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나스닥 '신장개업' 한창

ECN 텃밭 잠식 대응 … 수수료 인하·상장 요건 완화로 도약 추구

미국의 간판 증권거래소인 나스닥(NASDAQ)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전자 주식시장의 원조」, 「첨단 하이테크주식의 본거지」, 「벤처 기업의 요람」등. 요즘의 나스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수식어를 한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주가 돌풍의 본산」. 실제로 미국 증시가 90년대 중반 이후 천정부지의 상승 가도를 달려온 과정을 들여다 보면 나스닥이항상 그 중심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지난해의 경우 나스닥에 상장된 주식들은평균 85.6%나 상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반면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대형우량주 중심의 다우존스 지수와 S&P 500지수는 지난해 각각 25.2%와 19.5%씩 오르는데 그쳤다.나스닥의 역동성은 한국과 일본이 그 시스템을 그대로 본따 「코스닥」과 「자스닥」을 세워 운영하는 등 각국이 다투어 벤치마킹하고 있는데서도 웅변으로 입증된다. 나스닥이 발휘하고 있는 괴력의 원천을 한 두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주식 거래의 효율과 편의성」을 첫번째 요인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나스닥이 설립된 것은 불과 29년전인 지난 1971년2월8일. 2백년이 넘는 역사(1792년설립)를 자랑하는 라이벌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비하면 애송이가 아닐 수 없다.◆ 나스닥, 디지털 글로벌 증권시장 도약준비그러나 나스닥은 출범하면서부터 NYSE 등기존 증권거래소와는 판이한 첨단 방식으로 돌풍의 닻을 올렸다. 특정한 거래소 공간을 갖지 않고 컴퓨터 전산망을 통해 미국 전역 어디에서건 자유롭게 주식 거래가이뤄지게끔 「전자 증권시장」의 형식을취했다. 「나스닥(National Association of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이란 이름도 바로 이런 거래 특성에서유래됐다. 그 이전까지는 NYSE 등 제도권증시에 상장되지 못한 주식들이 개별 증권회사와 브로커 등이 참여하는 비공식적인장외시장(OTC:over-the-counter)에서 거래됐었다. 미 의회는 1961년 이곳저곳에 산재한 OTC를 전국적이고 체계적인 장외 증권시장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결의안을채택했다. 이후 10년간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쳐 탄생한 나스닥은 상장 요건과 절차 등을 NYSE 등보다 훨씬 간결하게 운영함으로써 벤처기업들의 등용문으로 급성장했다. 지난 10일 미디어의 제왕으로 군림해온 타임워너사를 전격 흡수 합병한다고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한 아메리칸 온 라인(AOL)을 비롯, 인텔과 마이크로 소프트등 첨단 하이테크 기업들이 나스닥을 통해오늘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유명하다.이처럼 짧은 연륜 동안 미국 증권시장에굵은 획을 그어온 나스닥이 지난 4일 야심찬 구조조정 청사진을 발표했다. 거래 수수료를 낮추고 상장 요건을 완화하는 등진입 장벽을 낮춰 「디지털 글로벌 증권시장」으로 또한번 도약하겠다는 게 골자다.전미 증권딜러협회(NASD) 산하 기관으로돼 있는 편제를 독립 법인화해 운신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창립 30주년을 앞두고거래소 시스템을 완전히 「신장개업」하겠다는 얘기다. 올 중반까지 10억달러의 자본금을 조달해 별도 법인화하기로 하는 등의 일정을 내놓았다. 이중 2억달러를 들여첨단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면모일신에 특히 주력키로 했다.프랭크 자브 나스닥 회장은 이같은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윈-윈-윈 게임」이라는표현을 동원했다. 주식 투자자와 상장업체, 나스닥 회원사들에 모두 이익이 되는방향으로 체제가 개편될 것이라는 뜻이다.투자자와 상장업체들은 완화된 거래 기준과 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주식을 매매할수 있고, 회원사들은 수수료 인하로 경비절감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게나스닥측 설명이다.나스닥은 이와 함께 라이벌인 NYSE의 텃밭에도 발을 뻗치는 등 시장 확대 전략을 본격 추구한다고 선언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주식들을 온라인을 통해 나스닥 브로커들에게 경매시키기로 한 것도 그런 전략에서다.그러나 월가 관측통들은 나스닥으로 하여금 이런 변신을 서둘게 한 주적(主敵)은 NYSE가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 적이 따로있다는 것이다. 그 적은 다름아닌 「ECN(Electronic Communications Network)」이라고 불리는 가상 증권거래소들이라는 지적이다. ECN은 나스닥이나 마찬가지로 NYSE등과 같은 실체가 없다. 철저하게 인터넷등 온라인 상에만 존재한다. 그러면서도컴퓨터를 통해 주문 접수에서부터 매매 연결, 거래 청산까지 주식 거래와 관련된 모든 절차를 일괄 처리한다.과거 나스닥이 전자 거래 시스템이라는 신병기를 동원해 NYSE를 공격했던 것처럼,이들 ECN은 이런 첨단 방식을 통해 나스닥의 텃밭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ECN들은지난해말 현재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물량의 33%를 가로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7년의 경우 나스닥 거래 물량의 20%만이 ECN을 통해 소화됐던 것에 비춰보면 잠식속도가 얼마나 맹렬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ECN은 나스닥뿐 아니라 NYSE 거래 물량의 5% 가량을 소화하는 등 영역을 급속히 넓혀나가고 있다.나스닥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셈이다. 미국의 증시 감독 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해 활동을 벌이고 있는ECN은 현재 인스티넷, 아일랜드, 아키펠라고 등 9개에 달한다. 이중 인스티넷은 로이터 통신, 아키펠라고는 유수 증권회사인골드만 삭스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것을비롯해 대부분 ECN을 증권 거래 경험이 풍부한 대형 증권회사나 언론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 점도 나스닥으로서는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ECN들이 급속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비결은 과거 나스닥의 급성장 요인과 별로 다르지 않다.우선 ECN은 사실상 증권 거래소이면서도법적으로는 단지 증권을 거래할 뿐인 일개증권업체로 돼 있다. 때문에 정규 증권거래소에 대해 감독 당국이 부과하고 있는거래 감시 규정이나 투자자 보호 조항 등까다로운 법적 속박에서 벗어나 있다. 이에 따라 회원사들이 그만큼 자유롭게 주식을 매매할 수 있다. 또 모든 거래 절차를컴퓨터를 통해 일괄 처리하기 때문에 업무비용이 훨씬 덜 들어간다. ECN들은 이 점을 활용해 기존 증권거래소들에 비해 수수료를 매우 낮게 책정하고 있다. ECN 회원사들은 NYSE나 나스닥이 부과하는 거래 수수료의 10~16%만 내면 된다.◆ ECN, 자유로운 매매·싼 수수료 무기ECN의 강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회원사들만 참여하는 폐쇄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있어 대규모 물량을 거래해도 정규 주식시장에 별 충격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기관 투자가들에게 ECN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이들 ECN 가운데 아일랜드와 아키펠라고는최근 법적으로도 완전한 증권 거래소로 인정받으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어 나스닥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아일랜드 ECN의 매슈 앤드리센 회장은 최근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나스닥은 주식 매매를 처리하는 속도와 가격, 서비스, 유동성 등 모든 면에서 우리를 따라잡기 위해애써야 할 것』이라고 큰 소리 쳤다. 『적어도 이들 4대 부문에서는 우리가 나스닥보다 한걸음 앞서 있다』는 호언도 빼놓지않았다.ECN 관계자들의 이런 얘기는 결코 허풍이아니라는게 월가 관측통들의 설명이다. 전반적인 증권시장 상황이 점점 ECN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예컨대 최근 인스티넷과 아일랜드 등 8개ECN들이 거래 시세표를 공유키로 전격 합의했다. 거래 시세표가 공유되면 회원 증권사들이 ECN별 시세 동향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돼 ECN 참여층이 한층 두터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나스닥이 구조 조정의 청사진을 내놓은 것은 ECN들의 거센 추격으로부터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임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나스닥은 일련의 구조 조정 작업과 함께 ECN에대해 반격할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 설립키로 한 나스닥-재팬에서 인터넷을 이용, 미국과 일본 주식의거래를 연계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는것이다. 이 시스템이 효과를 거둘 경우 유럽 시장에도 수출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미국으로 역수입한다는게 나스닥의 구상이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나스닥 회원사들에게 주식 거래의 「글로벌 풀」을 제공할 수 있게 돼 ECN들보다 한 차원 높은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터넷 혁명이 바야흐로 월가의 증권 기관들을생존을 건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요즘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