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이 잘 나가는 이유

“한국 금융가에서 그들은 메이저플레이어가 아니다. 하지만 언제든 메이저로 돌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의 메이저들이 가장 겁내는 마이너플레이어다.” 지금 한국 금융가에서 씨티뱅크의 현모습을 묘사하자면 이렇다.진출국가의 토착은행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씨티그룹의 전통적 경영방침이었지만 지금 서울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씨티은행(씨티은행 서울지점이 한국내 씨티은행명)의 수신고는 95년 불과 1조6천억원이었는데 지금은 6조원을 훨씬 넘는다. 이 6조원이 딱 12개 지점에서 올린 수신고이다. 지점당 평균 5천억원. 국내 최우량은행 국민은행의 영업점당 수신액이 1천3백억원이다. 문제는 외형성장뿐만이 아니다. 재무구조의 건전성이나 수익성면에서 대적할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부실 가능성이 높은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0.7% 수준이다. 철저한 재무분석과 신용평가시스템으로 상환능력을 예측하는 여신심사시스템 덕분이다. 시중은행에서 고정이하 여신이 가장 적다는 신한은행도 이 비율이 3.98%이다.지난해 총자산 10조5천3백68억원에서 충당금적립전이익 2천1백40억원, 당기순이익 1천4백71억원을 거뒀다. 총자산이익률(ROA)이 무려 1.5%대. 지난해말 국내 최고우량은행인 국민은행의 ROA가 0.97, 주택 신한은행도 0.94, 0.85였다.씨티은행 서울지점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점포와 수신고를 가진 주택은행의 김정태행장이 분당씨티은행 지점의 동향까지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정이하 여신비율 0.7%에 ROA 1.5인 씨티의 수신액 6조원이 예사로운 6조원이 아닌 것이다.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신용카드시장에서 씨티는 리볼빙카드로 40만명의 회원을 단시일내 확보했다. 올해 1백만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매물로 나오는 국내 카드업체의 유력한 인수업체로도 씨티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알고 보면 씨티은행은 아시아지역에서만 7백만명의 회원을 가진 아시아 최대의 신용카드 업체이기도 하다.씨티의 전통적 타깃 고객층이었던 소수의 부유층도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종전에 소득 상위 5% 이상이었던 타깃층을 수신쪽에서는 소득 상위 5% 이상, 대출쪽에서는 소득 상위 50% 이상으로 넓혔다’(원효성 씨티은행 이사). 그간 하지 않던 미들마켓, 중소기업금융 분야에도 뛰어든다. 빈곤층에게 장기간 무담보로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프로그램. ‘이미지구축용’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국내은행들이 전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이다.지난달 씨티은행이 판매한 씨티가란트펀드는 2천억원 가까이 팔렸다. 펀드상품 판매수수료 수입은 예대마진보다 이익구조가 우월한 만큼 씨티가란트펀드의 판매성공은 씨티뱅크의 도약에 날개까지 달아주는 셈이다.‘하이닉스반도체(구 현대전자) 살리기’에 나선 씨티의 또다른 행보는 씨티 비판론자들을 무색하게 했다.씨티는 최근 SSB(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을 주간사로 내세워 12억5천만달러의 하이닉스 GDR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로 모든 국내 금융기관이 몸을 사리던 딜이었다. 지난해 국내 금융기관들이 초단기자금 운용에 골몰할 때도 하이닉스에 8천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성사시켰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한국정부가 나서서 현대전자를 지원한다’고 미국정부가 비판할 때 씨티는 미국대사관과 미국정부를 이해시키는 막후의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씨티출신 금융인들의 영향력도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씨티로 대표되는 외국계 은행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은 국내은행 증권사 심지어 정부 금융당국조차 모셔가지 못해 난리다. 그들의 시스템을 이식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씨티는 한국 금융가의 인프라까지 재구축하는 주역이 되고 있는 셈이다.인터뷰토마스 펠로우스(Thomas Fallows) 씨티은행 부대표“한국 동반 발전에 역량 집중”씨티은행 사람들은 씨티가 한국에서 돈만 벌어가는 외국은행으로 인식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한다. “씨티는 직원의 99%가 한국사람이고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한국의 은행”(사자드 라즈비 씨티은행 대표)이라는 생각이 단순한 주장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하이닉스 딜에서 씨티은행의 역할이었다.씨티은행 토머스 펠로우스 부대표(이사)는 씨티가 한국사회의 발전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하이닉스 딜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펠로우스 부대표는 하이닉스 딜의 주역이었다.그는 씨티의 하이닉스 채무에 대한 순 리스크가 사실상 “0”이라며 “항간의 추측처럼 우리가 많이 물려 있어서 하이닉스 딜을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하이닉스 살리기에 나선 이유로 펠로우스 부대표는 세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하이닉스의 기업지배 구조가 현대그룹의 문제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둘째, 재무정보의 투명성에 대해 박종섭 사장 등 경영진을 신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하이닉스의 우수한 기술수준과 높은 투자효율, 그리고 현금흐름의 구조를 정밀하게 살펴본 결과 채무의 미스매치(만기불일치)를 해소할 시간만 있으면 반도체 경기회복으로 충분히 회생할 만하고 회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하이닉스의 위치로 볼 때 “한국의 은행들이 못하면 씨티가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펠로우스 부대표는 또 하이닉스 CB인수와 GDR발행이라는 토털솔루션 패키지는 “씨티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지만 우리로서도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참여를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