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과 자유

설혹 자유로운 복장을 함으로써 다소 잃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가 무언지 알기 위한 자연스런 과정일 뿐이다. 재미없는 대학 입시에 찌든 애들에게 제발 복장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자. 부여받은 자유를 누리며 동시에 절제의 의미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딸이 중학교에 들어간 후 교복을 입는다. 하얀 블라우스에 넥타이, 치마…. 나름대로 디자인을 했다지만 내 눈에도 딸 눈에도 촌스럽기 그지없다. 디자인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한창 자유롭게 뛰어놀고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하얀 옷, 넥타이, 치마 모두 활동하기 불편한 것들 뿐이다. 하얀 옷을 빨고 다리느라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고생이고 감촉도 안좋고 불편한 교복을 입으니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불편하다. 학교가 집에서 꽤 떨어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하고 싶지만 치마를 입고는 자전거를 탈 수 없어 그 먼거리를 그냥 걸어다닌다.식사를 하면서 딸이 내게 질문을 한다. “아빠 때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는데 교복을 입는 것이 좋았어요?” “왜 교복이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난 거예요?”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자기 반에서 교복에 대한 토론을 했는데 찬성하는 애들이 하나도 없었단다. 학교의 가장 큰 고객은 학생인데 그 싫다는 교복을 왜 자라나는 애들에게 억지로 입힐까. 재미없는 수업에 딱딱한 교복이 한 술 더 뜨고 있는 셈이다.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처음으로 시커먼 교복을 입고 불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는 교복이라는 것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선택의 여지없이 입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불만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특히 딱딱한 칼라와 목을 조이는 호크는 그 ‘존재의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실수로 그것이 풀려 있으면 지적을 당하고 야단을 맞곤 했지만 학교 문만 벗어나면 당장 호크를 풀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교복이었는지. 교복을 입음으로써 덕을 보는 사람이 누굴까. 아마 교복을 만들어 파는 업체 외엔 없으리란 생각이다. 청소년의 탈선을 염려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모양인데 탈선이란게 교복을 입고 안입고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모기업에서는 제복 때문에 여러 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그 회사는 사장부터 전사원이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많았다. 촌스럽고, 갈아입기 불편하고….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이유로 위반하는 사람이 속출했고 회사는 기강을 잡는다고 곳곳에 사람을 배치하고 위반자를 적발해 부서에 통보하곤 했다.제복을 입는 이유야 있었겠지만 비싼 돈을 들여 직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제복 비용을 차라리 돈으로 주면 얼마나 고마워 할까. 게다가 여사원은 훨씬 비싼 돈을 들여 별도의 옷을 맞춰 입게 했는데 거기에 불만을 품은 여직원들이 단체 항의를 했지만 결국 힘센 회사의 승리로 끝났다.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자유, 행복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또 인간 대접을 받으면서 성장한 사람만이 남을 대접할 줄 안다. 입기 싫은 제복을 억지로 입게 함으로써 교외생활지도가 조금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된다. 설혹 자유로운 복장을 함으로써 다소 잃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가 무언지 알기 위한 자연스런 과정일 뿐이다.재미없는 대학 입시에 찌든 애들에게 제발 복장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자. 부여받은 자유를 누리며 동시에 절제의 의미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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