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정서에 호소, 입맛에 '딱'

심리적 저항감 줄이며 매출증대 효과, 국내진출 기업 잇따라 제작 … 해외수출도 이뤄져

‘펩시맨’. 근육질 체구에 금속성의 옷을 걸치고 우스꽝스런 행동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줬던 펩시콜라의 광고주인공이다. 펩시콜라의 한국 진출 이후 최고의 광고·브랜드 인지도와 함께 펩시콜라의 시장점유율이 30%를 넘는 대기록을 세우는데 있어 일등공신이 됐던 광고이기도 하다.하지만 이러한 펩시맨광고가 아시아, 그것도 한국과 일본만을 겨냥한 광고물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펩시맨이 등장하는 광고는 “두 나라에서만 방영됐다”는 것이 한국펩시콜라측의 설명. 마케팅부 이영애 과장은 “당초 미국 본사에서 반대했지만 코믹한 광고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은 점을 감안해 선택한 광고”라며 “코카콜라나 콜라독립 8·15 등과의 경쟁이 치열한 시장상황에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펩시콜라의 예처럼 외국기업들이 한국시장을 겨냥해 한국의 시장상황이나 소비자들의 입맛에 ‘딱’ 달라붙는 광고를 통해 기업 제품 브랜드 등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한국적인 문화나 정서를 담은 광고를 통해 외국기업이란 심리적 저항감을 없애는 방편으로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광고제작시 대행사측에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에 맞는 광고내용이나 소재를 주문하거나, 외국모델 대신 한국모델만을 고집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마당쇠·심청가·승려 등 ‘한국냄새 물씬’한국시장을 겨냥한 외국기업들의 한국적인 광고 가운데 가장 눈에 두드러진 사례는 GM코리아의 이미지 광고. 외국인 모델이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은 마당쇠로 등장, 시선을 끌었다. GM은 그동안 수십여종의 자동차제품에 초점을 맞춘 광고를 주로 해왔던데다 기업이미지 광고사례가 드문 회사였다. GM코리아측은 마당쇠처럼 현지국가의 정서나 문화를 배려한 광고는 처음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광고는 큰절을 하는 1편에 이어 어린아이를 업고 나무에 걸린 연을 떼내는 2편이 선보였다.회사측에서는 “정확한 (광고효과의)측정이 안됐지만 반응이 좋았다”는 판단이다. 논현동 매장의 영업사원인 황원구씨는 “고객들로부터 특이하고 좋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광고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을 설명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GM코리아측은 지금 3편을 제작중이다. “역시 같은 외국인 모델이 등장하지만 이전의 GM 이미지에 초점을 둔 것들과 달리 이번 광고는 GM자동차의 기술적인 능력을 강조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강동헌 홍보과장의 설명이다.물론 GM측의 이러한 광고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우차입찰에 포드 등 라이벌 업체들이 경쟁자로 나서면서 입찰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이미지광고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GM측도 굳이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광고기획 당시)GM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이 아예 형성되지 않았다고 판단된데다, 판매나 이미지제고 등 한가지 효과만을 겨냥하고 광고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강과장의 설명이다.지난 97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겨냥, 불고기버거를 선보였던 한국맥도날드가 설을 앞두고 내보였던 광고도 단연 화제다. 판소리 ‘심청가’를 원용한 광고가 그것이다. 줄거리는 5백원 밖에 없는 심청이가 ‘맥도날드 후렌치후라이가 단돈 5백원’이라는 방을 보고 이를 사서 심봉사에게 올리자 그 맛에 놀란 심봉사가 눈을 뜬다는 내용이다.광고소재나 등장인물 등의 신선함도 컸지만 가장 독특하게 와 닿은 점은 역시 맥도날드 특유의 로고송을 창으로 처리한 점. 맥도날드 햄버거의 광고를 만든 레오버넷코리아 기획국의 최현식 부장은 “한국적인 것을 요구하는 광고주의 요청에 따라 ‘심청가’를 선택했고 로고송을 창으로 처리했다”며 “‘전쟁중’이라고 표현되는 패스트푸드업계의 경쟁환경에서 차별화를 노려 성공한 광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최고경영자가 “컴팩코리아를 외국기업이라 부르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할 정도로 ‘한국화전략’을 추구하는 컴팩코리아도 지난해 두편의 재미있는 한국적인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하나는 두명의 승려를 등장시킨 사진을 배경으로 삼고 ‘고수야? 하수야?’를 카피로 다룬 광고. 유닉스기반의 서버시장에서 자사제품인 알파서버의 성능을 강조한 것이었다. 다음에 선보인 것은 두명이 각각 밥그릇과 밥솥을 놓고 밥을 먹는 사진에 ‘돈버는 서버야? 돈먹는 서버야?’라는 대구를 맞춘 카피를 활용한 광고. N/T기반의 서버시장에서 역시 자사제품인 프라이언트서버의 유지 보수 성능 등 효율성에 초점을 두었다.두편의 광고가 나간 후 업계에서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했다’고 평가했고, 컴팩직원을 보면 ‘고수가 지나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반응이 컸다. 뿐만 아니다. 실제 영업에서도 광고를 통한 이미지제고 덕을 봤다는 것이 컴팩코리아측의 평가다. “지난해 하반기에 경기가 살아나면서 N/T서버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했는데, 광고 덕분에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경쟁업체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 마케팅팀 정미교차장의 설명이다.이러한 광고효과에 고무된 컴팩코리아측은 올해에 선보일 광고도 한국정서에 맞게 한국에서 제작할 수 있도록 미국 본사와의 절충을 끝낸 상태다.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e-비즈니스 환경에 초점을 두고 컴팩코리아의 제품과 기업의 한국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광고를 만들 계획”이라는 것이 정차장의 말이다.한국P&G의 ‘비달 사순’ 샴푸광고도 파격적이다. 이제까지의 샴푸광고는 스타들에 초점을 맞춰 제품특성을 살리지 못했거나, 외국모델들이 등장해 머릿결만을 강조하는 데에서 그쳤다는 평을 듣는 것들이 대부분.하지만 한국P&G는 슈퍼모델(이선진)이 등장해 소음속에 질이 떨어지는 붓으로 써보다가 이내 좋은 붓으로 바꿔 행위예술을 하듯 한자로 ‘미(美)’자를 화면 가득하게 써넣는 광고를 내보냈다. “외국제품이지만 한국인의 모발에도 잘 맞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모델을 활용해 한국적인 광고를 컨셉으로 잡고 제작한 광고”라는 것이 마케팅팀 박현욱 대리의 설명이다.광고효과에 대한 회사측의 평가도 고무적이다. “4년전 국내 시장에 런칭한 이래 지난 1월에 최고의 시장점유율(전국기준)인 7.2%를 기록했으며, 이는 20여개 샴푸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서울 2위, 전국 4위의 실적”이라는 것이 박대리의 설명이다.뿐만 아니다. 이 광고는 대만 홍콩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하는 부가적인 이익도 거두었다. 1억원 가량의 예상치 않은 수익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한국P&G는 광고 스토리 구성이나 모델기용 등에 있어 철저히 한국적인 광고를 제작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한국적인 문화나 정서를 담은 광고물을 내보내려는 시도는 다른 기업에서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한때 외국인들이 출연했던 광고를 내보냈던 한국피자헛은 가수 김태욱이 등장해 패밀리카드가 있으면 콜라가 공짜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광고나 매장직원이 고객만족보증을 강조하는 광고 등 한국인 모델을 내세워 소비자들의 입맛을 겨냥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씨티은행도 최근 광고에 한국돈을 모델로 사용하려고 시도했지만 화폐를 광고모델로 사용할 수 없는 제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달러를 모델로 사용하기도 했다.◆ 소비자 중심 마케팅, 우리기업도 배워야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적인 문화나 정서를 담은 광고를 제작하고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이전까지의 생산자 논리에 중점을 뒀던 단일화·표준화된 광고를 벗어나 현지화·차별화를 통한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을 펼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서강대 영상대학원 광고PR학과 김충현 교수는 “외국기업이라는 심리적 저항감을 희석시키고 한국적 시장상황에 맞게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다.외국기업들이 본사에서 추구하는 컨셉이나 표현 등에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는 글로벌한 광고를 통해 확실한 이미지 구축과 포지셔닝에 성공한 후에 한국정서에 맞는 광고를 통해 현지화·차별화를 시도하는 사례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국내 업체들로서는 이러한 외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으며,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배워야 할 점이라는 것이 김교수의 덧붙인 설명이다.다이아몬드베이츠 싸치앤사싸치 코리아의 김진양 마케팅팀 부장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광고가 없지 않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밥솥이나 판소리 등 한국적인 ‘문화코드’를 갖고 접근하는 것은 한국시장에서의 문화적 동화를 시도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