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급이 83% 차지, 고급화 추세 뚜렷 … 소비량 회복조짐 마케팅 대공세

현재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는 두산시그램과 진로발렌타인스, 하이스코트 등 '빅3'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좋아하는 술을 스스로 골라마신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마실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비자의 기호가 아니라 제조사와 유통사, 판매하는 유흥업소에 이르기까지, 생산자들의 치밀하고 치열한 마케팅이다. 현재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는 윈저 시바스리갈 등을 생산하는 두산씨그램과 임페리얼 발렌타인의 진로발렌타인스, 딤플과 조니워커 등의 수입판매업체인 하이스코트(하이트맥주 계열) 등 ‘빅3’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위스키 판매에서 마케팅의 중요성은 지난해 위스키 소비량의 폭발적인 증가에서도 뒷받침된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 국민들이 마신 위스키는 모두 0.67병이다.(2월1일 주류공업협회 집계 주류 출고 현황조사) 스탠더드급(위스키 원액의 숙성연수가 8년 이상인 것)이 3백86만4천8백40병, 프리미엄급(12년 이상)이 2천6백90만5천6백68병이 팔려 모두 3천77만5백8병을 소비했다. 99년에 비해 33%나 증가한 수치다. 고급술인 슈퍼프리미엄급(17년 이상)은 매출이 99년에 비해 42%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대중주에 속하는 스탠더드급은 7% 감소해 고급화 추세가 두드러졌다.두산씨그램·UDV, 진로에 협공 가능성이처럼 지난해 위스키 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제조사들이 집중적인 프로모션에 나섰기 때문인 것으로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2000년 한해 동안 두산씨그램은 약 70억원, 진로발렌타인스는 60억원 가량의 광고비를 쏟아부었다. 2000년1일자로 위스키에 부과되는 세금이 줄어든데다 97년 경제위기 때 급감한 위스키 소비량이 서서히 회복돼 가는 시기를 위스키 제조사들이 적극적인 공략의 기회로 잡은 것이다.올해도 이같은 위스키 3사의 혈전은 계속될 예정이다. 다만 두산씨그램의 모기업인 씨그램의 주류부문이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주류업체인 UDV에 넘어감에 따라 두산씨그램도 UDV의 한국 자회사가 돼 국내 시장에서도 전략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UDV는 이미 한국 판매망 하이스코트를 통해 딤플 조니워커 등을 판매하고 있다. 모기업의 합병으로 사실상 한 식구가 된 두산씨그램과 하이스코트에 앞으로 어떤 전략 변화가 있을 것인지 아직 불명확한 상태다. 브랜드 수를 줄이고 통합 영업을 할 수도, 당분간 현재 체제로 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두산씨그램측은 “6월 본사에서 한국시장에서의 영업전략을 확정하게 될 것”이라며 “UDV의 씨그램 인수 조건에 ‘2년간 마케팅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스코트측 역시 “영국 본사가 알아서 하는 일”이라며 함구했다. 3사 경쟁 체제이던 국내 위스키시장이 사실상 두 업계간의 경쟁업체로 재편됨에 따라 상대사인 진로발렌타인스는 대응전략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협공을 받아 수세에 몰리게 된 진로발렌타인스는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런 입장이다. “양사가 올해부터 통합 영업을 시작한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회사 유호성 과장의 말이다. 회사별 시장점유율은 두산씨그램이 38%, 진로발렌타인스 30%, 하이스코트 27%, 기타 수입업체들이 5%(2000년 현재, 주류공업협동조합 위스키 매출 조사 자료)를 나타내고 있다.지난해 위스키 시장이 워낙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또 올해 경기가 뚜렷이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2001년 시장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씨그램의 올해 상반기 예상매출액은 2천억원으로 지난해 4천3백억원과 별 차이가 없다. 광고비도 상반기에만 30억원을 책정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그러나 ‘빅2’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해 있던 하이스코트는 올해 영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심원보 영업차장은 “광고나 영업 등에서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해 광고비로 20억원 가량을 사용했는데, 올해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액수를 광고에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초 영업인원을 수십명 보강한데 이어, 상반기중에도 한 차례 더 채용할 계획도 잡혀 있다. 심차장은 고급 위스키 선호 추세에 맞춰 올해 상반기경 슈퍼프리미엄급 위스키 신상품을 내놓을 계획도 있다고 귀띔했다. 올해 이 회사는 지난해에 비해 매출을 20%나 늘려잡았다. 지난해에도 하이스코트는 성장률에서는 최고를 기록했고, 위스키 시장 자체가 계속 확장 추세에 있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달성 가능하다는 것이 이 회사의 입장이다.임페리얼 12년 70만3천상자 팔려현재 위스키 시장은 프리미엄급 위스키 시장이 전체 위스키 시장의 83%를, 스탠더드급이 12%, 슈퍼프리미엄급이 5%를 차지하고 있다. 2001년에도 프리미엄급 위스키의 독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슈퍼프리미엄급 위스키의 비중이 소폭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브랜드별로 보면 진로발렌타인스의 임페리얼 12년이(9ℓ 한상자 기준) 70만3천상자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하이스코트의 딤플(66만5천상자)과 두산씨그램의 윈저12년(56만8천상자)이 뒤를 잇는다.“맥주나 소주와 달리 위스키 소비는 90% 이상이 유흥업소, 특히 접대 자리에서 이뤄진다. 지난해 벤처 붐이 위스키 소비가 늘어난 큰 원인 중 하나였다. 올해는 이런 뚜렷한 호재가 없어 지난해의 시장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일선 현장에서의 영업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진로발렌타인스 관계자는 말했다.★ 인터뷰 / 이승준 두산씨그램 서울지점 영업3팀 대리“유흥가로 출근도장… 양주박사 다됐어요”그는 밤마다 단란주점으로 ‘일하러 나간다’.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신다. 캬바레, 룸살롱, 단란주점 가리지 않고 강남 일대의 웬만한 ‘업소’ 주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이쯤되면 유흥업소 종사자 쯤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승준 대리의 직업은 위스키 제조사 영업직원이다. 영업담당의 주된 업무는 주류도매상과 주류의 최종 소비지인 업소를 관리하는 일. 그가 맡고 있는 위스키의 판매량은 슈퍼마켓 등의 유통업체보다는 접대가 이뤄지는 장소인 업소에서의 소비량에 따라 좌우된다. 때문에 영업사원의 ‘밤일’은 무척이나 중요하다.이대리는 영업 5년째에 접어드는 베테랑이지만, 그의 하루는 길고도 고달프다. 오전 10시경 회사에 출근해 일을 처리한 뒤 점심 무렵 회사를 나선다. 그가 가는 곳은 주류 도매상. 여기서 시장 상황이나 상대사의 정보 등을 수집하며 사람들을 만나 점심을 먹는게 보통이다. 점심 때도 술을 마시는게 다반사. 오후 4시쯤 되면 담당 구역인 서초동 일대 유흥업소 방문을 시작한다. 그의 ‘구역’에는 룸살롱 25개, 단란주점 35개가 있다. ‘키맨’이라고 불리는 구매 실권자를 관리하는 것이 영업맨의 핵심적인 임무다. 큰 업소의 경우 한 곳에서 한달 동안 소비하는 위스키만 8백상자에 이를 정도니, 얼마나 거대한 고객인지 알 수 있다. 이런 곳을 돌다 보면 매일 밤 12두시를 넘겨 귀가하기 일쑤고 맨정신이 아닐 때가 많다.‘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이젠 전공이 ‘주류학’이 돼버렸다’는 그는 “아무래도 거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신뢰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성과를 얻는 일인 만큼 보람있다”고 말했다. 영업맨들은 업무와 상관없는 자리라 해도 자사 상표의 술만 고집한다. 경쟁사의 영업맨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실 때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이대리는 윈저를, 상대는 임페리얼을 각각 시켜 먹을 정도로 ‘프로근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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