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른 구조조정 약발 … ‘세계 1등’ 노린다

삼성전자 등 11개 계열사 1백대 기업에 선정 … 시가총액 전체 31%인 31조원대 ‘최대규모’

삼성계열사들 중 상장 및 코스닥 등록회사는 모두 14개. 삼성은 이중 11개 기업이 가 선정한 1백대 기업에 포함돼 4대 그룹 중 가장 많은 1백대 계열사를 거느렸다. 특히 삼성의 나머지 3개 기업중 2개는 3월 결산법인이어서 대상에서 제외됐고 1개는 영업이 아닌 특별손실(삼성상용차 부실)로 적자가 발생, 1백위권 밖으로 밀려났을 뿐이다.삼성 계열사들 중 1백대 기업에 속한 11개 기업의 지난해 시가총액은 모두 31조2천여억원. 상장 및 코스닥등록 전체 시가총액의 31%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 계열사의 매출액은 88조9천7백여억원, 당기순이익은 7조1천7백여억원에 달한다.순이익 규모는 삼성이 지난해 전체 국세 86조원의 8%인 7조여원의 세금을 내고도 올린 금액이다. 삼성은 지난해 각종 사회공헌 활동에 1천6백58억원을 지원했다. 99년의 8백36억원보다 무려 98% 증가했다.93년 “마누라·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이런 삼성의 파워는 순발력있는 구조조정에서 비롯됐다. 93년 이건희 삼성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일명 ‘출퇴근 7·4제’를 강행했다. 이때 삼성 및 재계 일부에선 이회장의 이같은 지시를 남몰래 조롱하거나 깎아내렸다. 하지만 97년 말 IMF 위기가 발생하자 남들이 엉뚱하다고 떠들었던 이회장의 지시는 순간 ‘선견지명’으로 뒤바뀌었다.이회장은 외환위기가 닥치자 비서실(현 구조조정본부)에 계열사들에 대한 경영실사 작업을 지시했다. 숫자에 밝은 비서실 젊은 팀원들은 전체 계열사와 사업부문을 정밀 분석해 ‘재고 감축’ ‘채권 및 부동산 매각’ ‘적자 및 한계사업 철수’라는 진단을 내렸다. 다른 기업들 같았으면 그룹의 이같은 결단에 엄청난 내부 충격이 있었겠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진행됐다. 이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어느 정도 내부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삼성의 구조조정은 국내외 위기관리 모범사례로 꼽히면서 지난해 스페인, 국제경영과학회, IBRD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먼저 삼성 구조조정의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잘 할 수 있고 꼭 필요한 것에 집중을 해서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이 삼성의 기본적인 전략이었다. 삼성은 주력 업종을 전자, 금융과 무역, 서비스 등 3~4개로 압축하고 계열사 정리를 단행했다. 중앙일보 보광 한일전선 IPC 대한정밀 한덕화학 대경빌딩 등 28개 계열사를 그룹에서 분리하거나 매각 청산했다. 그리고 한계 적자사업이거나 비주력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삼성전자의 파워 디바이스사업은 페어차일드사에, 방산사업은 톰슨사에 팔았고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는 볼보에, 지게차 사업은 클라크에 매각했다. 삼성물산의 유통사업은 테스코에 매각하고 한국HP의 지분은 HP에 넘겼다. 이외 항공기 발전설비 선박용엔진 사업 등은 빅딜로 해결했다. 위성체 페이저 공작기계 롤레이 조립식 욕조 등 철수하거나 분사한 사업도 많다. 이에 따라 IMF 사태 전에 삼성의 채권 및 재고는 14조6천억원에서 99년 말 9조7천억원으로 5억원이 줄었다.삼성은 이와 함께 인원도 줄였다. 웬만해선 인원감축을 않던 삼성으로선 뼈저린 아픔이었다. 비용절감을 위해 인력감축은 필연적이었다. 97년 말 16만7천여명에 달했던 삼성 직원들은 99년 말 11만3천여명으로 2년 동안 무려 32%가 감소했다. 삼성은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고용승계를 관철시키거나 협력회사로 취업알선을 하는 등 후속 프로그램을 신속하게 가동해 큰 충돌은 없었다.삼성의 구조조정은 이같은 사업정리 및 인력감축 등 직접적인 비용절감과 함께 남은 계열사들에 대해 글로벌화 작업을 펼쳤다. 삼성 계열사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향후 생존 프로그램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삼성은 이를 위해 이익을 중시하는 경영으로 모든 계열사의 경영방침을 바꿨다. 이에 따라 계열사들에 대한 평가방법을 개선했다. 투자가치에 대한 영업이익 시가총액 등을 평가요소에 포함시켰다.계열사들의 지배구조도 바꿨다.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사외이사 비중을 확대했다.회계 투명성도 높였다. 삼성은 SAP시스템을 도입, 국내와 해외법인이 동일한 방식으로 회계 처리를 해 거의 실시간으로 경영정보를 파악하게 했다.인사제도는 능력주의로 바꿔 모든 직원에 대해 연봉제를 도입하고 스톡옵션 이익분배제 등을 신설했다. 인력 채용방식도 정기모집에서 수시 채용으로 변경하고 우수사원을 유치하기 위해 사인온(Sign-On) 보너스 등을 도입했다.요즘 삼성에는 의사결정방식에 있어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삼성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에 구조조정본부 팀장이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다.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인 김인주 부사장, 기획홍보팀장 이순동 부사장, 그리고 인력팀장 노인식 전무와 경영진단팀장 박근희 전무가 바로 주인공들이다. 여기엔 삼성이 빠른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포석이 깔려 있다. 2단계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계열사별 일류화 사업 설정 박차삼성의 2단계 구조조정 핵심은 국제경쟁력을 갖춰 세계무대를 제패한다는 것이다. 1단계 구조조정에서 튼튼한 반석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 반석을 딛고 세계로 도약할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얘기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등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이를 암시했다. 이회장은 작은 국가의 큰 기업 역할을 강조한 ‘강소국’론을 제시했다. 이회장은 “네덜란드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면서 강국의 위치를 확보했다”고 강조하며 “이들 강소국의 예처럼 대기업들이 국가경제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경영에 힘써줄 것”을 사장단에 당부했다고 한다.그래서일까. 삼성은 최근 구조조정본부 주관으로 각 계열사별로 ‘일류화 사업’을 설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별로 미래의 주력사업 육성방안 등을 마련한 뒤 이를 토대로 하반기중 그룹의 중장기 비전을 확정한다는 것이다.중장기 비전에는 계열사 업무영역 조정과 기존사업의 대폭적 정리가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이 1단계 구조조정에 이은 2단계 구조조정으로 언제쯤 세계 시장을 제패할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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