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캐릭터 만드는 '괴짜' 감독

중학생때 컴퓨터그래픽에 미친 매니아 ... 세계시장 진출 욕심

지난 추석연휴 때 특이한 만화 영화 한편이 TV전파를 탔다. 50분짜리 TV용 애니메이션인 「붕가부」였다. 달을 배경으로 평화롭게 사는 붕가부족과 전쟁만을 일삼는 가붕가족간의 한바탕 소동을 그린 코믹 SF물이다. 초등학생 대상인 이 애니메이션이 눈길을 끈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묻어 나오는 외계인 캐릭터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국내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전과정이 제작됐기 때문. 손으로 일일이 수만장의 그림을 그려내는 기존 2D 애니메이션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화려한 그래픽과 섬세한 표현이 시청자들의 눈을 휘둥그래지게 했다. 방영된 뒤 한국애니메이션의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새지평을 연 주인공은 한동일 페이스 대표(27). 그는 어딜 가나 이마에 안테나 같은 뿔이 2개 솟아 있고 개구리처럼 눈이 툭 튀어나와 무섭기는 커녕 웃음이 절로 나오는 외계인들의 이야기를 머리 속에 그리고 다닌다. 그래서일까. 한감독은 그가 만든 캐릭터들 만큼이나 개성이 톡톡 튄다. 턱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록가수처럼 머리를 뒤로 묶고 다닌다. 컴퓨터 그래픽 경력만 12년인 그가 27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이력을 말해준다.『중학교시절 구입한 애플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이 너무 좋아서 중3때는 컴퓨터 그래픽업체에 시간제 아르바이트까지 했죠. 고등학교를 마쳤지만 워낙 일이 좋아 대학 갈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그땐 미대에 간다 해도 컴퓨터그래픽만 가르쳐주는 학과가 없었고 필드에서 실전경험을 쌓는게 훨씬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변명 아닌 변명. 그는 고등학교 때 컴퓨터 그래픽 세미나에 참석한다며 수업을 밥먹듯이 빼먹어 정학 직전상황까지 몰리기도 했다. 그래서 컴퓨터 그래픽 업계에서 그는 괴짜중 「괴짜」로 통한다. 그러나 그가 쌓은 컴퓨터그래픽 경력을 보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중3때 가장 어린 나이로 KCGA (Korea Computer Graphic Associa-tion) 회원으로 활동했는가 하면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KAIST의 웨이브프런트 소프트웨어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앳된 소년이 컴퓨터그래픽에 관한한 「프로」가 돼 있었던 것이다.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그의 비상은 계속됐다. 고등학교 때 스페인 바르셀로나 엑스포의 한국관 CG작업에 참가했고 진도그룹 산하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MBC 미니시리즈 「M」의 특수영상에 참여했다.◆ 붕가부, 사이버캐릭터 디자인상 수상그가 95년 컴퓨터 그래픽 전문프로덕션 페이스를 설립한 후 만든 작품도 전부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현대자동차 씽씽이」, 「크라운제과 롱스- 신동엽 개미편」, 「삼립 국찐이빵」, 영화「체인지」 특수효과 등이 대표작에 속한다.이 가운데 한감독이 가장 애착을 갖고있는 작품은 붕가부. 미국이나 일본의 캐릭터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독창적인 토종 캐릭터여서다. 기획단계부터 캐릭터 사업을 염두에 둬 붕가부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이미 지난해 제1회 대한민국 사이버캐릭터 선발대회에서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독창성을 인정받았다.『캐릭터와 그에 적합한 이름만 만들면 작업은 반 이상 끝납니다. 특별히 스토리를 구상하지 않아도 캐릭터들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죠. 그 다음은 그냥 정리만 하면 됩니다.』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 3D 애니메이션이란 것이 한감독의 생각이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아직 변변한 작품을 내놓는 나라가 없고 우리나라 그래픽 기술이 외국에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 제작단가도 미국 업체에 뒤지지 않는다. 디즈니의 경우 25분짜리 TV시리즈가 편당 7억원, 평균 4억원 정도가 드는데 반해 붕가부는 1억2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다.한감독은 붕가부가 이미 지난 10월 프랑스 칸에서 벌어진 「99밉콤(Mipcom) 페스티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조만간 수출이나 투자유치 계약도 기대된다고 귀띔했다. 밉콤페스티벌은 세계 최대의 TV 비디오 케이블 위성방송용 국제필름 거래시장이다.『아직 전세계적으로 한해에 만들어지는 3D애니메이션이 10편 정도에 불과합니다. 특히 TV용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스토리가 아닌 캐릭터에 치중하는 것인 만큼 기획력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승부를 걸만한 분야죠. 붕가부가 밉콤에서 눈길을 끈 것도 바로 독특한 캐릭더와 매끈한 3D 기술이었습니다.』한감독은 붕가부를 총 26부작 TV시리즈로 만들 계획이다. 투자자를 유치해 내년하반기까지 제작을 완료한다는 구상이다.『만화제작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왕국으로 통하는 일본만 보더라도 만화책이 인기를 끌면 TV 시리즈로 제작되고 그후에야 영화가 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반대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한감독은 붕가부에 이어 또 다른 TV용 애니메이션 「꿀꿀이 특공대」, 「천국의 날개」도 기획중이다. 페이스를 애니메이션 전문회사로 키우겠다는 꿈을 지닌 한감독은 10년 후쯤 3D애니메션 영화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소위 「명문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우리 사회에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웅장하고 무겁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라면 보통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세대다운 자신감을 지닌 한감독의 앞으로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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