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현대석유화학 등 컨설팅 ‘덕’ 톡톡히 … 기업 변화의지 있어야 ‘돈 들인’ 보람
컨설팅 업체가 제공하는 ‘고액과외’ 수업은 기업에 얼마나 효용이 있는 것일까. 컨설팅 업체들은 컨설턴트의 인건비 뿐만 아니라 경영 노하우, 세계적인 네트워크, 그리고 오랫동안 축적한 데이터베이스 등을 활용한 고단위 ‘처방전’을 제시하는 만큼 컨설팅 비용이 비싸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실제 수천억원에 달하는 M&A와 수천명의 인력구조조정을 급박하게 단행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이들의 서비스가 필요하다.그러나 생산현장을 이해하지 않은 채 책상에 앉아 페이퍼 작업에만 몰두하는 컨설턴트도 적지 않다. 이들은 난해한 외국어를 섞어가며 고품질인척 포장한 보고서를 내놓지만 실제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리 없다. 컨설팅 업체가 난립하면서 ‘눈 먼 돈’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된 저급 컨설팅 보고서는 기업의 체력을 약화시키기도 한다.두산은 컨설팅 효과에 대해 상당히 만족스러워 한다. 95년부터 두산은 전략기획본부 산하에 맥킨지 컨설턴트와 회사 인력을 투입, ‘트라이-씨(Tri-C)’란 독립 부서를 만들고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로 대표적인 것이 OB맥주와 벨기에 인터브루사의 합작 법인, 미국 CPI사와 두산 전분당 사업의 합작법인, 코카콜라 네슬레 3M의 매각 등이다. 또 공장 구매 원가 등 생산비용 절감 방안도 끊임없이 내놓아 회사의 수익률을 높였다. 실제 지난 99년 두산은 30대 그룹중 영업이익률 면에서 2위를 기록했다.추승환 두산 전략기획본부 부장은 “맥킨지의 컨설팅 비용은 비싸지만 효용면에서 만족한다”며 “문제 해결 능력과 일을 진행하는 방법, 일의 과정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현장 무시·난해한 외국어 “우리가 봉이냐”구조조정이 진행중인 현대석유화학도 대체적으로 컨설팅사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현대석유화학은 99년부터 미국 투자은행인 CSFB와 사업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비핵심사업을 매각하고 핵심사업에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 현대석유화학은 용수설비를 프랑스 비벤디사에 매각하는 등 현재까지 4천5백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CSFB는 매입자를 물색하고 협상을 대신하기도 했다. 현대석유화학은 이같은 대규모 M&A딜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평가한다.그러나 현대석유화학 관계자는 “M&A딜의 경우 성공했을 때 보수를 받기 때문에 우리의 이익을 조금 침해하더라도 딜을 강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경험이 없거나 시간이 촉박할 경우 이같은 불이익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의 빅딜은 이런 불이익을 보여주는 대표적 케이스. 98년부터 급박하게 추진한 두 회사의 빅딜을 위해 ADL사와 SRI, 그리고 KPMG 등 세 곳의 컨설팅 업체로부터 자산실사를 받았지만 실사결과는 달랐다. ADL과 SRI는 삼성종합화학의 자산을 2조원으로 평가한 반면 KPMG는 1조원으로 평가했다. 자산규모에서 이처럼 차이가 나자 결국 두 회사의 유화빅딜은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두 회사는 고스란히 70억원의 컨설팅 비용만 지불했다. 삼성종합화학 관계자는 “비싼 컨설팅 비용만 지불하고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하이닉스 반도체(옛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빅딜 과정에서도 컨설팅업체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99년 당시 통합 반도체 법인은 현대전자가 경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ADL사의 보고서로 인해 LG반도체는 결국 사업을 접었다. 당시 강유식 LG구조조정 본부장이나 구본준 LG반도체 사장이 “ADL사의 조사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며 “제소하겠다”고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LG는 아직 13억원에 달하는 컨설팅 비용을 ADL사에 지불하지 않고 있다.외국계 컨설팅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특히 IT분야에서 빈번하게 제기되는 이런 불만은 외국에서 솔루션을 구입할 때 종종 드러난다. 외국업체들은 솔루션을 국내에 판매할 때 외국계 컨설팅 업체로부터 진단받은 뒤 솔루션을 적용할 것을 주문한다. LG투자증권은 99년 일본에서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이같은 요구를 받았다. 계산해보니 외국계 컨설팅 업체가 들어오면 컨설턴트들의 체류비 등이 추가돼 국내 컨설팅 업체보다 가격면에서 두 배가 더 비쌌다.결국 국내 컨설팅업체를 통해 캐나다 제품을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김태구 LG투자증권 리스크관리팀장은 “국내 컨설팅업체는 가격도 저렴하고 즉각적인 사후 서비스도 가능하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전했다.보고서 활용하기 나름컨설팅 업체를 이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컨설팅업체에서 제공하는 보고서를 기업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예컨대 한국전기초자는 지난 97년 부즈앨런 앤드 해밀턴의 실사 보고서를 통해 ‘회생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이를 극적으로 극복했다. 당시 부즈앨런은 전기초자에 대해 1천1백%가 넘는 부채, 과잉투자, 기술력 부족 등으로 도저히 생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노조가 장기파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보고서는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서두칠 사장이 경영자로 파견된 뒤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서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공장에서 밤을 새며 회생과 혁신의 의지를 불태웠고 경영정보 공개 등을 통해 경영자의 신뢰감을 쌓았다. 이에 감동한 직원들은 새벽까지 기술개발에 전념하는가 하면 생산직 노동자들도 3교대를 하며 일에 매달렸다. 그 결과 한국전기초자는 몰라 볼 정도로 급변했다. 지난해 매출액 7천2백억원, 순이익 1천7백억원을 기록했고 무차입 경영을 실현했다. 컨설팅 보고서를 활용하는 기업에 따라서 효용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인터뷰정태수 ADL 한국 지사장“경제개발 5개년으로 정부와 인연”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와 LG반도체 빅딜,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의 빅딜, 현대건설 구조조정 등에는 어김없이 ADL의 보고서가 등장했다. 특히 정부와 현대가 개입된 구조조정 프로젝트엔 ADL사의 컨설턴트들이 파견됐다. 이 때문에 ADL은 정부와 현대에 어떤 커넥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지난 94년 ADL의 한국지사 설립을 주도한 정태수(45) 지사장을 만나 이같은 의문점에 대해 물어봤다.현대그룹 계열사와 정부수주 프로젝트를 많이 맡고 있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비결이 있는가.ADL 한국지사는 94년 설립됐지만 68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부터 정부와 함께 일했다. 당시 석유화학 분야의 미래 계획을 세우는데 ADL 컨설턴트들이 활약했다. ADL은 설립된지 1백10년이 넘은 최고의 컨설팅 업체다. 특히 화공 화학 에너지 전자 정보통신이 전문분야다. 이런 경험이 알려져 정부와 현대에서 ADL사를 선호하는 것 같다.현대건설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현대건설은 10%의 덤핑수주가 영업손실의 55%를 차지한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선택과 집중의 분야를 정하는 것이 시급하고 이에 따른 조직개편도 병행해야 한다. 매출규모를 줄이더라도 수익성 위주로 수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채권단을 중심으로 비상 경영위원회가 설치됐고 이 위원회와 김운규 현대건설 사장이 호흡을 맞춰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하이닉스반도체와 LG반도체의 통합에서 ADL은 하이닉스가 경영하는 것이 낫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이닉스가 부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지금처럼 64MD램이 2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시대엔 어느 업체라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상황이 변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시로선 기술력과 영업력에서 LG반도체는 하이닉스를 따라가지 못했다.기업의 비밀이 유출된다는 비판도 있다.이젠 세계적 기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 국내외 고객들의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컨설팅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컨설팅사의 기업 기밀보호는 기본이다. 윤리의 문제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1백년이 넘게 성장해 오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