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김치’ 붐타고 기업들 앞다퉈 진출 … 김치냉장고 등 관련용품 산업도 ‘쑥쑥’
한국인의 밥상에 꼭 올라오면서도 다른 반찬들에 밀려 홀대를 받던 김치. 그러나 막상 외국에 나가 일주일만 못 먹으면 그리워지는 김치.21세기를 눈앞에 둔 한국 식품산업에서 김치가 새로운 비즈니스 대상으로 대접받고 있다. 집에서 담가먹어야 맛이라던 것은 옛말. 김치는 이제 말끔한 포장의 상품김치로 다른 공산품들과 나란히 백화점 슈퍼 등에서 팔린다. 종류도 전통적인 배추김치만이 아니라 총각김치 깍두기 동치미 고들빼기에 갓김치 인삼김치 등 지역특산김치까지 상품화됐다.뿐만이 아니다. 매운 맛 김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크게 늘면서 김치는 인삼에 버금가는 효자수출품목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90년도에 1천4백80만달러 정도이던 수출액이 올해는 7천3백만달러, 내년에는 1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관련비즈니스도 함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김치만을 위한 김치전용 냉장고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으며 밀폐용기 등 관련용품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김치를 배달 판매하는 김치 e-비즈니스가 본격화 되는가 하면 백화점 면세점 호텔 등이 김치판매행사나 김치강습회 등 김치마케팅을 펼친다.사실 국내의 김치수요는 식생활문화의 서구화로 인구증가율에 비해 오히려 정체상태에 있다. 올해 전체 김치 소비량은 1백57만1천t에서 1백60만t 정도로 지난 수년간 1백50만t대를 유지해왔다. 금액으로는 약 2조4천억원 정도. 김장독 냉장고 등 김치관련 비즈니스의 시장규모를 배제한 순수 김치시장 규모다.그러나 전체 김치시장의 정체와 달리 시판김치, 혹은 상품김치 수요는 매년 3~4%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시판김치가 김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24만t,두산:추정치)에서 27%(45만t,농협), 금액으로는 3천5백억원에서 5천억원 사이로 폭넓게 추정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방 중소업체의 생산량과 날씨라는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증가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시판김치 생산업체는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4백개를 웃돈다. 88년 (주)두산을 필두로 동원산업 등 대기업이 뛰어 들었고 농협도 이에 가세, 내수와 수출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대형식품업체인 제일제당의 관계자는 『곧 상품김치시장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대상도 조만간 참여할 전망이다. 이 경우 많은 중소업체들이 정리되고 시판김치시장도 구조조정을 겪을 전망이다.상품김치 내수시장은 가정용 수요와 음식점, 가공식품업체, 군대 등에 벌크로 납품되는 수요, 또 주문김치 등으로 구분된다.상품김치 가운데 포장김치의 비율은 20% 정도. 「종가집김치」브랜드로 포장김치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갖고 있는 두산은 부가가치가 낮은 벌크김치 보다는 포장김치에 주력하고 있다. 종가집김치는 최근 일본의 식품회사와 수입상들이 견학하러 오는 등 일본에서 인지도를 높이면서 올해 수출을 지난해보다 90% 가까이 늘릴 계획이다.「양반김치」브랜드를 내세운 동원산업은 올해 「김치투어」상품을 개발, 주문김치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김장철이 오히려 비수기인 시판김치시장에서 「김치투어」상품의 비수기 타개효과가 크다』고 말했다.92년에 김장김치 배달사업을 시작으로 이 시장에 뛰어든 농협은 내수와 수출 모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초부터 일본 전역에서 「농협김치2002」라는 브랜드로 김치통신판매사업에 나서고 있다.농협은 전국 12개 지역조합이 지역 특성을 살린 제품을 생산하고 1백% 국산원료를 쓴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98년부터 수출시장을 다각화, 홍콩 미국 등에도 수출하고 있다. 올해 내수는 1천5백62t에 50억원,수출은 8백만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정안농산과 진미식품 등 중소업체들이 김치수출과 내수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만만치 않다. 87년부터 김치수출을 시작한 정안농산의 경우 수출실적 1위이다. 이 회사 이일봉 무역부차장은 『일본인들의 김치 기호도가 종전 썰어놓은 김치에서 포기김치로 바뀌고 있다』며 일본인들의 기호변화를 신속히 반영, 수출상품의 포장과 종류를 다양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예상하는 수출실적은 3천t에 금액으로 1천만달러. 정안에 이어 진미식품이 지난해 두번째로 많은 6백50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다.그러나 김치비즈니스가 비즈니스로 성숙하기에는 어려움도 있다.두산의 박사현과장은 『원재료(배추)값이 오르면 판매가 늘고 원재료값이 떨어지면 판매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원재료값이 떨어져 이익이 남을 만할 때는 안 팔리고 팔수록 손해볼 때는 오히려 잘 팔리는 딜레마에 처한다』는 것이다. 두산의 경우 배추값이 폭등한 최근 3개월간 배추값에서만 10억원의 적자가 났다. 시장상황에 따라 가격등락이 심한 농산물의 특성으로 원가구조는 불안정하고 부가가치는 낮기 때문에 필연적인 결과이다.많은 업체가 수출에 나서다보면 저가경쟁을 하는 한국수출의 고질병과 지나친 대일 의존도에서 오는 위험부담도 문제다.대일본 수출단가는 지난 95년 ㎏당 4.57달러이던 것이 지난해 2.77달러까지 떨어졌다. 유통경로가 폐쇄적인 일본시장에서의 경쟁은 가격경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나마 엔고로 채산성이 회복됐지만 여전히 가격경쟁이 심하다고 수출관계자들은 지적한다.전체 수출실적의 95%이상이 일본에 몰려있는 것도 문제다. 일본경기가 악화되거나 엔가치가 떨어지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선박수송기간이 긴 미국 유럽 등의 경우 항공수송을 하면 가격경쟁력이 없어져 시장다각화에도 한계가 있다.그럼에도 상품김치 시장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소득증가로 편의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젊은 주부가 증가하는데다 대기업의 김치산업 진출로 시장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농협의 현종철 가공군납사업단대리)이다. 손해를 감수해가면서까지 선점효과를 노리고 시판김치시장에서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