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업계 'e-비즈니스 컨설팅' 붐

수수료로 현금 대신 해당기업 주식받아 …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 선호

세계 최고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사는 고객 기업들에 대한 경영 컨설팅 비용 청구와 관련해 한가지 원칙을 지켜왔다. 컨설팅 대가로 현금 외에 해당 기업의 주식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을 상대해야 하는 컨설팅 회사가 특정 업체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그 기업의 경쟁사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잠재 고객들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맥킨지사의 판단이었다. 뿐만 아니다. 현금 대신 덜렁 주식을 받아놓은 회사가 만에 하나 경영 실패로 도산할 경우, 컨설팅을 맡은 회사로서 위신이 손상될 위험까지 따른다.맥킨지사는 이에 따라 ‘컨설팅 비용으로 주식을 받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해왔다. 경쟁 컨설팅업체인 베인사가 지난 80년대에 일찌감치 벤처 캐피털 자회사를 설립해 수천만달러의 돈을 벌었음에도 맥킨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런 맥킨지사가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지난해부터 유망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수수료에 대해 일부분을 현금 대신 해당 회사의 주식으로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주식을 보유한 벤처 기업이 벌써 50개가 넘는다. 최근에는 북미와 유럽지역에 ‘비즈니스 액셀러레이터’라는 벤처 지원 사무소를 8군데나 설치했다. 이들 사무소를 통해 최장 9개월 동안 유망 벤처기업의 창업을 시작 단계부터 지원해 주고, 그 대가로 일정한 지분의 주식을 지급받는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 파트너·투자자로 위상 변화이같은 맥킨지의 ‘전향’은 연간 5백50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경영 컨설팅업계가 처한 환경 변화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컨설팅 산업에도 ‘벤처 투자’의 열풍이 불고 있다는 얘기다.그러나 맥킨지사를 비롯한 경영 컨설팅 회사들의 이같은 시도는 새로운 리스크를 수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금이 아닌 주식을 받는데 따르는 리스크가 그것이다. 해당 기업의 경영 실적이 안좋아 주가가 하락할 경우 그만큼의 손실이 컨설팅 회사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컨설팅 회사들은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영 컨설팅으로 노하우를 쌓다보면 수많은 기업들 가운데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안목 정도는 저절로 생긴다는 주장이다.일부 컨설팅 업체들은 우량주식을 다수 확보하고 있을수록 그만큼 컨설팅 회사로서의 경쟁력이 뛰어남을 입증하는 것으로 해석, 컨설팅 비용으로 주식을 지급받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컨설팅 업계에서 세계 최대의 외형을 자랑하는 앤더슨사는 96년 이후 1백50개사를 ‘엄선’해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부즈 앨런 앤드 해밀턴사는 맥킨지사의 ‘비즈니스 액셀러레이터’와 비슷한 개념의 창업 보육센터를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전역에 연이어 설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 업계에서는 평판이 덜 나있는 회사들일수록 벤처 주식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우수한 벤처 기업을 잘만 솎아내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컨설팅 회사로서의 ‘안목’과 ‘실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컨설팅 업체들의 이같은 ‘변신’은 산업 흐름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월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컨설팅 회사들은 공인회계사나 법률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거의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기업들을 상대로 컨설팅이나 회계 감사, 법률 자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국외자(局外者)’의 입장에서 일을 해왔다. 그러나 컨설팅 회사들이 수수료로 현금 대신 주식을 받음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게 됐다. 기업들과 단순한 채권-채무자의 관계가 아닌 투자자의 입장에서 영업을 하는 은행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컨설팅 회사들도 고객 기업과 일정 수준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 운명체’로 처지가 바뀌게 됐다는 얘기다.컨설팅 회사들이 주식 인수 대상으로 선호하는 업체는 당연히 인터넷 관련 벤처 기업들이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최근 가전업체 월풀사의 경영을 자문해주는 대가로 온라인 판매 자회사인 브랜드와이즈 닷 컴(brandwise.com)사의 주식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월가에서는 ‘e-비즈니스 컨설팅’이라는 장르가 새로 생겨났다. 인터넷 관련 벤처 기업들을 상대로 광고 및 물류, 온라인 판매 기법 등을 자문해주는 컨설팅 비즈니스다. 컨설팅 업계에서는 “인터넷 창업 컨설팅으로 일정한 주식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명함도 내밀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e-비즈니스 컨설팅이 폭발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컨설팅 업체들이 유망 벤처기업들을 상대로 현금 대신 주식을 지급받는 것에 열을 올리는데는 최근 퇴색 조짐을 보이고 있는 컨설팅 업계의 위상을 되높이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컨설팅 업계는 유명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취업 희망 분야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열풍이 휘몰아치면서 우수한 경영학 석사(MBA)들이 ‘닷컴’ 회사들로 몰려가는 바람에 인재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닷컴’ 회사들이 인재를 끌어들이는 주요인은 스톡 옵션에 있다. 심지어는 지난해 앤더슨 컨설팅의 조지 샤힌 회장이 소형 온라인 약국 체인회사인 웹밴사로부터 거액의 스톡 옵션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컨설팅 회사들로서는 더더욱 유망 벤처기업들의 주식을 끌어모으는 일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수수료 대신 지급받는 벤처기업의 주식 중 일부는 컨설팅에 참여한 임직원들에게 분배된다. 따라서 컨설팅 회사의 임직원들도 유망 벤처 기업으로부터 간접적인 방식의 스톡 옵션을 제공받는 셈이 된다. 부즈 앨런 등 일부 컨설팅 회사들은 벤처기업의 주식을 신입 사원들에게 나눠준다는 조건을 내걸며 우수 인재 유치에 애를 쓰고 있다.그러나 컨설팅 회사들의 이런 전략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로 주식 보유에 따르는 리스크다. 요즘은 증시가 장기 활황을 보이고 있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 상당한 손실을 입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컨설팅 전문가들이 기업들의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는 안목이 있다지만, 주가 전망과 관련해 기업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창업투자 회사들만큼의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종목 선정 과정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특정업체 주식보유 부작용 우려다음은 컨설팅 회사로서 특정 업체의 주식을 보유하는데 따르는 부작용 문제다. 컨설팅 회사들은 기업들을 상대로 경영 자문을 하는데 있어서 ‘방화벽(fire wall)’으로 불리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 컨설팅 과정에서 취득한 특정 기업의 경영 내용을 주위 동료는 물론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직업 윤리다. 컨설팅 업체들은 지금까지 이런 ‘방화벽’을 철저하게 지켜 온 덕분으로 동일 업종의 라이벌 회사들을 상대로 동시에 영업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컨대, 앤더슨 컨설팅사의 경우 택배업계의 경쟁회사들인 페더럴 익스프레스와 미 우편공사, UPS의 경영 자문 서비스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컨설팅 회사가 이 중 특정 업체의 주식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쟁 회사들은 자신들의 경영 정보가 해당 기업으로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해 그 컨설팅 회사와의 거래를 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맥킨지사는 이런 부작용을 감안, 컨설팅 대가로 취득한 주식을 일정 기간 내에 처분토록 한다는 내규를 마련하는 등 제도 보완에 부심하고 있다. 이밖에도 기업들간 경쟁이 치열한 업종의 주식은 취득하지 않는다는 등의 원칙도 서둘러 수립하고 있다. 바야흐로 컨설팅 업계에서도 ‘벤처 몸살’이 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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