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살아남기 … 뿌리 내리기는 그 다음”

“알아보는 사람 많아져 사는 게 불편 … 통합보안기업 변신은 시대적 요청”

“불행해요.” 안철수(39) 사장이 말했다. 요즘 떠오르는 기업의 주목받는 CEO, 시쳇말로 잘나가는 중인데 무슨 얘길까. 주말이면 아내와 딸이랑 칼국수를 사먹고 할인점에서 쇼핑하길 즐기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점점 그럴 수 없다는 거다. “지나가다가 누가 돌아보면 일단 기분부터 나쁘고요. TV 나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말은 안했지만 그 다음으로 싫은건 인터뷰하는 일임이 분명했다. “근데 회사 때문에 희생하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하는 CEO는 흔치 않다. 인터뷰 사진을 찍으러 가는 그는 수술실에 끌려가는 환자 같았다.안철수가 공인이 된 지 벌써 14년째다. 항상 주목받는 인물이긴 했으되 그래도 그 정도가 덜하고 더한 때가 있었다. 최근은 ‘한층 더’의 시기다. 왜 그에게 다시 시선이 쏠리는가. 머니게임의 벤처 열풍이 지나가고 나면 어떤 참담한 결과가 나는지 확인하고 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를 겪은 뒤 한동안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벤처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새삼 안사장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런 외부의 시선과 기대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눈치였다. ‘안철수식 초심 유지비법’까지 개발해야 할 정도로.(메모지와 연필을 끌어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X축과 Y축을 그려 놓는다) 사람이 꾸준히 노력하면 계속 발전한다고 보고 그래프를 그리면 이렇게 될 거예요.(우상향 직선을 긋는다) 근데 세상의 평가는 분위기나 시류에 따라서 막 오르내리거든요.(우상향 직선을 오르내리는 곡선을 직선 위에 겹쳐 그린다) 현재 저는 여기 있어요. (직선 위에 점을 하나 찍는다) 그런데 외부에서 여기 있다고(점 찍은 직선과 동일한 X축 값에 위치하고 직선 위로 올라간 곡선에 점을 찍는다) 막 치켜 세우는 거예요. 시간이 흘러 이제 전 여기에 있어요.(다시 직선 위에 점을 새로 찍는다) 근데 외부 평가는 그 이하죠. (두번째 점과 동일한 X축 값의 직선 아래 곡선에 점을 찍는다) 기업 하면서 한 10년 보니까 과대평가 됐을 때 자기의 위치를 잊어버리거나 또는 알아주지 않는다고 스스로 비하할 때, 다시 말해 밖의 분위기에 같이 흔들려 버리면 쓰러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냥 항상 직선 위에 있다고 다잡기로 한거예요.어떻게 보면 안사장은 모순덩어리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말을 바꾼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나서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빈번히 언론에 얼굴을 내밀었고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세를 치렀다. 그는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백신을 공급하려는 공익적 관점에서 회사를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안철수연구소는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중 두 번째로 매출 1백억원을 달성한 알짜기업이 됐다. 책읽기, 혼자서 생각하기 등을 좋아한다지만 실제 그의 오늘 하루는 열 개 넘는 약속들로 빡빡하게 짜여 있다.‘내숭을 떠는’걸까, 솔직하지 않은 걸까. 안사장이 자주 사용하는 말, “첨엔 잘 몰랐거든요, 하고 나니까 그렇더라고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 나중에 생기더라는 얘기다. 예컨대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으나 묵묵히 개발에 매진하다보니 경쟁력이 생겼고 그래서 절로 돈이 따라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의 힘’인지도 모른다. 시장 상황을 무시한 듯한 코스닥 등록 일정 같은 튀는 행보는 이런 장기 원칙이라는 그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이런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안사장의 미덕은 ‘도덕’이라는 트레이드마크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기 비저너리라는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최근 안연구소가 통합 보안 회사로 가려고 영역 넓히는 걸 보고 주변서 공격 경영이라고들 하는데요, 사실 공격경영 아니거든요. 벤처기업이 뜰 때도 추락할 때도 우린 그냥 우리 일만 했어요. 주위 산업이나 회사를 보는 게 아니라 고객과 시장을 봐요. 시장이 커지면 우리가 맞춰 변해야 돼요. 전엔 보안 시장 자체가 작았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요만했으니까 그땐 그정도만 했고요. 지금은 시장 요구가 통합 보안 쪽으로 가니까 거기 맞추는데 다른 벤처기업들이 요새 대응 여력이 많지 않을 때라 상대적으로 공격적으로 보이나 봐요.그래서 벤처기업인 안사장의 벤치마킹 대상은 미국의 씨티그룹이나 제너럴 일렉트릭, 월트디즈니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초우량 기업들이다. 일단 살아남는 것, 백년을 존속하는 것, CEO가 떠난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핵심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안철수연구소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런 목표에 부합하기 위한 단기 전술이 일단 통합 보안 회사로 자리를 굳히는 것. 지쳐 보이던 안사장은 IT업계의 흐름이나 회사의 전략에 대해 얘기하자 눈이 반짝 반짝 빛나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또 도표를 그렸다.97년 맥아피(현 NAI)의 인수 제의를 받으면서 트렌트 시만텍 등 업계 리더들의 기업 내부를 찬찬히 볼 기회가 있었어요. 통합 보안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더라고요. 패러다임 변화라는 게 정말 훗날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런 회사들은 일단 방향 잡으면 거기 맞춰 대단히 전략적으로 움직이거든요. 전세계 보안 관련 상장업체가 50개인데 기업가치가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이르죠. 근데 우리나라에는 보안관련업체가 2백개나 되고 일년도 안된 회사가 대부분이죠. 핵심 인력 한두 명이 전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제품의 질보다 가격으로 경쟁하기가 쉽고 이대로는 시장이 커졌을 때 외국 업체와 싸워 이길 수가 없어요.경영자로서 안철수 사장 개인의 경쟁력은 얼마나 될까. 그는 스스로 “CEO 재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예전과 자세가 달라진 것만은 분명했다. 노력하면 되지 않겠냐는 각오가 엿보이는 것이다. 투덜대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뭐’라는 자세로 일관했다는 안사장에게서는 ‘회사 때문에 너무 희생한다’는 너스레에도 불구하고 몰두한 사람 특유의 행복감이 엿보였다.공익연구소를 만들려다 안돼 기업을 세우던 때나 지금이나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그대로지만 그때 전 경영자가 아니었죠. 만약 회사 시작했을 때 만명이 동시에 같이 출발했다면 제가 꼴찌였을 거예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어설픔이 장기적 시각을 갖고 서서히 접근할 수 있게 해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네요.약력62년 부산출생.86년 서울대 의대 졸업.91년 동대학원 의학박사.91년 단국대 의예과 학과장.97년 미 와튼스쿨 MBA.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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