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 1. (초는 무술의 한 동작을, 식은 초의 연속동작을 말한다). 지난해 의 국내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리안감독의 인터뷰장. 무협이란 장르에 도전한 동기에 대해 “영화적 언어로 무술은 훌륭한 이야기 전개도구”라는 것이 리안감독의 일갈. 은 아시아 무협영화로는 드물게 미국 언론에서 뽑은 2000년 최고의 영화, 올해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감독상 수상, 올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작 선정 등 기염을 토했다. 흥행도 평단에 못지 않다. 전세계에서 1억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거두며 이후 최다 수입을 올린 외국영화라는 영예도 차지했다.초식 2. 인터넷포털 라이코스의 초기화면 가운데 엔터테인먼트 채널에는 무협지코너가 마련돼 있다. 만화독자층보다 약간 연령대가 높은 층을 타깃으로 지난 8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15명의 무협소설 작가가 각각 5∼7편씩 작품을 올려놓는 무협소설은 만화를 포함해 하루 3천만페이지뷰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다. “단일 콘텐츠로는 최다 페이지뷰를 기록하고 있으며 사내외에서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게 재경본부 이지윤대리의 설명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작가 확대와 사이트 업데이트, 콘텐츠 파트너 확대 등을 추진중”이라고 이대리는 덧붙인다.초식 3.‘중원공략 개시, 발판은 대만’. 온라인 게임제작업체인 (주)태울의 요즘 속내다. 4월 시범서비스를 앞둔 신작게임 ‘신영웅문’을 선봉에 세웠다. 배경 의상 등 철저한 역사 고증에 기초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대만시장은 물론 무협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중국시장까지 겨냥해 대만 수입업체들이 먼저 수입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구애했다”는게 태울측의 설명이다. 덕분에 국내 게임업체로는 아주 드물게 선도금으로 70만달러를 받았으며 약 5백20만달러로 추산되는 2년간 매출총액의 30%를 로열티로 받는 좋은 조건으로 수출계약을 맺었다.강호를 뒤흔들 조짐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거나 무관심으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초식을 펼친 주체는 제각각 달라도 그들이 이용한 무기는 동일하다. ‘신기’로 무장했다. 검이나 창도 아니고 권법도 아니다. 장풍이나 암기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무협이라는 ‘기보’다.무협소설이나 무협만화로 통칭되며 강호에서 ‘B급’으로 괄시받던 굴레를 벗어나 화려하게 재탄생한 것이다. 콘텐츠산업의 주요 소재로 말이다. 때문에 소설 만화 게임 영화 광고 등 콘텐츠가 곧 성패를 좌우하는 많은 ‘문파’들은 어느 때보다 ‘무협’이라는 절대무공을 연마하며 적극적으로 세 확장에 나서고 있다.지난 61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무협소설은 요즘 판타지와 결합해 다시 젊은층의 주요 오락거리로 떠올랐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무협서사와 줄거리를 갖춘 정통무협물이 대거 수입·제작돼 스크린을 차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등이 그런 예다. 게임에서도 무협소설을 작품화하거나 무협을 테마로 한 온라인 게임들이 잇따라 제작, 출시되고 있다. 다양한 무공과 비법전수 등 무협게임만의 요소가 풍부해 무협게임의 장래는 밝다는 것이 게임업계의 시각이다. 광고에서도 무협을 패러디하거나 원용한 광고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콘텐츠산업에서 이처럼 무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갑자기 떠오르고 주목받는 것에 대해 대중문화 웹진 ‘컬티즌’(www.cultizen.co.kr)의 한정수이사는 “어느 사회나 영웅이나 환상적인 세계에 대한 갈구가 있어왔다”며 “무협의 서사구조는 이런 갈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이를 상품화 산업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무협이 다양한 코드로 변형돼 붐을 이루는 것은 서구에서 신화나 영웅에 기초한 판타지가 유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무협 웹진 ‘무적’의 김종렬 편집장도 “무협물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버리고 환상에 빠져드는 것으로 소설에 심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무협물의 인기배경을 진단했다.아시아적 콘텐츠 ‘소재창고’로 성장무협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무협이 풍성한 이야기를 씨줄 날줄로 엮어낼 수 있는 아시아적 콘텐츠의 ‘소재창고’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 서양의 기사도처럼 다양한 이야기나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휴종 수석연구원은 “최근 서양에서는 선, 저승, 기 등 물리적·기술적 능력이나 세계를 뛰어넘는 동양적 소재에 호기심이 높다”며 “무협은 동북아 3국의 소재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 소재”라고 말했다. 김연구원은 또 “과 같은 아시아 무협영화의 성공은 이러한 서양의 콘텐츠 부족과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맞물리면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처럼 무협물이 다시 각광받으면서 마니아층에 한정됐던 무협창작 세력들이 확장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도서출판 템푸스의 전창용사장은 “현재 무협물의 바탕인 무협소설을 정기적으로 써내는 무협작가는 40∼50여명에 불과하지만 작가지망생들은 이보다 적어도 몇십배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추어작가들의 창작소설을 연재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배인기씨도 “아마추어 무협작가층은 주로 20∼30대층으로 현재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그러나 이런 ‘무협풍’의 한편에서는 무협이라는 소재를 제대로 된 콘텐츠로 키우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김 수석연구원은 “무협을 콘텐츠로 담은 것이라도 포장이 중요하다”며 “우선 시나리오가 튼튼해야 하고 콘텐츠에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휴머니티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인적 능력만 보여주면 일시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유행물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수석연구원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전략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금씩 길들여가는 방식으로 ‘내공’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한국적 소재와 한국문화와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콘텐츠 생산의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대부분의 무협물이 중국을 배경으로 한데 따른 것이다. 배인기씨는 “무협이 당초 중국을 배경으로 한 중화권 작가들에 의해 시작돼서인지 한국의 역사나 문화적 특성을 살린 무협물이 적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존 출판무협계도 마찬가지다. ‘무적’의 김편집장도 “(한국을 배경으로 한)몇몇 작품이 나왔지만 독자들의 손을 사로잡은 작품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리안감독의 말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적 뿌리로 돌아가 작업하는 것을 잊어서는 금방 잊혀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