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산’ 의욕적 출시, 진로 1도 낮춘 참이슬로 ‘수성 자신’ … 보해 등도 새 입맛잡기 경쟁
국내 소주업체들이 도수를 낮춘 소주를 선보이면서 '22도' 돌풍이 예고되고 있다. 하나로 소주매장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 왔지만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최근 시중에서 많이 떠도는 말이다. 경기불황으로 국민들의 심리가 그만큼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물론 업계다. 그만큼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얼어붙은 시장에도 예외는 있다. 바로 소주시장이다. 소주는 대표적인 불황 특수 상품으로 꼽힌다. 경기불황 조짐이 보이면 오히려 매출이 늘어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올해 소주시장 규모가 1조5천억원, 9천만 상자(30병들이 상자기준)로 지난해보다 15~2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전체적인 시장확대 기대 속에 올들어 업계를 주도하는 가장 큰 흐름은 22도짜리 순한 소주로의 세대교체와 진로가 독주하고 있는 소주시장의 틀을 다자경쟁 구도로 바꾸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두산·보해 “진로 독주를 막아라”우선 소주시장의 현황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국내 전체 소주시장은 7천9백여만상자 규모. 이중 51.9%를 진로가 먹었다. 나머지 48.1%의 시장을 금복주(9.8%), 무학(8.0%), 대선(7.9%), 두산(7.6%), 보해(6.8%) 등이 나눠먹은 셈이 됐다. 나머지 하이트, 선양, 한라산 등 소규모 업체들은 고작 1~3%의 점유율을 보였다. 이들 중 금복주 무학 대선이 영남권, 보해가 호남권에 본부를 둔 지방업체임을 감안할 때 진로는 수도권 소주시장을 90% 이상 삼켜버렸다는 결론이 나온다.덕분에 지난해 소주시장은 주세 인상(35%에서 72%로) 및 이로 인한 사재기 등의 영향으로 사실상 99년보다 18.5%가 감소했고, 업체별로는 전년대비 두산 69.7%, 보해 29.4%, 금복주 23.5% 등의 감소율을 보였는데도 진로는 오히려 10%가 넘는 판매 신장률을 보였다.진로 소주시장 석권의 일등공신은 바로 ‘참이슬’로 통용되는 ‘참眞이슬露’다. 지난해 전국 소주시장의 45%, 수도권 시장의 93%를 참이슬이 차지했다. 진로가 차지한 소주 시장 점유율이 거의 참이슬 점유율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한가지 브랜드의 소주가 소주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사례는 소주탄생 이래 처음이라는 얘기도 나온다.뛰어난 인물에게 시샘하는 사람이 많듯, 이와 같은 시장 독주 상품에는 경쟁업체 및 경쟁상품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올해 경쟁업체들의 최대 목표는 ‘참이슬’로 대변되는 진로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진로타도’작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현재 이 ‘작전’에 가장 적극적인 업체가 두산과 보해다. 두 업체 모두 참이슬의 성공요인중 하나로 꼽히는 ‘순한 소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두산은 지난 1월17일 알코올도수를 22도로 낮추고 녹차 성분을 첨가해 숙취를 빨리 깰 수 있도록 한 ‘산(山)’소주를 선보였다. 지난 93년 강원도에 연고를 둔 경월소주 인수로 소주업계에 뛰어든 두산은 이듬해 출시한 그린소주 덕분에 96~99년 사이 소주시장의 16~17%를 차지하며 수도권의 또다른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두산의 지난해 실적은 완전한 참패였다. 점유율이 7%로 떨어지고, 매출액도 전년보다 60% 이상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동안 선보였던 몇몇 신제품도 채 1년을 넘기지 못한 채 쓰러져 갔다.회사 관계자는 “이 제품에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털어놓는다. ‘산’이란 브랜드 이름도 깨끗한 자연을 연상시키면서 ‘두산’이란 회사이름을 떠올리도록 고려해서 만든 것이다.두산의 목표는 우선 수도권 시장점유율을 연말까지 15%대로 끌어올리는 것. 두산은 이를 위해 올 상반기에만 50억원을 광고마케팅비로 책정해 놓고 “공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여기에는 이영애 황수정으로 이어지는 참이슬의 여성적인 이미지에 대비되도록 터프가이 최민수를 모델로 내세워 남성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광고전략과 더불어 신세대를 겨냥, 애니메이션 메일을 활용한 ‘바이러스 마케팅’ 등이 주요 시장개척 무기로 동원되고 있다.한때 곰바우 김삿갓이라는 프리미엄 소주로 수도권 시장에서 짭짤한 재미를 봤던 호남권 소주회사 보해도 수도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보해는 지난해 말 전남지역에서 출시한 새 소주 ‘맑은 보해’(23도)를 1월 말부터 수도권에 판매하면서 참이슬 추격에 나섰다. 맑은 보해는 제조과정에 산소여과공법을 이용, 숙취해소 및 깨끗한 맛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 보해는 수도권 시장점유율 15%를 목표로 올해 3백60만 상자(24병들이)를 팔 계획인데, 이를 위해 3월까지 20억원을 광고비로 투입할 방침이다. 보해는 이와 더불어 ‘맑은 보해’ 및 ‘천년의 아침’을 주력브랜드로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 보해 마케팅팀 최정규 과장은 “지난해 4백만 달러였던 수출을 올해 30~40% 늘려 잡고 있다”며 “지방 소주업체가 수도권 진입에 어렵다는 점을 감안, 수출을 이용한 우회작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 우선 호평을 받은 뒤 국내로 회귀하겠다는 설명이다.보해 ‘천년의 아침’ 해외로 눈돌려이밖에 금복주(대표이사 김동구)의 ‘참소주’, 무학의 ‘화이트’, 대선의 ‘시원소주’, 선양의 ‘그린청’ 등 지방업체들도 올들어 일제히 22도 순한소주 신제품을 출시하며 ‘나도 한판’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참이슬로 23도짜리 순한 소주 바람을 일으켰던 진로는 지난 2월5일 참이슬의 도수를 1도 낮춘 22도짜리 리뉴얼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순한 소주시장 수성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이같은 현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음주 트렌드 변화에 따라 소주도 이제 더 이상 ‘스트레스 해소’ 또는 ‘먹고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매개체’ 또는 ‘담소를 위한’ 술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순한 술 바람은 앞으로도 죽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소수시장 변천 & 트렌드정권따라 소주판매도 ‘출렁’국내에 소주가 처음 선보인 것은 고려후기 원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산업으로 기틀을 잡기 시작한 것은 1909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주세령이 공포되고 면허제가 실시되면서부터였다. 1924년 당시 전국 소주제조업체 수는 무려 3천여개에 달했으나 대부분이 일본인 생산업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당초 증류식으로 생산되던 소주가 희석식으로 바뀐 것은 1965년. 쌀부족에 따른 양곡관리법의 시행으로 곡류가 아닌 다른 원료로의 대체가 불가피해지면서 제조방식 또한 바뀌게 됐다. 이때부터 소주는 30도짜리 희석식 소주가 대중주의 대명사로 인식되며 19년간 ‘독한 맛’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소주는 막노동꾼의 술쯤으로 이해됐던게 사실.74년 들어 25도 소주가 나오면서 소주 애주가의 저변이 좀더 확대됐으나, 90년대 중반 프리미엄소주 및 98년 순한 소주가 나오기 전까지 소주는 스트레스 해소용이나 취하기 위해 마시는 대중주라는 인식이 강했다.현재의 순한 소주 바람은 맥주 와인 등 순한 술, 고급술을 선호하는 신세대 소비자들을 소주 소비계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유행하고 있는 또하나의 트렌드가 소주칵테일의 유행이다.지난해 하반기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오십세주’는 백세주와 일반 소주를 반반씩 섞은 술로 맛은 거의 백세주이면서도 가격은 백세주의 70% 수준. 알코올 도수도 백세주의 13도와 소주의 22~23도 중간인 17.5도 정도다. ‘소설주’는 소주와 매실주인 설중매를 섞은 술. 매실이 몸에 좋은 것을 알면서도 매실주가 ‘너무 달다’고 여겨온 애주가들이 고안해낸 신종 칵테일이다.소주와 관련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주업계의 ‘정치색’이다. 현재 1개도, 1개사 형태로 10개의 소주업체가 각 지역을 중심으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소주업체들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소비량의 차이를 절감하고 있다. 언뜻 호남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호남업체 소주가 많이 팔릴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전남 목포가 연고지인 보해의 경우 DJ정권 이전에 97% 이상까지 오르던 전남지역 시장이 최근 9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경북지역의 금복주는 지난 96년 지역점유율이 50%에 채 못미쳤으나 정권교체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올해 95%를 넘기고 있다.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호남지역에선 ‘굳이 자도주를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식이 강해지고 있고, 영남지역에선 ‘우리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라는 의식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말하자면 ‘있는 자의 여유’와 ‘없는 자의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인터뷰 - 한기선 진로 부사장“배달·서빙 자원하며 참이슬 판촉”‘참이슬’을 필두로 소주시장을 휩쓸고 있는 (주)진로를 보면, ‘전화위복’이나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97년 말 그룹의 부도, 98년3월 화의인가 등으로 이어지는 그룹의 몰락위기에 맞춰 ‘두꺼비’로 상징되는 소주업체 진로도 ‘바람 앞의 촛불’신세였다. 설상가상으로 소주시장의 점유율도 떨어져갔다. 이 와중에 나온 신제품이 참이슬. 진로 임직원으로선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98년 당시 영업총괄전무로 약 2천명의 직원을 격려하며 ‘살아남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던 한기선 부사장(50, 영업본부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면서도 감회가 새롭다”고 말한다.“참이슬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직원들이 그야말로 ‘목숨걸고’ 판매전선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이슬과 관련해 어느 특정 부서도 공로상을 받지 못했어요. 직원 모두의 공로이기 때문이죠.”참이슬이 나올 당시 진로는 마케팅이나 광고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말단직원에서 임원은 물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장진호 회장까지 ‘진로 살리기’에 나섰다. 당시 임직원들은 ‘두꺼비의 눈물’이란 호소문을 들고 식당과 주점, 슈퍼마켓 등을 찾아다니며 참이슬 한 병 사주기를 호소했다. 남자 직원들은 직접 배달을, 여직원들은 식당 설거지에 서빙까지 도와가며 판촉에 나섰다. 한부사장은 “당시 몸으로 뛴 이런 판촉활동은 수십억원의 돈을 들인 광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며 “심지어 외국에 사는 교포들도 ‘진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할 정도였다”고 말한다.한부사장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시로 자전거를 타고 잠실 강남역 신사동 일대의 주점거리를 훑으며 빈병이 얼마나 나왔는지, 그중 참이슬은 몇 병이나 있는지를 점검했다. 한부사장은 “한달 쯤 후부터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며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전한다.진로가 참이슬을 통해 이뤄낸 또하나의 성과는 유통질서 확립이다. 주류시장은 무자료 거래가 많기로 유명한 곳. 진로는 참이슬 출시와 더불어 무자료 거래를 완전히 없앴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도매상 등과 단순히 물건만 사고 파는 관계가 아니라 돕고 도와주는 관계로 발전한 덕분이라는 것이 한부사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최근 다른 업체들의 신제품 출시 움직임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대우중공업, 대우그룹 기조실을 거쳐 88년 진로에 합류한 한부사장은 소문난 소주 애호가. 지금도 매일 평균 1~2병의 소주를 마신다. 그래도 건강한 이유는 매일 아침 자전거로 1시간 정도 강변을 누비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