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

외국손님들과의 만찬자리에서 D그룹의 최고위 간부 한분은 이런 조크를 했다. 『저희 그룹의 캘린더는 일반 달력과는 조금 다릅니다. 월 화 수 목 금 금 금 또 월 화…. 이렇게 날짜가 지나가지요.』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그런 조크에서 약간의 자랑스러움과 긍지조차 느껴진다. 또 다른 자리에서 외국인이 이 회사 사람들은 항상 바쁘고 매일 늦게 퇴근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 수천대 일의 경쟁을 거친 한국 최고의 엘리트가 겨우 연봉 10만달러 받으며 불철주야 뼈가 빠지게 일하는게 외국인 눈에는 납득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답변이 궁색했던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일에 중독이 돼 그런 것 같습니다.』 장내는 또 다시 웃음바다가 됐고 그럭저럭 그 질문은 넘어가게 됐다.우리 주위에는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신혼여행 간 후 한번도 휴일을 쉰 적이 없다, 작년 추석 때 놀아보고 아직 쉰 적이 없다, 연휴 때 할 일 없으니 같이 나와서 그동안 밀린 일이나 해 보자는 등… . 문제는 열심히 일하는 것과 효과가 별개라는데 있다. 그런 윗사람들을 보는 직원들은 항상 의아심을 갖게 된다. 저분들은 왜 저리도 쉬지를 못하고 일을 하는 걸까. 궁극적인 목표가 무얼까. 저러면서 어떻게 가정생활을 유지할까. 저런다고 효과가 나타날까.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공적으로 진급을 한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들과 대비해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는 것이다.단란한 가정을 유지하면서 직장에서도 성공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고정 칼럼중의 하나가 「일과 가정(work and family)」이고 거기에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례와 해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일찍 퇴근하는 문제로 상사에게 찍힌 사람의 고민, 애 보는 사람을 못 찾아 걱정하는 여자, 성격파탄자 직속상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 상관 앞에서는 손바닥을 비비며(apple polisher) 부하직원은 동물처럼 다루는 사람을 어떻게 다룰까 고민하는 사람 등.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또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기는 싫어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정보다는 회사가 우선이고 그런 만큼 회사를 위해서는 기꺼이 가정을 희생할 수 있다는 그런 발상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야 시대적으로 그런 삶을 살았다 해도 그것을 자라나는 세대에게까지 은연중 강요하는 것이다.그리하여 직원들로 하여금 가정에 충실하는 것과 가정 일로 시간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이 안 풀리면 회사 나와서도 일이 안되는 법이고 그 누구도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의를 달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정의 일이 회사 일과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가정에서 성공할 수 있게끔 직원을 배려하는 것이 미래기업의 할 일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수십배 회사를 위해서 기여할 것이다. 얼마전 다임러 크라이슬러 회장이 일 때문에 이혼 당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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