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식 똘똘, 사하라 겁없이 뛰었다

한국인 최초 '사하라 철인마라톤대회' 참가 완주…"실직가장, 용기 복돋우는 계기 ?으면"

작열하는 은빛 사하라 사막 한복판. 한바탕 불어닥친 모래폭풍이 걷히자 저 멀리 사구 위를 달리는 긴 행렬이 나타났다. 죽을 힘을 다해 뛰고 있는 긴 행렬은 낙타떼가 아닌 사람들. ‘사하라 마라톤’에 참가한 철인스포츠 마니아들의 목숨을 건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다.이른바 ‘죽음의 레이스’에 뛰어든 철인들중엔 한국인도 한 명 끼어 있었다. 신한은행 구로남지점의 박중헌(43)지점장이었다. 박지점장은 지난 4월1일부터 일주일간 사하라 사막에서 열린 철인 마라톤대회(Mara-thon des Sable)에 참가해 전 코스를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자그만치 2백42㎞나 되는 모랫길과 자갈밭을 뛰고 걷는 지옥 경주에서 말 그대로 철인임을 과시한 것이다.올해로 16회를 맞는 경기였지만 박지점장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당당히 완주, 세계적인 철각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몸으로 국위를 선양했음은 물론이다.“일본은 10년전부터 이 대회에 참가해왔죠. 국가대표란 생각에 앞만 보고 끝까지 뛰었습니다. 완주한 직후 누군가 소감을 물었을 땐 벅찬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 34개국에서 6백30명이 참가해 그중 64명이나 중도 탈락한 것만 봐도 이 서바이벌 게임에서 박지점장이 견뎌내야 했던 고통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사하라 마라톤은 사막에서 6박7일 동안 자신의 식량을 메고 계속 달려야 하는 지옥의 레이스. 날카로운 자갈 위를 달릴 땐 발바닥이 찢어지는 고통도 참아내야 한다.밤 기온이 영상 5도까지 떨어지는 심한 일교차에도 적응해야 한다. 주최측에서는 10㎞마다 1.5ℓ의 물만 공급해줄 뿐이다. 결코 충분한 양이 아니다. 마시는 족족 몸 속에서 증발해 버리고 말기 때문. 물론 물을 더 달라면 더 준다. 그러나 한번 물을 받을 때마다 완주 기록에서 1시간이 늘어나는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추가로 마실 수 있는 물은 값싼 유혹에 지나지 않는다. 될 수 있는 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하기 때문에 때론 식량까지 버리고 가야 한다.스폰서 없이 자비로 경비 마련 참가국내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사하라 마라톤 대회에 박지점장이 참가하게 된 건 그의 유별난 도전의식 때문이다. “10년전쯤 신문에서 철인 경기를 하는 치과의사를 보고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내친김에 수영, 마라톤, 사이클을 함께 하는 철인3종 경기에 입문했다. 타고난 지구력과 맹훈련 덕분에 선수급 이상으로 실력 발휘를 했다. 92년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철인 3종경기에서 16시간만에 완주, 철인 칭호도 받았다. 국내 철인 36호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 거의 해마다 철인경기와 마라톤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그러던 지난해 철인3종 경기마저도 박지점장을 흥분시키기엔 식상한 종목이 되고 말았다. 또다른 도전 대상이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뒤지다 ‘이거다!’하고 무릎을 ‘탁’ 친 게 바로 ‘사하라 마라톤’이었다. 준비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고 체력을 단련시키기 위해 지난 가을부터 집이 있는 반포동에서 구로동 지점까지 무려 17㎞를 달려서 출근했다. 이 강행군을 사하라 출발직전까지 매일 반복했다.스폰서 하나 없이 자비로 충당해야 하는 경비도 상당한 액수였다. 참가비만 3백만원이 넘었고 교통비 등 갖가지 비용을 다 합하면 7백만원으로도 빠듯했다. 순전히 개인적인 용무라 회사에 따로 휴가신청을 할 엄두도 못냈다. 다행히 95년 10년 근속으로 받아 아껴뒀던 10일짜리 휴가를 이번에 쓸 수 있었다. 이 돈과 시간이면 차라리 가족을 데리고 유럽여행을 다녀오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박지점장은 이 모든 부담보다 훨씬 값진 보물들을 사하라에서 찾아왔다고 말한다.“남자가 40대에 접어들면 제2의 사춘기를 맞는 것 같아요. 요즘처럼 경제상황이 안 좋아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울수록 자아를 확인하는 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이번 대회를 통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을 아주 값싸게 사온 셈이지요.” 사하라 마라톤 경기에서 함께 했던 외국 선수들도 박지점장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과 감동의 순간들로 가슴에 새겨졌다. 완주했을 때 모인 기금으로 가난한 고향 마을에 초등학교를 지어주겠다는 중국 선수도 있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 동료와 함께 결승전에 골인해 모두에게 박수세례를 받은 프랑스 선수들의 이글거리는 눈도 아직까지 생생하다. 모두 저마다 값진 보물을 찾기 위해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귀국해서도 함께 동고동락했던 각 나라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서로 e메일을 주고받는 지구촌 친구들도 여럿 생겼다. 국내에서도 박지점장의 사하라 마라톤 완주 소식은 각종 매체들을 통해 화제로 떠올랐다. 5월20일엔 KBS 1TV 을 통해 박지점장의 사하라 마라톤 완주가 생생하게 보도된다. 박지점장은 직원들은 물론 특히 실의에 빠진 중년 가장들에게 다시 용기를 갖고 일어설 수 있는 귀감이 되고 있다.“많은 분들이 격려와 부러움을 표시해왔습니다. 지점을 찾는 고객들 사이에서도 저의 사하라 마라톤 완주가 화젯거리입니다. 덕분에 은행 영업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지점장이 그 정도로 강단있는 사람이라면 믿고 돈을 맡길 수 있는 까닭이다. CEO를 보고 그 기업에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행과 거래하는 데도 지점장의 캐릭터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박지점장은 말한다.박지점장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육군 학사장교(2기)로 복무했다. 제대후 85년 신한은행에 입사, 지난해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상반기 신한은행 종합업적 평가에서 은상, 하반기엔 금상을 수상했을 만큼 영업실력 또한 탁월하다.“앞사람의 발자국만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 사막 마라톤에서 저 한사람의 행동과 마음가짐이 주위 사람과 고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망망한 사막에서 앞선 발자국으로 뒷사람의 이정표를 만들고 온 박지점장의 완주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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