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영어시장 ‘왕대박’

업계에선 예전부터 ‘영어’자 들어가는 사업치고 웬만해선 망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바람이 그만큼 거세다는 것이다. 이 바람의 핵심에 ‘어린이’가 들어서면서 그 강도가 훨씬 강해졌다.자녀교육에 관한 한 세계 제일의 국제경쟁력을 갖춘 한국 부모들이 영어로 인해 자신이 받은 ‘설움’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내가 굶어도 내 자식만은 먹이고 내 자식만은 최고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한국 부모의 ‘자식사랑’이 아닌가.덕분에 어린이 영어학원이고 학습지고 ‘어린이 영어’가 들어간 사업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노다지’ ‘황금시장’이란 비유도 심심찮게 나온다.특히 영어학원의 경우 학생들이 몰리고 돈이 된다고 하니 너도나도 학원을 하겠다고 난리다. 1백평 정도의 시설에 3억 정도만 투자하면 몇 년만에 평생 먹고 살만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다니 누가 군침을 흘리지 않겠는가. 여기에 서울시는 현재 학원 시설규모 허가기준을 최소 1백평에서 30평으로 완화하는 조례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중소규모의 학원난립이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요즘의 영어 조기교육은 대상(나이) 불문, 빈부 불문, 지역불문, 방법 불문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을 겨우 알아들을 만한 유치원 때부터 영어학원을 드나드는가 하면 부유층은 부유층대로 서민층은 서민층대로 고액 학원이나 학습지 인터넷을 가리지 않고 영어교육에 생사를 걸고 있다.돈 된다… 학원 하겠다 ‘군침’우선 강남이나 일부 신도시를 보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원더랜드 ECC 등 대형 영어학원 체인업체들은 최근 2년 사이에 가맹점이 50% 이상 증가했다. 자잘한 학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학원이 생긴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월 평균 12만~19만원씩의 수강료가 책정돼 있는 이들 학원에 초등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4~7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 개념의 유아대상 학원은 부모들의 영어교육 열풍이 집중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남의 일부 유아 영어교육 학원은 월 수강료가 80만원이 넘는 데도 자리가 없다.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몇 달씩 기다려야 수강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그래도 이건 약과다. 좀더 적극적인 부모들은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름방학을 이용한 20일 정도의 단기 해외연수에 4백만~5백만원씩의 돈을 투자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초등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된 7월21일 이후 공항에는 해외연수를 떠나는 초등학생들이 하루 3백~4백명에 이를 정도다. 어린이 단기 해외연수는 몇 년 전만 해도 일부 서울지역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요즘엔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산됐다.웬만큼 먹고 살만 하면 빚을 내서라도 보내야겠다는 것이 요즘 학부모들의 정서란다.여기에 조기유학까지 가세하고 있다. 매년 수천명의 초중고교생이 ‘영어 때문에’ 한국을 떠나고 있다. 부모들과 함께 떠나면 다행이지만 혼자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단독 조기유학에 대한 주변의 걱정어린 시선에 부모들은 곧잘 “비록 잘못될 지언정 영어는 할 게 아니냐. 그러면 적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테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반응이다. 수십년 동안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가슴앓이를 해온 중년세대의 한과 그래서 더욱 잘 나가는 영어 비즈니스, 영어 하나로 방방 뜨고 있는 인물 등...“지나치다” 지적 적지 않아그러나 요즘의 영어 조기교육 열풍을 두고 “지나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국 교육과정평가원 최진황 연구위원은 “영어 교육에 돈을 많이 들인다고 들인 돈만큼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릴 때는 영어에 흥미를 갖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반복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비싼 학원이나 과외보다 학습지나 영어 동화책 읽기로도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경제적 능력 때문에 자녀를 고액 영어 학원에 보내지 못하고 학습지나 영어 동화책으로 영어공부를 시키는 학부모들에겐 상당히 희소식으로 들릴 만하다.이에 비추어 현재 1조 2천억원 규모의 학습지 시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영어교육을 위한 각종 웹사이트나 영어 장난감 등 각종 영어교육 관련 도구들도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 추세다.이렇게 영어교육 바람이 거세지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가 학원 난립으로 인한 외국인 강사 부족문제. 학원들의 강사 스카우트 경쟁으로 강사들의 몸값이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강사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어린이들이 낯설어 하고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한 학원 관계자는 “영어권 외국인 강사를 둘러싼 스카우트 경쟁이 심해지면서 요즘 영어권 외국인들 사이에선 ‘한국가면 놀면서 돈벌 수 있다’는 식의 소문이 확산돼 한국이 불법 무자격 외국인 강사의 천국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이에 따라 불법 무자격 강사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고 학원마다 자격을 갖춘 외국인 강사 여부에 따라 학생수를 제한하는 등 실질적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영어교육을 1학년부터로 앞당기고 수업시간 수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높다. 공교육 차원에서 영어 조기교육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영어 교육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웃 일본에서도 영어를 제 2의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부모들의 영어 조기교육 열풍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이왕 해야 하는 영어교육이니 만큼 관련 업체나 당국이 지원 및 단속을 적절히 조화해 교육효과를 최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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