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흑자 목표달성에 '암초'

원화가치 일정수준 유지 … 국내기업 피해 최소화해야

최근 들어 일본의 사무라이본드 시장이 세계 최대의 자금조달 창구로 급부상 하고 있다.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99회계연도(99년4월1일∼2000년3월31일) 들어 세계 각국들이 사무라이본드 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가 총 6천5백95억엔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현재 터키 남아공 등 일부 국가가 계획하고 있는 물량을 감안하면 금년 3월말에 끝나는 99회계연도에는 자금조달 규모가 약 8천억엔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같은 실적은 98회계연도의 1천35억엔에 비해 무려 7.7배에 이르는 것이다.세계 각국의 자금조달 창구로서 사무라이본드 시장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지난해 이후 일본이 경기부양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제로금리정책 때문이다. 같은 기간중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사무라이본드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비용이 가장 싸졌기 때문이다.물론 각국의 신용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무라이본드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평균금리(3년만기 채권기준)는 3% 내외다. 현재 런던은행간 우대금리(리보금리)가 6.1%임을 감안하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최근에 엔화가 약세로 돌아섬에 따라 환율변동을 감안한 실제 조달 비용은 발행금리보다 더 싼 상태다.이같은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국제금융 시장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간헐적으로 눈에 띄었던 ‘엔 차입 거래(yen carry trading)’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딩’은 헤지펀드를 비롯한 국제 투기자금들이 값싼 엔화 자금을 조달해 달러화 등 여타 통화표시 자산에 투자하는 현상을 의미한다.‘엔 캐리 트레이딩’은 아시아 외환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직전인 96회계연도에 사무라이본드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가 무려 1조2천8백억엔에 달했다. 이러던 것이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2년 후인 98회계연도에는 1천35억엔으로 급감했다.현재 세계 각국간의 금리수준을 감안할 때 사무라이본드 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미국의 국채시장으로 몰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한때 6.7%대에 달했던 미국의 30년 국채수익률이 최근에는 6.1%대로 하락하고 있다. 그만큼 국제투자 자금이 몰리면서 미국 채권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수익률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국제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몰리면서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약세 국면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2월24일에는 엔화 가치가 한 때 1백1엔 후반대로 밀렸다. 지난해 8월 이후 최저수준이다.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금년에 1백엔대의 강세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았던 예측기관들의 전망을 완전히 무색케 하고 있다.현재 일본과 여타 선진국들의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앞으로 일본과의 금리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지난해 이후 추진하고 있는 제로금리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기가 다시 침체(triple-dip)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반면 여타 선진국들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네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해온 미국은 금년 내에 최소한 두차례 이상의 추가 금리인상이 점쳐지고 있다. 유럽도 유로화 가치안정과 인플레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금리인상 여부를 보아 가면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앞으로 일본과 여타 선진국과의 금리차가 확대될 경우 최근의 ‘엔 캐리 트레이딩’이 좀더 가시화되면서 엔화 약세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금년에 1백엔대의 엔화 강세를 점쳤던 주요 예측기관들도 최근 들어서는 일제히 수정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대부분 금년말 엔화 가치를 1백1엔∼1백20엔으로 당초 예상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장 줄일 대책마련 시급최근처럼 세계 자금조달 창구로서 사무라이본드 시장이 부상하고 ‘엔 캐리 트레이딩’이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로서는 크게 세가지 점에 있어서 우려된다.첫째,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우리 수출에 미치는 타격이다. 가뜩이나 지난 1월 무역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26개월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상황이다. 2월 들어서는 적자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책당국을 중심으로 관련기관들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특히 우리 수출구조는 엔화 가치에 크게 의존하는 천수답(天水畓)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진국들의 수입규제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이런 요인을 감안하면 무역적자 추세는 기조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금년에 정부가 세운 무역흑자 목표치 1백20억달러 달성은 힘들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둘째, 국내 금융기관간 혹은 기업간의 격차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사무라이본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전력, 산업은행과 같은 일부 신용등급이 좋은 기관들은 이미 사무라이 본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활용하고 있다.결국 세계에서 가장 값싼 자금을 활용하느냐 못하느냐 여부에 따라 각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운명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성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셋째, 외화조달과 운용상의 불일치(mis-match) 현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 문제가 우리로서는 가장 우려되는 사안이다. 과거 외환위기 직전에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값싼 엔화 자금을 조달해 장기투자인 동남아 부동산과 러시아 채권에 투자한 바 있다.이러한 외화조달과 운용상의 미스매치 현상은 97년 하반기 이후 우리 경제에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물론 정부도 이런 점을 중시해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오고 있으나 현재 인프라 수준을 감안할 때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우리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정책당국은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엔저(低) 추세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단기적으로는 원화 가치를 일정수준 이상 유지해줌으로써 국내 기업들이 최소한 환율면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외환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특히 우리 수출기업들의 대부분이 거래소 시장에 상장된 점을 감안하면 원화가치 유지를 통해 수출증대를 모색하는 것은 코스닥 시장과의 균형적인 발전방안이기도 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품질과 디자인, 첨단기술과 같은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은행간 혹은 기업간의 격차를 줄이는 문제에 있어서는 별다른 방안이 없다. 결국 대부분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사무라이본드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이를 위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마지막으로 외환관리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아직까지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외화조달과 운용상의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각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조기경보체제(early warning system)를 도입해 외화조달과 운영상의 균형감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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