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과 원칙주의, 탁월한 기억력

이건춘(57) 건교부 장관은 「불곰」으로 불린다. 80년대 후반 부동산 투기가 붐을 이루던 때 투기꾼 적발로 이름을 날리면서 얻은 별명이다.이장관은 성격도 곰과 같다는 평이다. 한 번 결심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마는 고집이 대단하다. 지난 89년 토지초과이득세와 토지공개념이 도입된 데는 사실 이장관의 공로가 숨어있다. 이 장관은 당시 국세청 재산세 과장을 하고 있었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이들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청와대 재경원 등을 돌아다녔다. 끈질기게 정책당국자들을 설득했다. 결국 두 제도의 기본골격을 만들고 구체적인 마무리를 짓는 역할을 했고 다음해 시행되도록 했다.이런 성격은 지난해 국세청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취임 직후부터 비리가 있는 세무공무원에 대한 자체 사정에 들어갔다. 무려 2백30여명을 축출했다. 권위와 불친절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국세청에 서비스 개념을 도입했다. 자신은 물론 지방국세청장 본청 국장 등 전직원이 민간기업의 서비스 강의를 들었다. 전화를 불친절하게 받거나 민원인을 홀대한 직원에게는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이장관은 또 국세청 개청 이래 최대로 평가되는 개혁작업에 들어갔다. 이른바 「세정개혁」이다. 종전의 개혁은 사안에 따라 단편적으로 이뤄졌지만 이 장관이 주창한 개혁은 국세청의 조직 업무 위상 등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세정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민간전문가들이 개혁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참여연대 등을 세정개혁위원회에 참가시켰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 위원회는 국세청의 오랜 관행을 하나하나 깨뜨려갔다. 먼저 지역담당제를 폐지했다. 공무원 한 명의 뜻에 따라 납세자의 세금이 달라지는 체제이기에 비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어 납세자가 세무공무원을 만나지 않고도 세무신고를 할 수 있도록 우편신고제를 도입하고 세무신고 창구를 마련했다.세정개혁위원회에서 입안한 대로 서비스와 세무조사 기능이 대폭 확대된다. 서비스업무 종사자는 전체 인력 중 5%정도에 불과했지만 이제 20%로 늘어난다. 세무조사 업무는 15%에서 30%로 확대된다. 대신 행정지도 신고서 대리작성 등 각종 세무간섭적인 업무는 거의 없어진다. 납세자에 대해 친절한 기관이면서도 룰(rule)을 깨는 자에게는 가혹한 조사를 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세정개혁 와중에도 음성탈루소득자에 대한 세무조사에 열심이었다. 지난해 1년 동안 7천1백54명으로부터 무려 1조5천9백4억원을 추징했다. 예년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그렇다고 세무조사를 무리하게 한다는 비난을 받은 것도 아니다. 구조조정에 모범적인 기업이나 중소·벤처기업에는 세무조사를 면제해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신 음성탈루소득으로 호화사치생활을 하는 자,거액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상속·증여하는 자,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기업자금을 유출시킨 대주주 등에 대해서는 강력한 세정을 발동했다.이장관은 머리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밑에서 보좌했던 간부는 『각종 수치를 줄줄 외고 있어 담당 국장들이 당황해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고 술도 잘 마신다.충남 공주 출신이어서 청장 취임 때 자유민주연합 추천케이스라는 소문도 많았다. 그러나 국세청 직원들 중 대다수는 그런 소문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국세청장 감으로 예견됐을 정도로 능력과 성품을 갖췄다고 보기 때문이다.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와 71년 행정고시에 합격(10회)했다. 이후 줄곧 세무관료로서의 외길을 걸었다. 93년 국세청 재산세국장 94년 직세국장 95년 경인지방국세청장 등을 거쳐 97년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올랐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장으로 발탁됐다. 부인 문영인씨와의 사이에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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