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중심 앞다퉈 도입

금융기관 공기업 범위 확대 ... '3연' 끊고 경쟁력 키워야

연봉은 한때 야구나 축구 등 프로스포츠 선수나 받던 것으로 인식돼 있었다. 아무개 선수가 올해 연봉으로 얼마를 받기로 했다는 식의 기사로만 접했을 뿐이다. 연봉제하면 곧 고액 급여자를 떠올렸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공서열식 급여체계에 익숙해 있던 직장인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음은 물론이다.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특히 IMF사태 이후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연봉제가 대세임을 직감할 수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1년마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마주 앉아 재계약 하는 서구식 연봉제가 일반화된 것이다.국내 기업들의 연봉제 도입 실태를 보면 이런 사실은 더욱 뚜렷해진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5대 그룹이 예외없이 연봉제를 시행중이다. 회사의 이런저런 사정에 따라 아직 도입하지 않은 계열사도 있지만 핵심 계열사들은 이미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범위를 조금 넓혀 상장기업을 살펴봐도 연봉제가 폭넓게 도입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2백1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연봉제 도입현황을 조사한 결과 73.3%가 연봉제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준비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상장회사 가운데 올해 안에 연봉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80%를 넘고, 내년까지는 90% 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은행과 투신 등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올해부터 연봉제를 채택하거나 도입을 검토중이다. 한빛, 신한, 한미은행 등이 시행에 들어갔고 주택, 하나은행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투신권에선 한국투신이 지난해부터 도입했고, 대한투신과 국민투자신탁은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다.공기업은 이미 1급 이상 간부에 대해 연봉제 실시를 확정했고, 몇몇 공기업은 직원들에 대해서도 시행중이다. 특히 지난해 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도입했던 한국통신은 올해부터는 범위를 넓혀 과장급까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가스공사도 지난해부터 소속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적용 대상, 과장급까지 확대적용 대상도 확대되는 추세다. 2~3년전만 해도 임원급 이상만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과장 또는 차장급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는 곳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갓 입사한 신입사원까지 포함해 전직원에 대해 연봉제를 실시하는 곳도 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연봉제 도입이 기업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다. 특히 기업문화 전반을 크게 바꿔놓고 있어 주목된다. 온정적인 기업문화가 사라지고 업적에 따른 실적주의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내」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우리회사」보다는 「우리부서」, 더 나아가 「나」라는 의식이 강해지고 있다.인사 시스템도 크게 바뀌고 있다. 긍정적으로 봐서 선진화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연봉제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지만 어쨌든 전에 비해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개인을 평가한다는 사실 자체는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혈연, 지연, 학연 등 「3연」이 판을 치던 상태에서 탈피해 고과제를 통한 인사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는 분석이다.하지만 한켠에서는 연봉제에 대해 불만의 소리도 적지 않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철저한 준비없이 급하게 도입하다보니 시행과정에서 갖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평가방법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영업부서 등 실적이 눈으로 보이는 분야의 종사자들은 불만이 덜하지만 실적이 잘 잡히지 않는 관리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가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경향이 있다며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한다.연봉제가 임금삭감의 도구로 이용된다는 시각도 있다. 회사측에서는 제로섬(Zero Sum) 또는 플러스섬(Plus Sum)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특히 사용자와 노동자가 일대일로 계약을 맺다보니 약자인 노동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게다가 IMF사태를 맞아 상여금 반환 등으로 임금이 삭감된 상황에서 이를 토대로 연봉을 산정하는 바람에 실제로는 마이너스섬(Minus Sum)이 되고 말았다는 설명이다.연봉제가 기업의 문화와 근무 환경만 바꿔놓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들의 마음가짐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전문가들은 우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한다. 연공서열제 시대의 발상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는 얘기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조직에 뭔가 기여를 할수 있어야 한다.◆ 몸값 높이기 위한 노력 계속해야몸값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몸값을 지금 받는 급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경쟁시대의 몸값은 다른 곳으로 옮겼을 때 받을 수 있는 급여로 결정된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겨우내내 뼈를 깎는 훈련을 하듯 직장인들도 언제나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모든 일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쟁시대인만큼 어디를 가든 상대방은 있기 마련이다. 한번 피하다 보면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지고, 결국 패배자가 된다. 인사고과 부분도 피하기 보다는 평가요소를 잘 파악해 여기에 적극 대응하면 오히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은 어느 항목이 우수하고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장점은 발전시키고 단점은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어느 제도든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단시간 안에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장단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연봉제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경영에 이로운 점도 많지만 주로 미국에서 발전된 제도인만큼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한국적 연봉제를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대하게 밀려오는 연봉제 흐름을 이제는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양병무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직장인들의 경우 환경변화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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