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방향, 예나 지금이나 불변"

새정치국민회의의 임채정 정책위의장은 재야 출신의 정치인이다. 지난 88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내걸고 평민당에 입당한 이후 줄곧 정치현장을 지켜왔지만 개혁지향적인 그의 성향은 아직 탈색되지 않았다.김대중 대통령이 재선의원인 그를 전격적으로 집권당의 정책위의장에 앉힌 것도 특유의 개혁성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정책위의장을 맡은지 불과 두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각 분야에 대한 임의장의 목소리는 자신에 차 있다. 그와 동시에 요식행위에 그치기 쉽상이었던 당정협의도 그 위상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요즘 임의장의 집무실에는 정치인들보다는 정부관계자들의 전화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는 8월19일 2시간여에 걸쳐 최근 경제흐름에 관한 그의 생각과 집권여당의 향후 청사진을 들어봤다.● 약력41년 전남 나주 출생. 고려대 법대졸업. 79년 「통일주체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선거 반대 국민회의」 공동대표. 87년 직선제 개헌 및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실행위원. 88년 평화민주당 입당. 91년 범야권통합 협상위원. 93년 민주개혁 정치모임 이사장. 97년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 98년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위원회위원장. 99년 국회 정치구조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의장. 제 14, 15대 국회의원.저서 : ▶ 요즘 재벌개혁방안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습니다. 집권여당이 생각하는 개혁방향은 어떤 것입니까.재벌개혁의 방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시절 5대그룹 재벌총수들과 합의한 5대 원칙(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의 해소, 재무구조의 개선, 핵심산업으로의 전문화,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8·15경축사에서 김대통령이 유난히 재벌개혁을 강조한 배경은 무엇입니까.사실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개혁을 추진해왔지만 빅딜을 포함한 일부 분야의 경우 재계의 협상부진과 이해관계의 상충 등으로 인해 미흡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8·15경축사는 5대 개혁원칙의 이행에도 불구하고 개혁성과가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자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8·15경축사에 따라 정부의 후속조치들이 곧 마련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무엇입니까.지금으로서는 원론적인 선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재벌의 금융산업 지배 차단, 순환출자를 통한 가상의 재무구조 개선, 부당한 부의 세습 차단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경영에 실패한 기업주의 책임문제도 제도화시킨다는 얘기가 들리는데요.별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습니다. 현행 실정법상 기업소유주의 재산권을 무단으로 박탈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회생과 원만한 수습을 위한 기업소유주의 지분포기는 아직까지 큰 반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으로서는 관련법의 개정을 검토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대우사태로 인해 김우중 회장의 경영권박탈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채권금융기관과 대우간 협상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봅니다. 만약 대우의 부실이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져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진다면 이는 국민의 부담이므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겠지만 이것 역시 기업주의 경영권 박탈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는다고 하는데, 은행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도 규제대상에 포함됩니까.현행법상 제2금융권에 대한 산업자본의 진출은 법으로 보장된 부분입니다. 따라서 강제적인 지분매각 조치는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계열금융기관을 통해 부당한 지원을 하는 행위는 차단해야겠지요. 또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자산운용지침의 강화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작년에 규제완화차원에서 풀어준 재벌들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우리가 98년초에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대기업집단의 출자총액제한을 풀어준 이유는 외국인의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방어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빈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순환출자를 통해 가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형식적인 부채비율 감축)함으로써 퇴출되어야 할 부실기업이 살아남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부지분율이 높아져 재벌총수들이 낮은 지분율로도 그룹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경제부처장관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며 김대통령께서도 각별한 신경을 쓰시는만큼 어떤 형태로든 보완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최근 일련의 대우사태와 관련,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이번 대우사태를 잘못 다루면 경제위기가 재발할 수도 있습니다. 파국에 이르러서야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사후약방문이라는 사실을 지난 외환위기에서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태해결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개입의 강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며 정부는 재벌의 경영실패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천문학적 규모의 대우부실채권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대우문제의 핵심은 부실채권의 규모와 그 처리방안에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우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투신사에서 나타날 수 있는 대규모 환매사태였습니다. 최근 이를 위해 정부가 취한 조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긴급조치였습니다. 따라서 향후 대우의 국내외 부채문제는 환매사태가 진정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본격적으로 처리해 나갈 것입니다.▶ 대우의 부실채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드 펀드(Bad Fund)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대우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고 환매제한에 따른 투자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배드 펀드를 설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배드 펀드에 투입되는 공적자금의 규모와 성격,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에 가시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대우계열 채권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물론 시장원리로만 보자면 민간기업의 부실채권에 국민들의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러나 투신권, 나아가 금융권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부작용이 더 큽니다. 정부도 최근 이같은 점을 인정하고 전향적으로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에서 생각하는 배드 펀드 설립방안은 어떤 것입니까.딱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수익증권에서 비대우계열편입분은 무조건 환매해주고 대우계열편입 펀드만 모아 배드 펀드를 구성해보는 것도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어쨌든 대우사태를 계기로 연초부터 이어져 온 「저금리-저환율-저유가」의 3저구도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금리는 치솟고 증시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중인 중산층 보호대책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시장의 투명성을 조기에 확보한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체질도 많이 강해졌기 때문에 웬만한 충격은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최근 물가가 확연한 안정기조를 보이고 있는만큼 최근의 유가상승 정도는 감당해낼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금리상승과 증시하락은 그 원인과 해결방향을 정부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예측가능성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신정부들어 외자유치가 많이 이뤄졌습니다만 순수한 의미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종전과는 다른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올해 7월 현재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실적은 65억달러 정도로 작년동기보다 77% 가량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총액기준으로 보면 기대에 미흡한게 사실입니다. 이에따라 투자유인제도를 보다 세련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외국인투자지역에 순수 국내기업들의 동반입주도 가능하게 해 외국기업들의 중간재 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정협의가 과거보다는 많이 활발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경제정책입안 및 집행은 여전히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당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계십니까.그렇지 않아도 이달말에 정부측으로부터 전문위원 6명을 영입할 계획입니다. 경제환경이 갈수록 급변하고 있는만큼 전문성은 당의 역량강화 측면에서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봅니다. 개인적으로도 정책위의장을 맡고 나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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