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동대문에서 감각·의지·열정으로 독특한 디자인 세계 실험
동대문은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겐 ‘기회의 땅’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감각과 의지,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속속 동대문으로 찾아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중 대다수는 냉혹한 시장 속성에 실망하고 또는 의지부족으로 채 날개도 펴보지 못한 채 동대문을 떠난다. 그러나 상당수는 나름대로의 디자인 세계를 추구하며 자신의 이름 값을 높이고 있다. 이른바 디자인 벤처들이다. 동대문 시장도 이들을 반긴다. 이들의 이름 값과 더불어 동대문 시장의 주가 및 품질도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동대문을 기반으로 독특한 디자인 세계를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의 꿈과 야망을 들어봤다.이인영·루이스인터내셔널 실장이인영 실장동대문 두타 1층에서 안쪽으로 쑥 들어가면 일반 매장의 거의 7∼8배 수준인 유난히 크고 화사한 매장을 만나게 된다. 마네킹에 걸린 옷이며 매장인테리어, 피팅룸(옷 갈아입는 곳) 등이 재래시장에 있는 매장이라기보다 백화점 매장을 연상시킨다. 이 곳이 바로 루이스인터내셔널 이인영(28)실장의 ‘작품’이 판매되는 곳. 작품의 브랜드는 ‘루이스 트리콧’이다. 자신의 영어식 이름 ‘루이스’에다 니트를 뜻하는 불어 ‘트리콧’을 붙여 자신의 작품을 세계적인 니트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꿈을 담았다.“사실 어머니가 ‘루디아’란 브랜드의 니트 매장을 15년 동안 꾸려 오셨어요.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에서 꽤나 알려진 브랜드죠. 백화점 납품도 하고요. 덕분에 어릴 때부터 니트와 더불어 살면서 니트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다져왔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의 가업을 제가 물려받은 셈이고요.”영국 런던패션대학(의상디자인)과 효성 가톨릭대학(섬유디자인)을 거치며 이론적 기반을 닦은 이실장은 대학을 졸업하던 96년부터 어머니 회사에서 디자인 실무를 맡기 시작, 현재는 남편(정일훈, 30)과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남편은 마케팅 및 관리를, 자신은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식이다. 그동안 ‘루디아’로 잘 알려진 브랜드를 올해 5월부터 ‘루이스 트리콧’으로 바꾸고 회사도 마케팅 및 브랜드 관리를 전담하는 루이스 인터내셔널과 기존의 루디아 등 2개로 분리했다. 백화점과 동대문 시장 등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색채가 보다 강한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의지에서다.루이스 트리콧(루디아)은 고객층이 10대 후반에서 60대에 이를 정도로 폭넓다. 연분홍색, 하늘색, 배추색 등 화사한 색상에 다양한 사이즈, 깔끔한 끝마무리,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개성적이고 편안한 디자인 덕분이다. 이실장은 “일본 홍콩 등 해외 전시회 참여 이후 해외 주문도 늘고 있지만 국내 주문도 소화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즐거운 비명이다.이실장은 “루이스 트리콧을 한국 니트의 상징적 브랜드로 만들고 언젠가 제대로 된 니트디자인 후진 양성을 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문인석 사장하민호·갸니마루 사장“‘갸니마루’가 무슨 뜻이에요?”서울 장충동의 작업실 겸 사무실에서 만난 갸니마루 하민호(29)사장은 이 첫 질문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미 예상한, 그리고 너무도 많이 들어온 질문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갸니마루’는 일본어 속어로 동물적인 여자, 즉 섹시한 여자를 뜻한다.이 브랜드 이미지는 바로 그의 디자인 컨셉이기도 하다. ‘섹시’로 승부를 거는 젊은 디자이너 하민호는 대학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한 텍스타일 디자이너 출신. 대학졸업 후 제법 규모가 큰 원단회사에서 텍스타일 디자이너로도 일했다. 그러나 그는 하루 종일 패턴만 들여다보는 틀에 박힌 생활이 지겨워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뭔가 ‘재미있는 일거리’를 찾아 패션연구원에 등록하고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옷 만드는데 재미를 붙였다.그리고 2년여 유명 의류회사에서 매장관리 및 디스플레이어로 근무하면서 동대문시장 진출을 꿈꿨다. “동대문은 없는 놈이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2년 동안의 준비기간동안 그는 거의 매일 동대문 시장을 돌며 시장의 생리와 매커니즘을 공부했다.그러다가 밀리오레가 생기면서 지금은 부인이 된 여자친구와 둘이서 3백여만원의 소자본으로 매장을 얻었다. 그러나 첫 두 달 정도는 시장 분위기도 파악할 겸 ‘사입(도매시장에서 매입)’한 옷으로 장사를 했다. 하루 5만원도 못벌어 월세 내기도 벅찼지만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3개월째 접어들어 직접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만드는 옷마다 히트를 쳤던 것이다.하사장은 “거의 하루 종일 디자인에 매달려 2∼3일에 하나씩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도 모자랄 지경이었다”고 전한다. 집에 들어갈 여유도 없어 차 한 대에서 디자인도 하고 짬짬이 눈도 붙여야 했다. 덕분에 이제 26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동대문 밀리오레 밸리와 명동 밀리오레 등 2개의 직영매장과 5개의 대리점을 갖고 있을 만큼 기반을 닦은 상태.“텍스타일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살려 소재와 나염의 조화에 중점을 둔 디자인에 주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느낌이 다르다’라는 평가를 많이 하더군요. 최근에는 대만 일본 등지의 보따리 무역상들도 많이 찾아오고요.” 하사장은 “때때로 내가 만들고 싶은 디자인보다 팔리는 디자인을 할 수밖에 없을 때나 내가 만든 작품을 카피해 싸게 파는 상인을 볼 때 한계도 느끼지만 10년 후면 강남쪽 번화가에 버젓한 ‘숍’을 가진 ‘느낌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문인석·문군 사장하민호 사장‘문군(MOONGOON)’의 문인석(30)사장은 한때 동대문 시장의 ‘전설’ 또는 ‘신화’로 불릴 만큼 동대문에서 성공한 디자이너 가운데 대표 주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문사장은 “지금까지는 진정한 ‘문군’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기간이자 학습기였다”고 말한다.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상반기까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던 ‘문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강곡선을 타기 시작, 한때 27개까지 늘어났던 매장(대리점 포함)이 지금은 직영매장 1개로 줄어들었다. 물론 지난해부터 고꾸라진 경기가 주된 원인이다.문사장은 그러나 “처음부터 3년은 배우는 시기로 생각했고 그동안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을 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지난 98∼99년이 양적인 성장기였다면 2000년은 질적인 성장의 원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래서 그동안 ‘문군네’ ‘문군트렌드’ 등으로 분리돼 있던 브랜드 및 회사 이름을 ‘문군’으로 통일했다. 문사장 자신도 올해부터 디자인학원에 등록해 제대로 된 디자인을 기초부터 배우고 있다. 명함에도 ‘CEO 문인석’이 아닌 ‘디자인 디렉터 문군’으로 새겨 넣었다. 입셍 로랑이나 조지오 아르마니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커나가기 위한 준비이자 투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4월22일 패션쇼를 겸한 결혼식으로 화제를 뿌리기도 했던 문군은 올해가 개인적으로도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말한다.문군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 계열 대형 광고회사 LG애드 출신으로 동대문 시장에 뛰어들어 더욱 화제가 된 인물. 밀리오레 개점 당시 종잣돈 3백50만원으로 시작, 99년엔 1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특이한 디자인이 젊은이들 감각에 어필했기 때문. 문군은 무엇보다 디자이너를 꿈꾸며 동대문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성공모델’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동대문 시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해를 볼 때도 많습니다.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도 ‘시장제품’이라는 낙인이 찍히거든요. 소비자들이 제품의 질보다 가격부터 먼저 보고 “시장제품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할 때도 한계를 느끼지요.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극복해야죠. 10년 후쯤에는 ‘동대문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는 또다른 역할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