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갖고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20~30대 전문직여성 브랜드 파워에 민감…중고 매장·사이트도 등장

중소기업에서 무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커리어우먼 K씨(27). 미혼의 평범한 여성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점이 하나 있다. 프랑스 유명 화장품 브랜드인 시슬리를 즐겨쓴다. 한달 월급 1백20만원으로 로션 하나에 10만원을 호가하는 시슬리 화장품을 쓴다는 것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K씨는 『화장품 하나는 좋은 것을 쓰고싶다』는 욕심에 월급의 상당 부분을 화장품에 투자하고 있다.광고대행사 AE(Accounting Executive: 광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O씨(28)는 최근 2백여만원 가량되는 진품 프라다 핸드백을 구입했다. O씨의 월수입은 1백60만원정도. O씨가 2백만원이 넘는 핸드백을 구입할만큼 고액 샐러리맨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O씨는 자신이 과소비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진짜 프라다핸드백을 가지고 다닐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최근 K씨나 O씨 같은 샤넬족 여성들이 부상하고 있다. 고급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인 샤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샤넬족은특정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20대~30대초반의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 샤넬족들의특징을 정리하자면 스스로 경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선호하는 브랜드에 대한 자기주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또 돈을 헤프게 쓰지는 않지만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에는 과감하게 돈을 투자한다. 다시말해 샤넬족들은 『나도 그만한 대접은 받을 만하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다른 곳에 쓸 돈을 절약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명품 브랜드 하나쯤은 구입하는 소비계층인 셈이다.마케팅 전문가들은 20대~30대 초반 여성의절반 정도는 「잠재적 샤넬족」이라고 보고 있다. 잠재적 샤넬족이란 진짜 샤넬족들과 의식은 똑같지만 실제로 과감하게 고가의 명품 브랜드를 구입하는 실천에는 좀꺼려하는 소비층을 의미한다.◆ 직업 스트레스 사치품으로 해소샤넬족이 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소비 트렌드를 분석해주는 미국의 마케팅자문회사인 브레인리저브는 샤넬족의 부상에 대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불안감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사람들은 최소한의 사치, 소규모의 사치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대는 불안의 시대이다. 직업에 대한 안정성은 날로 줄어들고 현재내가 가진 지식이나 기술이 언제 시장에서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항상 화이트칼라의 마음을 괴롭힌다. 브레인리저브의 대표인 페이스 팝콘은 이런 불안감 속에서 『약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심신이새로워짐을 느끼는 짧은 순간이나마 부자가 된 기분을 즐기기 위해』 소비자들은작은 사치를 누리고 싶어 한다고 지적한다. 작은 사치의 대명사가 곧 명품 브랜드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예를 들어 인터넷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K씨(25)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이 드는 일이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서울 압구정동에있는 고급 레스토랑 「이탈리아니스」를찾는다. 정식을 먹으려면 세금을 빼고도 3만원 정도는 들지만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한다. K씨는 『한끼에 3만원이라는 밥 값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그 정도의 호사는 부릴 만하다고생각한다』고 말한다.한마디로 샤넬족들은 상품을 구매할 때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소비하는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대에이미 물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는 해소됐다. 남은 것은 이미지에 대한 욕구일 뿐이다.샤넬족들은 「청바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리바이스」를 사고 「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하이네켄」을 마신다.청바지나 맥주 같은 상품의 카테고리로 물건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브랜드로 상품을 구분하고 상품이 아니라브랜드를 사고자 하는 것이다.샤넬족들은 단순한 상품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상징에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에대한 소비를 통해 샤넬족들은 『난 소중하니까요』(외국 화장품 브랜드인 메이블린의 CF 멘트)라는 자부심에 힘을 얻는다.부자는 아니지만 명품 브랜드에 대한 집착이 강한 샤넬족들을 겨냥해 신종 비즈니스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고 명품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는 「세컨핸즈」와 명품 자선 경매 사이트인 더굿(www.thegood.co.kr). 압구정동에 매장이 있는 세컨핸즈와 더굿 사이트는 중고 명품을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 상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중고품이라도 진품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욕구로 인해 세컨핸즈와 더굿 사이트는 샤넬족 사이에서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브랜드와 이미지에 민감한 샤넬족들이 부상함에 따라 마케팅에서의 무게 중심도 변하고 있다. 샤넬족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브랜드에 대한 강한 집착이기 때문에 마케팅의 초점이 「상품 판매」 에서 「브랜드판매」로 옮아가고 있는 것. 즉, 단순한「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드를 만드는 「브랜딩」이 더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고있는 것이다. 브랜드를 고급 이미지로 자리매김시켜 브랜드 자체를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 하나쯤은 꼭 갖고 싶은 것, 그브랜드를 가지면 상류층이 된 듯한 기분을느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명품 브랜드는 이제 더 이상 돈이 많은 상류층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작은 사치를통해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고자 하는 평범한 중산층 샤넬족들도 「하나쯤은 가질수 있는 사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이런 중산층 샤넬족들이 명품 브랜드매출 상승에 기여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비싸서 에스티로더 영양크림은 구입하지못하지만 립스틱 하나만은 꼭 에스티로더것으로 가지고 다닌다. 그럼 내 자신에 대해 더 소중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학원 강사 P(30)씨의 지적대로 「작은 사치」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샤넬족들이 있는한 명품 브랜드의 매출 확장은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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