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보다 전문성, 꼼꼼하게 청중 성향 분석 후 강의 차별화...'언변보다 성실함'이 무기
많든 적든 가르치는데 나이 따위는 중요치 않다. 강의실에서 쌓았든 경험에서 얻었든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나서는 ‘입심 좋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매체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스타성’을 과시하기보다 피부에 닿도록 실무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강연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김지일·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 부사장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의 김지일(51)부사장은 한 기업체에서의 경험, 스스로의 사고 전환 과정 등을 널리 전달하고 있는 경우다. 김부사장의 강연 주제는 ‘글로벌시대의 e비즈 CEO 경영전략-시스코 사례를 통한 경영패러다임 전환’과 같은 것이 많다. 그밖에도 e-learning이나 인터넷 시대의 기업문화, 인사 등도 주요 테마이다. 청중은 기업체 임원들이 가장 많고 전경련 등 경제 단체 등도 자주 나가는 강연처다.자기 경험 얘기하면 청중도 감동다른 강연자들과 마찬가지로 김부사장도 강의를 들은 이들로부터 반응이 올 때, 그리고 영향을 받아 소속 회사에서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청중의 성격에 따라 반응도 제 각각이다. 그가 공개하는 에피소드 하나. 강의를 들은 사람들 중 상대적으로 젊은 층은 e메일을 통해 이것 저것 자료도 요구하고 추가 질문도 해 오는 편이다. 한편 임원급들은 주로 ‘재미있었다’ ‘흥미로웠다’라고만 한다고.강사료가 ‘A급’ ‘B급’을 결정짓는 잣대인 것처럼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김부사장은 강연료가 얼마든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강연을 하고 받는 금액은 도무지 일정치가 않다. 시간당 1백만원이 넘는 금액을 받기도 하지만 10만원 받고 파주에까지 가서 한 적도 있다. 강사료로 받은 돈은 거의 기부한다. 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 부사장이라는 일이 있는 그는 ‘내 경험과 지식이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 돈이 필요해서 강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사 업무가 허락하는 한 강의 요청은 거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주말 강의는 회사 일과 겹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환영이다. 김부사장은 지난 87년 데이콤에 입사했으며 93년 이후 데이콤 인터내셔날에서 데이콤의 해외사업 및 러시아 통신사업, 글로벌스타 사업 등을 담당하다 98년11월 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에 부사장으로 영입됐다.“저는 박사 학위도 없고 이론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어서 강연할 자격이 충분치 않은 지도 몰라요. 다만 내가 시스코에 와서 받았던 충격과 전에 스스로 관료적이었다는 반성 등을 얘기하면 청중이 박장 대소합니다. 아마 자기들도 똑같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라고 자신이 하는 강연의 장점을 분석했다.서진영·자의누리 부사장요즘 가장 바쁜 강연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서진영 (33) 자의누리 부사장은 “기업체 실무자, CEO 등 나의 ‘제자’들은 대부분 아주 뛰어난 전문가들이다. 다만 새로운 영역의 어느 한 부분을 잘 모를 뿐이다. 나는 그 부분만 채워주고 강연이 끝난 뒤에는 오히려 배운다”고 말한다. 그는 인사 연봉제 및 e비즈니스 등에 특화한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면서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활발하게 강연하고 있다. 명함에는 ‘수석 부사장’이라고 돼 있는데 막상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서부사장의 자리 외에 사장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제가 사장인데요.” 굳이 부사장이라고 하는 이유는 고객이 회사의 사장이기 때문이란다.이런 ‘고객 지향주의’는 강연 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방문해 강연한 회사가 컨설팅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회사일과 강연이 별개라고 볼 수 없는 그의 첫째 원칙은 ‘청중과 그들의 요구에 대한 철저한 분석’ 이다. 청중의 숫자나 직책 등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느 기업체에서 강연 요청을 받으면 먼저 방문해 기업 내용을 파악하고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강연 내용을 준비한다. 그는 자신이 하게 될 강연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프로그램의 처음인지 중간인지 마지막인지, 중간이나 마지막이라면 자신에 앞선 강연자들은 누구이며 어떤 내용이었는지, 강의실은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일일이 챙긴다고 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같다 해도 이런 상황들에 따라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기업체 경영자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 가장 많지만 그는 KAIST와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로 강의도 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경영학 박사, 사장, 교수까지 겸하고 있어(“뭐, 특이한 거라곤 초등학교 때부터 박사까지 20년 6개월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학교 다닌 거 밖에 없습니다.”)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생긴다. 눈앞에 자신을 두고도 ‘강사는 어디 있느냐’고 찾는 것이 가장 흔한 경우. 반바지 입고 쇼핑센터에 갔는데 나이 지긋한 중년신사들이 자신을 알아보고는 ‘선생님’하며 꾸벅 인사하는 바람에 당황하기도 일쑤다. 눈빛 초롱한 대학생들부터 경험으로 무장한 1세대 대기업 경영인까지 폭넓은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방식의 강의를 한다는 얘기 끝에 덧붙인 일화다.그는 요즘 청중들이 어떤 얘기를 듣기 원하느냐는 질문에 ‘분절화된 세상 속에서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실무 일선에서 뛰는 그들은 현상만 알지만 나는 원인을 알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감만 갖고 하는 강의는 남는게 없어송영수·삼성인력개발원 컨설팅 팀장송영수(41) 삼성인력개발원 컨설팅팀장은 강연이 업인 경우다. 그의 교육은 일반 대중이나 기업체 임원들을 상대할 때도 있지만 주로 삼성 계열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연한다. 전문 분야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개인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 등에 관한 내용이다.그는 자신이 ‘언변이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극구 부인하면서 입심 자랑보다 보여주고 깨닫게 하는 것에 역점을 둔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디지털에 관해 수없이 얘기하는 것보다 강연시간 동안 가능한한 많은 첨단 장비를 동원해 보여주는 것이 더 훌륭한 교육이다. 그러면 교육 대상자인 부장들은 “나랑 비슷한 40대인데 저쪽은 복잡해 보이는 디지털기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군”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학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삼성 입사 후 미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 명실상부한 교육 전문가인 송팀장에게는 강연에 대한 대단한 노하우나 기술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성실성’을 으뜸으로 꼽았다. “교육 받는 청중의 니즈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이를 철저히 분석해 과학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만 갖고 하는 강의는 들을 때는 그럴싸하지만 돌아서면 남는 게 없고 이런 강의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