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공단이 뜬다

현대그룹의 핵심 대북사업인 서해안 공단조성사업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요즘 서울 계동의 그룹 사옥은 북측으로부터의 전갈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북측(또는 북경)과의 핫 라인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현대아산의 실무자들은 수없이 짐을 꾸렸다가 풀곤 한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역시 하루빨리 재방북 스케줄을 잡으라고 독촉이다.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것은 서해안 공단에 대한 북한당국의 최종 결정. 서해안공단 조성사업은 작년 10월말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이 북한의 최고실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의했던 프로젝트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싹싹하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십시다』라며 양측(북한-현대) 합의내용에 이 사업을 포함시켰었다.그로부터 7개월여. 그동안 양측의 물밑 실무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이제 그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공단조성과 관련, 남북간의 복잡한 법률관계나 기타 기술적·절차적 문제만 해결되면 곧장 사인이 가능한 상태다. 현대측은 정 명예회장의 재방북이 임박했다고 판단, 서해안공단에 대한 브리핑용 비디오테이프의 제작까지 마친 상태다.는 최근 현대그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브리핑용으로 마련한 「서해안 공단 개발사업 계획」을 단독 입수했다. 이 계획에는 서해안공단을 한반도 최대의 공업단지로 육성한다는 현대의 야심이 꼼꼼하게 설계돼 있다. 총 2천만평의 부지에 각각 3개 단지의 공단과 배후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그 골자다. 가 입수한 조감도 및 토지이용계획에는 공단부지인 황해남도 해주만 남측 강령군 일대의 전경이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측은 교통입지가 양호하고 우수인력의 공급이 가능한 이 지역에 2천만평 규모의 대규모 공단을 조성, 남북간 비교우위에 입각한 경쟁력있는 업체를 우선적으로 유치하겠다는 구상이다.나아가 이 일대를 세계적인 수출전진기지와 동북아의 경제요충지로 중점 육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궁극적으로는 공단개발이라는 대형 복합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국토의 균형있는 개발을 도모하고 남북간 산업 및 소득격차를 해소, 미래의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한다는 비전을 그리고 있었다.◆ 필요 물자를 육로로 조달한다그러나 보다 실제적으로 더 중요한 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공단조성 방식이었다. 현대측은 놀랍게도 공단조성에 필요한 물자를 육로로 조달한다는 계획을 수립해놓고 있었다. 당초 인천~남포, 부산~나진의 해로를 이용할 것이라는 일반의 추측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었다. 현대건설은 이를 위해 공단진입로 등 북한내에 총 2백km의 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별도로 세워두고 있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육로이용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육로도 이용하지 못한다면 공단조성으로 도대체 무슨 이득을 얻겠느냐』는 반문이었다. 사실 지금처럼 해상운송에 의한 남북간의 물자교류는 과다한 물류비용으로 인해 남북경협 활성화에 지장을 주고 있다.만약 공단개발단계서부터 현대측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제한된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남북간의 물자와 인력교류가 사실상 자유화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이와 관련, 작년말 북한당국이 헌법을 개정하면서 그 설립근거를 신설한 「특수경제지대」의 성격도 눈길을 끌고 있다. 특수경제지대는 일종의 경제특구 개념으로 일정지역내 사업에 대해 세금혜택을 주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며 사람과 돈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서해안 공단 조성사업은 일개 공단의 차원에서 남북간 직교류의 차원으로 수직상승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섣불리 현대측의 재방북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도 이처럼 미묘한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사안에 따라 남북 당국간 정치적 타결을 모색해야 할 부분도 있다.그러나 현대측은 올해내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이미 시범공단 입주를 희망하는 중소업체들의 명단을 일부 확보해둔 상태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CNN과의 회견에서 『연말쯤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밖에도 뭔가 서해안공단과 연계된 긴밀한 조율이 남북간에 이뤄지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징후들은 많다.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나 서해안에서 개발된 유전의 송유관이 남쪽으로 연결된다는 방안은 정부 관계자들도 인정해주고 있다.서해안공단 사업은 고비용-저효율구조에 시달리는 국내 중소기업들에도 희소식이다. 공장부지를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첨단 지원시설과 풍부한 노동력을 갖춘 수출전진기지에서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특히 국내에서 고임금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업종은 노동력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