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거래·신산업 활기 ‘그래도 희망’ … 수급불균형 해소할 모멘텀 기대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있다. 어떤 불운이나 악재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서 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인데 재미있게도 영어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Evil Doesn’t Come Alone’이라는 속담이 그것이다.요즈음의 주식시장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이다. 주식시장은 현재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미국 나스닥 시장의 폭락이라는 대형 악재가 4월 장에 대한 기대를 무산시키면서 지수 800선을 붕괴시키더니 급류를 타기 시작하는 금융산업의 2차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시장을 연타했다.설상가상으로 현대그룹의 자금 악화설이라는 악재로 700선마저 붕괴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행에서는 점증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비하여 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시장 분위기는 음산함마저 감돌고 있다.주가는 참 신기하게도 미래를 잘 예측한다. 실제로 작년 7월부터 주가의 움직임에는 이상 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경기는 계속 고성장을 지속한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기 관련주는 계속 밀리기 시작했고 증권주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낸다고 하는데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다.코스닥과 정보통신주에 편중된 인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장의 왜곡이라고도 했고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 과매도 국면이라고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 시장의 폭락이 한국 시장 폭락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다. 과연 그럴까 ?◆ 시장분위기 암울할수록 긍정적인 요소 살펴야눈사태는 보통 돌멩이 한 개가 굴러 떨어지면서 시작되지만 돌멩이가 눈사태의 원인은 아니다. 눈사태의 원인은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었던 펀더멘탈한 환경인 것이다. 주가 하락의 계기는 외부적 충격이지만 원인은 우리 시장 내부에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미흡했던 금융산업과 재벌의 구조조정이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이제 주가가 엄청나게 떨어지고 나서야 그동안 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모두들 납득하는 주가의 하락 요인들을 몇 달 전에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아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장에서 주가가 왜 이렇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나를 설파하는 것은 사실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미 손실은 발생했고 추가 하락이 불가피해 보여도 팔기 어려울 정도로 낙폭이 크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 가려진 긍정적인 요소를 적시하여 지나친 비관의 오류를 피하는 것이 생산적인 노력일 것이다.시장을 더 이상 크게 비관할 필요가 없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주가가 이미 많이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 보다 더 큰 호재는 없다.종합주가지수로는 최고치 대비 35%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종목별로는 최고치 대비 70~80% 정도 떨어진 주식들이 대형주 중에서도 허다하다. 이러한 낙폭은 과거 대세 하락장을 방불케 하는 깊은 하락이다. (별표 참조)경기의 모멘텀 역시 작년에 비해서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7~8%의 견실한 성장을 하고 있어서 전면적인 경기 후퇴의 가능성은 없다.무역 수지의 악화와 성장률 둔화는 경기의 연착륙 과정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경기 후퇴기에 거의 모든 산업들이 동반하여 침체기에 빠지던 과거와 달리 새롭게 태동하는 한국의 신산업들은 기존 산업들의 경기순환의 부침을 크게 완화하는 완충 작용을 할 것이다.정보통신 인터넷 소프트웨어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신산업에서의 한국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러한 산업들은 경기에 따른 기복이 적고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미래 한국의 든든한 주역이 될 것이다.과거와 달리 현재의 주식시장은 신용 매매가 전혀 없는 순수한 현금 거래 시장이라는 것도 증시를 더 비관할 필요가 없게 한다.과거처럼 주가의 낙폭이 커지면 신용 담보 계좌가 양산되어 반대 매물이 주가 하락을 재촉하는 악순환 구조의 시장이 아니다. 현금 매수자는 낙폭이 지나치게 커지면 장기 보유로 선회하기 때문에 주가의 하방 경직성은 조만간 확보될 것이다.또한 금융 시장 주변에는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돈이 떠다니고 있다. 물경 수십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러한 부동자금의 상당 부분은 어떠한 계기만 마련되면 주식 시장으로 유입될 자금이다. 표면적인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주가가 오를 어떠한 계기만 마련된다면 순식간에 해소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금융시장 부동자금 증시유입 계기 마련될 듯모두들 수급 사정이 너무 나쁘고 악재가 많아서 주가가 오르기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역으로 주가는 바닥권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1998년 가을을 상기해보자.종합주가지수가 270 포인트이던 시절,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주가지수가 200 포인트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강변했다. 처절하게 틀렸다. 더 가깝게는 금년 1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상반기중 지수 1,200~1,300 포인트 돌파를 장담했었다. 불과 3~4개월의 전망도 이렇게 어려운 것이 주가다.주가는 묘한 구석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직 상투가 아니라고 하면 상투고 아직 바닥이 아니라고 하면 바닥이다. 지금은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 단계인가.금융권의 2차 구조조정과 현대그룹 문제는 우리 경제가 질적인 도약을 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이번의 마지막 진통 뒤에는 미국 같은 장기 상승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래량 회전율을 비롯한 여러 기술적 지표들은 주가가 바닥국면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비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인내를, 현금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