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 겨냥 소매금융 전력투구 ‘대약진’

선진기법·발빠른 시장진입으로 중산층 이상 공략

선진 금융기법을 바탕으로 한 발빠른 시장분석과 집입이 씨티은행의 최대 무기다.씨티은행이 한국에서 소매금융 업무를 시작한 것은 지난 86년. 올해 3월 현재 총수신고는 5조7천71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업 예금을 제외한 순수 개인 수신고는 약 70%인 4조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총수신고로 볼 때 같은 기간 국내 단일 시중은행 가운데 수신고가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74조7천7백41억원에 비하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숫자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적이다. 불과 12개 영업점으로 일궈낸 것이기 때문이다. 영업점당 수신액으로 환산해보면 국민은행이 1천3백억여원인 반면 씨티은행은 4배에 가까운 4천7백60억원에 이른다.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수신 상승 추세도 가파른 오르막을 타고 있다. 지난 95년 씨티은행의 총수신은 불과 1조6천억원 수준이었지만 3년 후인 98년 두배가 넘는 3조4천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상반기 5조원까지 급성장했다. 대부분 외국계은행이 기업금융에 치중하고 있는 탓에 단연 씨티은행의 약진이 돋보인다.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영업은 철저히 고액 자산가 위주로 운영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국 12개 지점 가운데 서울 강남지역에만 절반인 6개가 집중돼 있는 것이 씨티은행의 영업전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산층 이상이 몰려있는 경기 분당지역에도 지난해 9월 영업점을 열었다. 점포망에서 국내 시중은행에 열세인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전국 12개 지점 중 서울 강남에만 6개 운영세계 최대 금융그룹이라는 명성도 고액 자산가들을 끌어들이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씨티은행 직원들도 ‘씨티’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프리미엄 효과를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이름값만으로 씨티은행이 장사를 잘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진 금융기법을 바탕으로 한 발빠른 시장분석과 진입이 씨티은행의 최대 무기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을 앞세워 개인 여신시장을 적극 공략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씨티은행은 근저당권설정비 면제라는 파격적 혜택과 비교적 낮은 대출금리를 집중 홍보하며 단기간에 높은 실적을 거뒀다.씨티은행은 올 하반기 국내 소매금융 영업에 큰 전기를 마련한다. 대전 대구 광주 등 주요 지방 대도시에 지점을 열고 영업망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승인이 나는 즉시 영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직원 충원과 교육을 마쳤고 객장 인테리어 작업 등 세부작업을 마무리짓고 있다. 지방에는 부산에만 2개 지점을 갖고 있던 씨티은행으로서는 주요 거점별 네트워크를 제대로 갖추게 되는 셈이다.지점망 확대를 계기로 씨티은행은 ‘돈 많은 사람만 거래하는 은행’이라는 지나치게 폐쇄적인 이미지를 좀 더 대중화시킬 계획이다. 소매금융 시장 점유율을 키우기 위해서는 중산층까지도 파고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외국계 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인터넷뱅킹을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다.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PR를 담당하고 있는 김찬석 지배인은 “세계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영업을 펼치는 동시에 현지 국가에 토착화된 마케팅을 함께 추진한다는 것이 씨티은행의 기본 영업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부터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없는 빈곤층에게 담보없이 장기간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사랑의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국내 시중은행들은 씨티은행의 움직임에 대해 겉으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지점망이 워낙 열세인데다 고정고객이 많은 시중은행이 씨티은행에 기존 고객을 뺏기지 않을 것이란 자신 때문이다.국민은행의 정하경 수신기획팀장은 “씨티은행의 여수신 증가비율이 최근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치가 낮기 때문에 비율이 높아 보일 뿐”이라면서 “아직 거래고객이 일부 계층에 한정돼 있고 영업점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고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팀장은 “그러나 지난해 씨티은행과 HSBC(홍콩상하이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히며 개인 대출시장을 공략한 것에 대해서는 국내 은행들도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갖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국내 은행 가운데 비교적 고액 예금자 비중이 높은 하나은행 역시 아직은 씨티은행에 크게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나은행 김정태 가계금융본부장은 “거액 예금자를 두고 씨티은행과 일부 시장이 겹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거래해온 고객이 대부분이고 편리성 측면에서 앞선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경쟁관계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의 한 직원은 “단골고객의 경우 담당 직원이 상담과정을 통해 고객 자녀의 직업이나 가족의 대소사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친밀도가 높은 것이 국내 은행들의 장점”이라고 지적했다.국내은행 우량고객 마케팅 확산에 일조하지만 최근 국내은행들도 ‘VIP고객’으로 분류되는 우수고객에 대한 관리를 부쩍 강화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뜨내기 손님’ 10명보다는 ‘알짜배기 손님’ 1명을 붙잡는 게 은행 수익성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수고객을 타은행으로 뺏기지 않기 위해 은행마다 우대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한빛은행은 최근 3억원 이상 예금을 맡긴 고액에게 최고 5천만원까지 신용으로 돈을 빌려주는 ‘한빛 프레스티지론’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민은행도 5월부터 최우수 고객인 ‘빅맨고객’에게 5천5백만원까지 신용으로 빌려주고 있다. 하나은행은 우수 고객을 관리하는 PB(프라이빗 뱅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80여명으로 구성된 PB들에게 외환 주식 채권 등 금융교육뿐 아니라 미술품 관람법 골동품 투자법 등 우량고객을 위한 문화교육도 다양하게 실시할 방침이다.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은행의 거래 고객이 충성도 측면에서 외국계은행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씨티은행을 필두로 소매금융 시장에서 불고 있는 외국계은행의 약진을 의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은행권에서 최근 우량고객 중심의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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