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닮아가는 경제 “심상찮다”

‘국제통화기금(IMF) 3년차 징크스’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후 처음 2년간은 경기가 회복되고 경제도 안정을 찾아가지만 3년차에 접어들면서 경제 안정감이 급속히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특히 경제주체들의 위기의식이 해이해지면서 경제이기주의 행동으로 인해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외채가 급증하는 것이 눈에 띈다. 물론 금리나 환율과 같은 가격변수가 치솟는 현상도 나타난다.대표적인 예로 멕시코를 들 수 있다. 멕시코는 지난 1982년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처음 2년간은 외환위기든 구조개혁이든 간에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다가 3년차에 해당하는 1985년 들어 당시 예정된 총선과 지방선거를 의식해 마드리드 정부가 개혁의 고삐를 늦추면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외채가 급증했다.결국 이것이 부담이 돼서 1995년에 다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런 요인을 감안하면 과거 금융위기 국가들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3년차에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는 것이 관례다.우리나라도 1997년 12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어느 금융위기국 보다 모범적인 위기극복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말부터 외환위기가 끝났다는 소식이 간헐적으로 들리면서 최근 들어서는 IMF 조기졸업 문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총선 앞두고 무역수지 적자 우려문제는 최근에 우리 경제 내에서 과거 멕시코에서 나타난 현상과 거의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시기적으로 우리나라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다. 선거를 앞두고 구조조정이나 개혁처럼 국민들에게 고통이 주어지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경제주체들의 이기주의 행동도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일부 계층들의 한풀이성 소비로 사치재 수입이 늘고 있고 노사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재계도 정치참여를 선언한 상태다. 정치권은 각 당의 이익을 위해 오합지졸(烏合之卒)상태다.이에 따라 IMF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지탱해 왔다고 볼 수 있는 무역수지가 지난 1월 들어 26개월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고 갈수록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전체적인 외채는 줄어들고 있으나 단기외채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국민들의 체감적인 경제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물가는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크게 오르고 있다. 금리도 좀처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월의 실업률은 5개월만에 다시 5%대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률의 경우에는 9.8%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물론 우리 경제가 이렇게 된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정책당국의 책임도 크다고 봐야 한다. 현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마치 현정부의 업적인양 공치사하고 다닌 것이 경제주체들의 위기의식을 급속히 해이시켰고 경제이기주의 행동을 낳게 한 것이다.여기에 금년 들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선으로 급등하고 엔화 가치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1백10엔대의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운신할 수 있는 폭도 좁아진 것이 또 다른 측면에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물론 현정부는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총선을 의식하고 보니 개혁일정도 질질 끌려가는 듯한 분위기다. 그동안 누차에 걸쳐 경제현실을 토대로 한 정책변경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하무인격으로 기존의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인 것도 갑자기 우리 경제의 불안감이 높아진 배경으로 볼 수 있다.결국 현재 우리 경제는 외형적인 경기호조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성장동인과 왜곡된 시장신호(market signal)로 인해 경제 내부의 취약성이 가려진 상태다. 따라서 앞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갑자기 증폭될 위험이 있다. 현시점에서 사전대응이 중요한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취약부문 보완 내부 대응력 키워야문제는 정책당국이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좁다는 점이다. 현상황에서 정책기조를 긴축으로 가져갈 경우 기업부실과 금융부실로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조개혁 정책이 후퇴할 우려가 있다. 특히 정책변화에 민감한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반면 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현정책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자금운용의 단기화, 부동자금 증가, 성장잠재력 약화와 같은 부작용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도 국제유가 상승, 엔화 약세로 악화되고 있다. 경제외적으로 불과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에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그러면 이러한 시기에 정책방향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기본방향은 정책당국이 직접적인 시장개입을 통해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취약부문의 보완을 통해 경제 내부의 대응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정책당국은 시장기능의 확충을 통해 각종 불균형 요인을 해소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이런 커다란 경제정책틀 내에서 무엇보다 대외환경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완충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제 해결의 관건은 역시 금융부실과 기업부실을 털어내는 일이나 그때까지 정책당국은 외환보유고 확충, 인접국과의 공조를 통해 시간을 확보해 줘야 한다.중장기적으로는 경제구조 자체를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소프트화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지식산업을 위주로 한 현정부의 신산업정책을 속도있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수출구조도 국내 기업들이 품질, 디자인과 같은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정치적인 부담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현 경제팀이 총선용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모든 현안을 순수한 경제원리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경제운용에 있어서는 거시경제 목표간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율, 금리와 같은 가격변수도 각각의 시장여건에 맞게 현실화시켜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무풍선이 부풀대로 부푼 상태다. 특정목표(저금리, 경제성장)를 의식해 다른 한쪽을 누르다(원화 절상) 보면 고무풍선이 터지게 마련(무역적자)이다.마지막으로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합의(moral suasion)도 구해 나가야 한다. 일부 계층들의 한풀이성 소비, 노사갈등, 재계의 정치참여도 다 그렇다. 만약 정책당국이 정치적 목표를 의식해서 나서다 보면 잠재된 불안요인이 좀 더 빨리 현실화될 수 있다는데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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