이 순전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관람하기 위해 뉴욕을 찾았다.미국의 칼럼니스트인 월리엄 파프는 미국내 오락산업의 성장 추이를 가르켜 『지금 미국에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다. 군부나 급진주의자가 아니라 오락산업이 일으키는 쿠데타다』라고까지 묘사했다. 이에 대한 예로 미국내 우수한 인재들이 할리우드로 몰려들며 오락산업 붐에 편승하고 있다. 예를들어 영화 의 시뮬레이션 기술자는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를 설계했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직원이었다. 미국 워싱턴주에는 디지펜 공대라는 비디오 게임학을 가르치는 4년제 대학까지 문을 열었다. 비디오 게임학과는 설립 첫해인 지난해에 신입생 40명 모집에 세계 각지에서 1천여명이 지원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미국의 뒤를 이어 오락산업에서 선전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 앞서도 지적했듯 소니는 오락산업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 기업이다. 실제로 소니 엔터테인먼트는 96년에 84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리며 소니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세계의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닌텐도도 일본의 오락산업을 이끄는 주축 중의 하나다. 닌텐도는 83년에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콤으로 단숨에 초일류 기업으로 부상했으며 「동키콩」「슈퍼마리오」 등을 통해 미국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닌텐도는 지난해 40억달러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세계 공략미국과 일본 외에 최근에는 영국도 오락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선전하고 있다. 예를들어 영국의 음반산업은 세계 시장의 18% 점유할 정도로 강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음반산업에서만 연간 26억파운드의 수입을 올리고 11만5천명을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국이 유명한 록밴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는 유럽 순회 공연 한번만으로 2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다. 영국은 컴퓨터 게임시장에서도 25%를 점하며 미국과 일본을 바짝 뒤쫓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ia: 멋진 영국)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21세기 주력 산업으로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주도하는 소프트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세계는 바야흐로 오락산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오락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이 차지하던 산업의 중심 자리를 위협하며 무공해 산업이자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21세기의 경쟁력은 누가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채워줄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하느냐, 즉 오락산업에서 승부가 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락산업 쿠데타가 이를 실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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