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희망 안고 다시 뛴다

거품, 수익모델 부재, 자금난, 도덕적 해이…. 벤처기업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다. “하반기에 경기가 좋아질까요?” “열심히 하고 있지만 글쎄요….” 최근 벤처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얘기다. ‘벤처투자 급랭’ ‘벤처기업 자금조달 가장 큰 어려움’. 최근 언론에 벤처기업과 관련해 눈에 띄게 늘어난 제목들이다.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벤처업계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특히 지난해 벤처붐과 함께 ‘묻지마 투자’로 호황을 누렸던 인터넷 벤처 소위 닷컴 기업들은 1년도 못돼 투자 대상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당장 수익이 없으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일부 닷컴 기업이 몇개월째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했다는 소문은 그리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수익은 없고 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미국 벤처캐피털도 신규 투자를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추세다. 콘텐츠 기업에 대한 투자가 축소된 반면 바이오 통신 등 수익성이 확실한 곳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국내 벤처캐피털 업계도 기술력을 갖춘 알짜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투자 양상을 보이고 있다.미국 벤처캐피털, 알짜 벤처 골라 투자벤처기업 가운데 특히 인터넷 벤처기업들은 최근 상황을 심각히 인식하고 수익 모델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벤처기업들 스스로 거품을 걷어내고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다.다행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터넷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자율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즉 기술 우위의 경쟁력 있는 기업 위주로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M&A로 비용절감 공동 마케팅을 펼쳐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있다.특히 자금과 경영 능력을 갖춘 벤처기업이 해당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M&A를 펼치고 있다.한국인터넷기업협회 김성호기획실장은 “자금 경영문제 등 정체성에 빠진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회사 회생방법으로 M&A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M&A 활성화를 위해 기업에 대한 동양적인 사고 탈피와 법적 제도규제를 해결하는 일도 시급한 문제라고 덧붙였다.현재 M&A에 적극적인 분야로 보안 업계를 꼽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철수연구소가 보안컨설팅 및 솔루션 업체인 한시큐어 지분 1백%를 1백5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20여명의 연구 인력을 갖고 있는 한시큐어는 보안 컨설팅 및 종합 관리부문에서 국내 최고 기술을 가진 업체로 평가됐으나 마케팅과 자금력에 한계를 겪어 왔다. 안철수연구소는 바이러스 업체의 한계를 벗고 종합 보안회사로 변신을 꾀하려던 차에 한시큐어를 인수한 것이다.인터넷 벤처기업들은 온라인 한계를 벗고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오프라인과 결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라이코스코리아 야후코리아 등이 수익 창출을 위해 오프라인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또 분사를 통해 몸집을 가볍게 하거나 대기업에서 활용하는 소사장제를 도입해 운영하기도 한다.다행인 것은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수익사업이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 가운데 전자상거래 저변 확대로 온라인 경매 업체, 쇼핑몰 업체의 수익 구조가 대폭 개선되고 있다.대표적 인터넷 포털 기업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연속 영업 이익을 달성했고 인터넷 경매 업체인 옥션이 1분기 순익 기준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어섰다. 또 야후코리아도 쇼핑몰 사업 확대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수익 구조 개선을 위해 외형 성장에 치중했던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내실 경영과 오프라인 모델을 도입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이와 반면에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첨단 장비 분야에 종사하는 제조업종의 벤처기업들은 현재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인터넷 벤처기업의 위기를 전체 벤처기업 위기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제조업 중심의 벤처기업들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생산 품목의 수출을 통해 매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제조업 기반의 벤처기업이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이들의 지속적인 발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첨단 장비분야 제조 벤처 꾸준히 성장올들어 전체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벤처기업들의 수출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월 국내 총수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0.9% 감소했으나 벤처기업들의 수출은 15억6천만달러로 1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체 수출 대비 벤처기업 수출 비중도 전년 동기 대비 2%에서 올해 3%로 늘어났다. 특히 총수출이 9.9%나 하락한 지난 4월 중에도 벤처기업들은 12.6%나 증가해 뚜렷이 대비되는 실적을 보였다.벤처기업협회는 국내 벤처기업이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정부의 급속한 벤처 육성 정책으로 무늬만 벤처인 기업을 양산했다고 판단해서다. 결과적으로 벤처기업가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도덕적 해이, 일반 투자자의 경제적 손실, 벤처 거품에 따른 코스닥 시장 붕괴 등으로 이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중기청도 1천여개 특별관리대상 벤처기업에 대해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사업 유지가 어려운 업체에 대해서 즉시 퇴출시키기로 했다. 또 벤처 지원 인프라를 정비하고 벤처인증기업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등 벤처기업 체질 개선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국가의 희망이 우량한 벤처기업 활동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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