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 깃든 품질주의로 ‘명품’ 금자탑

상감기법의 짜맞춤공법 고집, 불황 뚫고 세계 브랜드와 어깨 나란히 … 전통가구 세계화 박차

석양을 받으며 연인과 함께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은 사람을 매혹시킨다. 세련되고 날렵한 모양에 거침없는 스피드. 하지만 벤츠와 같은 묵직한 차 역시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다. 수십년 동안 거의 변함없는 중후한 모습. 이른바 고전이다.클래식은 영원하다. 가구 분야에도 이런 게 적용되는 것일까. 서울 사당동에서 잠실로 최근 사무실을 옮긴 홍송가구(대표 김진구·42). 이 회사는 ‘거꾸로 경영’을 추구한다.가구는 유행이 중요하다. 세계 가구산업의 중심지 밀라노는 세계 가구를 변화시킨다. 컬러풀한 가구에서 내추럴스타일 등. 밀라노가구전에서 선보인 가구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세계로 퍼져나간다. 국내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밀라노가 붉은 체리색깔의 제품을 선보이면 3∼6개월만에 한국은 붉은 가구 일색으로 변한다.그런데 홍송가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통가구만을 고집한다. 그것도 한국의 전통문양이 들어있는. 젊은이들은 21세기 인터넷시대에 무슨 전통가구냐고 고개를 가로저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직하게 전통문양으로 만든다. 고산 윤선도의 그림, 십장생,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소량 생산판매로 브랜드 가치 더해정교한 상감기법으로 무늬를 넣은 뒤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춰 생산한다. 상감기법은 원목을 조각칼로 깊게 판뒤 색깔이 다른 원목을 심어넣어 무늬를 만드는 기법. 1백% 수공으로 진행되는 이 기법은 학의 깃털이나 물고기 비늘까지 생생히 표현할 수 있다.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사용하는 나무는 미얀마산 가링이나 파푸아뉴기니산 타운, 미국산 향나무 등 고급품. 근처에만 가도 나무향기가 코를 찌른다.게다가 한 제품을 15세트 이상 만들지 않는다.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야 원가가 낮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인동초장 등 극소수 제품을 제외하고는 아주 적은 양만 만들어 공급한다. 장인정신을 고수하기 위해서다.이 회사는 최근 싱가포르로부터 4천만원어치의 가구를 주문받았다. 한국을 찾았던 사람이 산 것. 고산 윤선도의 그림이 그려진 장롱을 비롯해 소파 식탁 등의 세트다. 싱가포르 바이어는 현지에 빌라단지를 지으면서 가구도 설치키로 했는데 각국의 특성을 살린 가구를 들여놓기 위해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는게 홍송가구측 설명이다.서울 잠실과 사당동의 홍송가구 매장에는 외국인이 종종 들른다. 가장 한국적인 가구를 만드는데 외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한국에 살던 기념으로 한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제품을 사가지고 가길 원하는데 이의 하나로 가구를 사는 것.홍송가구는 가구업체 상당수가 불황의 늪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올 매출목표는 50억원. 많은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매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외형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전국에 대리점이 8개밖에 없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웬만한 가구업체는 1백개가 넘는 대리점을 두고 있다. 이 회사는 정성을 기울인 수공예 가구를 만들어 소수의 판매점을 통해서만 판다. 김사장은 무늬를 직접 디자인하고 나무를 깎는다. 정성껏 만든 제품을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 파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대형 가구업체들이 한가지 디자인의 장롱을 5백세트내지 1천세트씩 만드는 것과 차이가 있다.◆ 세계 에코디자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가장 한국적인 가구가 세계적인 가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가구로만 승부를 걸겠습니다.”김사장은 3대가 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가구를 고집한다. 원목가구라고 모두 튼튼한 것은 아니다. 건조상태 가공방법에 따라 갈라지기도 하고 휘기도 한다. 홍송가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특수한 건조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이 공법으로 건조시킨 장롱 문짝은 실험결과 원목판 상태로 12개월 동안 햇볕에 놔둬도 뒤틀리거나 갈라짐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특허와 의장등록 실용신안 등 지식재산권 출원건수가 20여건에 이른다.이런 건조기법은 팔만대장경에서 힌트를 얻었다. 1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대장경의 비결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했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무결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대기중 수분에 의한 수축과 팽창을 막는 기법을 고안해 낸 것.이런 노력끝에 홍송가구는 프랑스 환경·에너지청으로부터 볼보 미쉐린 등과 함께 세계적인 ‘에코디자인’ 기업으로 선정됐고 한국생산성학회로부터 명품대상을 받기도 했다.김사장은 신세계백화점에서 가구매장 등을 담당하다가 종합가구유통업에 진출한 뒤 90년 홍송가구를 설립했다. 그는 “작지만 강한기업,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다만 고가품에만 치중해 온 전략을 일부 바꿔 고품질은 유지하면서 젊은층이 큰 부담없이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원목가구 분야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따라서 내년에는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확장이 아니라 전통가구의 수요층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02)582-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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