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유감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호들갑을 떨면서 얘기를 한다. 『아빠 청문회를 봤는데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어. 아줌마 넷이 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왜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는거야.』옷 로비 사건 청문회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부터 생긴다. 결과적으로 옷은 돌려 주었고 문제는 과연 그것을 로비목적으로 사용했는지, 로비인줄 알면서 받았었는지, 그런 것들을 밝혀 내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지만 그것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방송까지 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청문회를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청문회를 한다고 그들이 진실을 얘기할 것이라 생각하는가.한편으로 청문회에 나온 여자들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까지 팔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워낙 얘기가 엇갈리니 방향을 잡을 수 없다. 차라리 거꾸로 허를 찌르는 전법을 쓰면 어떨까. 최순영 회장의 부인은 『제가 로비목적으로 옷을 선물했어요. 안되는 줄 알았지만 남편이 그런 궁지에 몰리니까 보이는게 없더라구요.』 또 검찰총장 부인은 『제가 사실 옷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 옷을 받으면 안되지만 아는 사람이니 도와줄겸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지만 이내 돌려줬습니다.』 라스포사 주인은 그야말로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장사꾼입니다. 또 여기 계신 분들은 사실 저의 가장 큰 고객이지요. 고객 니즈를 알아 중간역할을 했을 뿐입니다.』청문회를 할 때마다 그 해악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금의 거칠어진 심성에는 그동안 범국민적으로 이를 개최하고 생중계한 정치권과 방송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청문회를 보면서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람이 높아지려면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편 외환위기로 전국민이 고생을 하는데 가진 자들은 저따위로 행동을 하는구나 하면서 비분강개하게 된다.하지만 그런다고 반성할 사람들도 아니고 또 분한 우리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청문회 목적은 무엇인가. 실력없는 검찰은 진상을 못밝혔지만 똘똘한(?) 우리국회의원들이 나서 한수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밝히지 못하는거야 매 한가지지만 전국민 앞에서 그들에게 호통을 침으로써 기분이나 풀자는 것인가.오래전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정도 국회의원 수준과 시스템으로는 그 영악한 부인들에 관해선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또 그들이 부인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무엇이 사실인지 짐작하고 있다. 청문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속시원히 밝혀진 것은 없으면서 괜시리 손해를 본 것같은 생각만 든다. 또한 청문회를 나온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은 이번 사건으로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엄청난 고통을 당한 듯해 보인다. 또 앞으로도 고통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독일에 「양심은 가장 좋은 베개」라는 속담이 있다. 양심대로 행동해야 맘도 편하고 잠도 잘 온다는 말이다. 아직 그들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해 주기 바란다. 결단코 거짓말을 하고 양심에 어긋나게 행동을 한 자는 우리들이 미워하지 않아도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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