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의 중요성

라면과 스낵을 만들어 파는 모회사의 영업사원은 동네 슈퍼마켓 등에 물건을 배달하고 미수금을 회수하는 일이 주업무다. 그들의 평가기준중 하나는 미수금 회수율이고 그 부문에서 김씨는 항상 수위를 달린다. 말도 어눌하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그가 유창하고 적극적인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미수금 회수부문에서 탁월하다는 것은 미스터리다. 그의 전략은 동네 슈퍼마켓 아주머니들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아주머니들의 일상사를 물어보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미안해진 아주머니가 먼저 외상 얘기를 하고 돈을 준다는 것이다.동네에 초등학교도 못 나온 할머니가 계신다. 생활이 그리 풍요로운 것도, 특별히 남에게 베푸는 것도,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유난히 그 집엔 사람들이 꾄다. 남편 문제로, 아이 문제로, 심심해서, 마실삼아…. 무엇보다 열심히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니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자주 찾아간다. 똑 부러진 해답이나 상담을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저 자신의 얘기를 누구에겐가 하고 싶은 것이다.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이는 모든 대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한자어나 영어의 구성을 보더라도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일례로 들을 청(聽)자를 보자. 귀이자 아래 임금 왕(王)변, 옆에는 눈목(目), 그 아래는 한일(一)자, 마지막에는 마음 심(心)자가 있다. 즉 귀를 왕처럼 크게 하고 눈을 보고 마음을 하나로 해서 열심히 들으라는 얘기다.또 창피하다는 의미의 부끄러울 치(恥)는 어떤가. 이 글자는 귀이(耳)변에 마음 심(心)자로 되어 있다. 귀를 마음에 대고 들으라는 말이다. 마음에 대고 자신의 얘기를 들으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인가. 부처와 같은 성인을 의미하는 성인 성(聖)자는 귀이(耳)변 옆에 열어둔다 노출한다는 의미의 정(呈)자를 쓴다. 즉 성인은 귀가 열린 사람이란 얘기다.이 정도만 보더라도 옛사람들이 얼마나 듣는 것을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을 읽었더니 거기서도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릿슨(Listen)과 사일런트(Silent)의 알파벳 구성이 똑같다나. 조용한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경청이라는 그런 내용의 칼럼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리란 시공을 초월하는 모양이다.협상에서도 그것의 기본은 상대방의 얘기를 정성껏 들어주는 것이다. 화가 나있던 상대방도 일단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면 말을 하면서 기분이 풀어지곤 한다. 얼핏 말을 유창하게 하고 자기 주장을 잘 하는 사람이 협상에 능할 것 같지만 오히려 듣기에 능한 사람이 협상을 더 잘 한다. 우리 삶은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이고 그것의 기본은 듣는 것이다. 세대간 또는 부서간 벽은 말을 못해서라기 보다 듣기를 잘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듣기 훈련이 안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할 때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비로소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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