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시대, 술시장 ‘술렁’

가장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주류업계는 소주업계다. 소주시장의 올해 화두는 순한 소주로의 세대교체. 65년부터 19년간 30도 희석식 소주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다가 74년부터 약 24년 동안 25도 소주가 소주시장을 지배했다.그러다가 나온 것이 23도 순한 소주. 98년 진로가 23도짜리 참이슬을 출시하면서 25도 소주를 대체, 현재 소주시장은 23도 소주가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올들어 또 한번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의 산, 진로의 참이슬 리뉴얼 제품 등이 모두 22도 소주를 표방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지방 소주업체들도 하나같이 22도 순한 소주로 승부를 걸겠다는 입장이다.소주업계의 이런 순한 소주 바람은 최근의 음주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주는 ‘서민을 위한 대중주’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예전의 그 의미에는 막노동꾼을 비롯한 육체노동자, 즉 블루칼라의 애환을 달래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물론 지식노동자, 즉 화이트칼라들도 소주를 마셨다. 그러나 이때의 의미조차 즐기기 위한 술보다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취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즐기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위해서, 담소를 위해서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젊은층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독한 소주를 기피하는 신세대들은 당연히 맥주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한때 소주는 중년의 술, 맥주는 신세대의 술로 나눠져 ‘세대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소주업계로선 점점 사그라져 가는 중년보다 막 피어나는, 그래서 구매력도 왕성한 신세대를 외면하고선 아예 ‘비즈니스’를 포기해야 할 입장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소주에 붙던 35%의 세금이 72%로 껑충 뛰었다. 술 도수에 따라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선진국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격면에서 소주의 경쟁 주종이었던 맥주업계로선 가격차이가 적어지면서 시장확대의 호기를 맞았지만, 소주업계는 기존의 고객마저 맥주업계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순한 소주 바람 계속될 것”소주업계의 알코올도수 낮추기 바람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순한 소주 선호경향 못지 않게, 더 이상 고객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아니 맥주 선호 소비자조차 소주 고객으로 끌어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소주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소주업계 알코올도수 낮추기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2~3년 안에 20도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순한 술 바람은 민속주 업계에도 불고 있다. 현재 1백여종의 지역별 특산주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 민속주 시장에서 두드러진 트렌드 또한 알코올도수가 낮은 순한 민속주의 선전이다. 민속주의 대명사격인 문배술도 기존의 40도 대신 25도 제품을 내놓고 있으며, 시장에서도 독한 민속주 대신 순한 민속주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이다.이는 민속주 역시 술의 한 종류로 일부 특수계층이 아니라 대중을 상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소비자의 흐름이 순한 술 선호로 가는 이상 민속주라고 예외적으로 독한 술을 고집할 수 없다는 게 민속주 업자들의 설명이다.지난해 소주의 주세인상에 따라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맥주업계는 올해 시장전망을 상당히 어둡게 보고 있다. 맥주가 대중주라고는 하지만 아직 소주에 비해 비싸고, 경기불황기엔 맥주 소비자의 상당수가 소주 쪽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맥주업계는 축구, 골프 등 각종 스포츠 이벤트와 페스티벌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계속 붙들어 두는데 중점을 둘 계획.위스키 고급화 두드러져맥주업계의 주된 변수는 벌써 몇 년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하이트의 아성에 오비와 카스의 공동 시장공략 작전. 여기에 하이트는 단일 브랜드 전략으로 수성의 의지를 다지는 한편, 흑맥주 출시로 틈새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와 함께 맥주업계에서도 알코올도수 5도짜리의 순한 맥주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위스키는 점점 고급화의 길을 걷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산 위스키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섬씽스페셜이나 VIP, 패스포트 등 스탠더드급 위스키들은 거의 사장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12%. 대신 83%의 시장을 프리미엄급 위스키가 차지하고 있다. 숙성기간 15년 이상의 슈퍼프리미엄급 시장은 지난해 5% 수준에 머물렀지만, 올해 들어 비중이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했던 위스키시장은 올해 들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 경기불황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게 바로 위스키이기 때문이다.와인은 사실상 국내 주류업계의 복병이다. 예전보다 훨씬 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고급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대중화 가능성은 많다. 업계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열릴 2002년이 국내 와인대중화의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와인 대중화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수입 와인의 시장장악이다. 요 몇 년 사이 와인소비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국산 와인 판매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일부 업체의 와인은 아예 이름조차 잊혀졌다. 대신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외국 와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외국 와인들은 겨우 몇천원 짜리에서 몇십만원, 몇백만원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이점도 갖고 있다.외국 와인업체 및 와인 수입상들은 올해부터 내년에 걸쳐 대규모 와인관련 프로모션도 계획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관심사 역시 소주, 맥주로 편중돼 있는 한국 애호가들을 와인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결국 2001년 술시장의 경쟁은 같은 주종에 속해 있는 업체들의 경쟁뿐만 아니라 주종이 다른 술끼리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 국산과 수입품의 경쟁 등 이중삼중의 경쟁으로 시끌벅적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국민 1인당 맥주 소비량 81병지난 한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사람당 63ℓ의 술을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주류공업협회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맥주 소주 탁주 위스키 등 4대주의 양은 모두 29억1천2백만4천ℓ로, 이를 지난해 12월 말 현재 우리나라 인구 4천6백12만5천명으로 나누면 국민 1인당 63.1ℓ의 술을 마신 셈이다.지난해 술 소비량을 주종별로 보면 소주는 국민 1인당 52병(3백60㎖ 기준)을 마셔 99년 64병보다 줄었다. 그러나 맥주는 81병(5백㎖)을 마셔 99년 72병보다 다소 늘었고, 탁주는 4.9병(7백50㎖)으로 5.2병보다 소폭 감소했다. 반면 독주인 위스키(7백50㎖)는 0.67병으로 99년 0.37병보다 두배 가량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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