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시가총액 24조원 예상, 긍정적 반응 우세 … 합병은행장·비율 결정 등 결실까진 ‘산너머 산’
여의도 국민 주택 합병추진위원회 사무실. 주택은행 김영일 부행장과 국민은행의 김유환 상무 및 실무자들이 매주 수차례 사각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요즘 이 합병논의 주체들은 테이블에서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길고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각기 은행에 돌아가서는 양보한 것들과 얻은 것들에 대해 행내에서 인정받느라 또 골치가 아프다.도이체 방크와 드레스드너의 사례에서 보듯 합병이란 언제 어떻게 결실을 볼지, 혹은 깨질지 예측할 수 없는 극도로 정교한 작업이다. 지난해 12월22일 합병을 선언한 이후 양 은행은 이 지난한 작업에 돌입했다. 99년부터 TF(테스크 포스, 실무팀)를 꾸려 합병에 대비, 준비기간이 길었던 주택은행은 합병의 효과와 정당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나서는 반면 국민은행쪽은 ‘반드시 하되, 느긋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기선제압 위한 신경전 치열양해각서에 서명하고 합병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양 은행측은 한동안 팽팽한 신경전을 계속했다. 곳곳에서 ‘기선제압용’ 잡음이 일자 일단 양 은행은 ‘입조심’하자고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 15일 국민은행 주총에서 골드만삭스측 헨리 코넬 국민은행 상임이사가 “국민은행장이 합병은행의 CEO가 돼야 한다”고 선전포고 하고 김상훈 행장이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은행의 장이 합병은행의 CEO가 돼야 할 것’이라며 맞장구를 치면서 긴장은 다시 고조되는 형세다.이뿐 아니라 향후 지속적으로 불거질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합추위 최범수 간사위원은 합병작업을 ‘art’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국민 주택, 그리고 이들 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만삭스와 ING는 모두 프로다. 합병이 생존의 차원임을 모두 인식하고 있는 만큼 결코 쪽박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합병이 무사히 성사될 것을 낙관하는 근거였다.양 은행은 이번 합병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모토를 내세운다. 이는 타깃을 대중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객에게 맞추고 기업고객은 리스크를 감안한 수익기준을 잣대로 선별한다는 의미. 수익은 대출이자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중개수수료 등으로 다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애초 양 은행은 7월에 출범하기로 일정을 잡았으나 합병은행이 출범과 동시에 미 뉴욕증시에 상장키로 하면서 다소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국민 주택은행 합병의 이슈는 크게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 관심사는 합병은행의 은행장이 누가될 것인지다. 합병의 성패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질적인 조직문화를 극복하고 얼마나 빨리 제대로 된 융화를 이뤄 합병의 기대 효과 - 규모의 경제, 중복 투자 비용절감, 시장선점 -를 실현 또는 극대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만큼 합병은행의 CEO는 첨예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김유환 상무는 “문제의 핵심은 누가 되느냐라기보다 투명한 절차를 통해 합병은행장이 선임되고 그럼으로써 안팎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 합병의 성패가 달렸다”라는 원칙을 강조했다.합병비율 또한 중요한 논쟁거리. 주택은행측은 “합병 비율을 결정하기 위해 컨설팅사가 책 한권 분량의 기준 자료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비율을 산정해 보니 현재 양 은행 주가와 ±5%의 차이밖에 안 나더라”면서 “결국 시장가치에 따라 상식적인 수준에서 결정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은행은 협상 테이블에서 국민카드의 가치를 더 인정해 줄 것을 계속 내세우고 있다.이해관계에 따라 합병에 대한 반응도 수십가지다.이번 합병과 얽힌 집단들은 각자가 처한 이해관계에 따라 수십가지 반응과 입장을 표한다. 양 은행 노조는 ‘비자발적 퇴직은 없다’는 경영자들의 공언을 못믿는다는 주장이지만 지난해 파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강력한 모멘텀을 얻지 못한데다 금융노조의 지원도 부족해 힘이 빠지는 분위기다.국내 은행이 합병이라는 문제를 대형화와 수익성 제고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양 은행의 외국계 주주들은 겸업화를 기대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주택은행의 2대주주인 ING는 방카슈랑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골드만삭스측은 5억달러 투자금의 수익률이 주요 관심사다.국민 주택 합병 모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또한 시장에서는 시장에서의 규모, 즉 시가총액에 의의를 부여한다. 현재 국민은행의 시가총액은 5조원대로, 주택은행과 합병시 8조원을 넘어선다. 주가가 조금만 상승해도 1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포철의 시가총액이 10조원대인 것과 비교할 때 기관투자가는 포트폴리오상 5~10% 정도 보유할 것이라는 계산이다.외국계 주주, 대형화보다 겸업화 더 기대크레디트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 증권은 3월초 내놓은 ‘국민 주택 합병 초동 분석’이란 보고서에서 양 은행의 합병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마진증대와 비용절감을 통해 얻게 될 잠재수익의 크기를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2001년 임직원이 10% 줄어들고 순이자 마진율이 15bps 증가하며 향후 3년간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해 1조3천7백억원을 지출한다고 상정하면, 2003년까지 세공제전 당기순이익이 1조1천5백억원, 총수익이 2조7천 8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그러나 시장의 반응이 긍정 일색인 것은 아니다. 애널리스트들은 합병이 무산될 경우 시장가치 하락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들은 독일 도이체 방크와 드레스드너 방크의 합병가능성이 논의된 지난해 3월7일 두 은행의 주가가 각각 6%, 11% 폭등했지만 합병이 무산되면서 4월 중 주가가 합병 발표당시 최고치에 비해 20% 이상 하락했던 전례가 있음을 지적했다.인터뷰최범수 국민 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회 간사“같은 명찰 달아도 차별된 서비스 제공”왜 꼭 합병이어야 하는가.한국 은행산업을 언덕길의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뒤로 미끄러진다.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합병이 하나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합병의 의의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오버뱅킹, 즉 과다경쟁 해소. 둘째, 제대로 된 투자. 이때 투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특히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의미한다. 셋째, 과거와의 단절 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두 은행의 성격이 비슷해 시너지 효과가 의심스럽다.중복 점포가 많아서 문제라고? 그게 대체 언제부터 문제가 됐는지 묻고 싶다. 서울 시내 어느 거리에도 은행 간판이 서너개씩 보인다. 다른 간판을 달고 있다고 정말 다른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찍어낸 것처럼 일률적이다. 5백m마다 우리 합병 은행 점포가 있다고 치자. 차별화돼 있다면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예를 들면 이 점포는 단순 창구 영업을 하고 그 옆의 점포는 고액고객들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며 또 그 옆의 점포는 바빠서 은행에 오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을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고. 이같은 방법으로 합병성공의 전범을 만들어 낼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되도록 이자 덜 주고 되도록 비용 안 쓰며 가능한한 수수료를 많이 받는 것만이 살 길이다. 물론 고객의 거부감을 유발하지 않는 기법들을 개발한다는 전제 아래서.합병은행의 성패가 조직의 융합에 달려있다고들 한다.합병 과도기에 어떻게 양 은행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양측 모두 잘 인식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기엔 유치하다 싶을 캠페인도 하고 암튼 ‘이상한 일’들을 많이 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