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주주 놓고 베일속 두 주인 ‘엎치락 뒤치락’

이용호회장, 2% 지분 차이로 아슬아슬 대주주 유지 … 김형진사장, 대주주 안되면 투자계획 철회 시사

쌍용화재의 새로운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고요하던 쌍용화재에 낯선 인물들이 들이닥친 것은 지난 6월중순. 증권거래소 공시에는 쌍용화재의 대주주가 바뀌었다는 내용이 떴다. 쌍용화재의 대주주인 쌍용양회의 지분 11.1%를 전부 인수한 곳은 PCI인베스텍이라는 투자회사. 그러나 보름 뒤 삼애인더스라는 업체가 다시 쌍용화재의 대주주가 됐다는 공시가 올라왔다. 비슷한 시기에 한 회사를 두고 두 차례나 대주주가 바뀌자 증권가에선 주가조작설이 흘러나왔고 금융감독원은 진상조사에 나섰다.쌍용화재의 경영권까지 넘겨 받는 조건으로 지분을 매입한 PCI인베스텍과 지난해 10월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장내에서 주식을 매집한 삼애인더스 등 양 쪽은 경영권을 순순히 내놓을 기색이 없다. 쌍용화재를 두고 한 판 대결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새 대주주들의 정체우선 PCI인베스텍은 미국 시애틀의 프리미어 캐피털(Premier Capital)이 본사이며 지난 6월 PCI인베스텍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사업자등록을 했다는 점밖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금융감독원과 쌍용양회에 따르면 “이 회사 김형진 사장의 미국 이름은 제임스(James), 나이는 38년생으로 64세, 그리고 시애틀에 있다는 프리미어캐피털은 지난 94년 설립된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김사장은 와 전화를 통한 인터뷰에서도 자신을 속시원히 밝히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 아시아에서 30여년간 금융기관에서 일한 투자전문가(Investment Advisor)”라고 소개한 뒤 “지난 88년 서울에서 외국계 은행을 다닌 적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투자자문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말했다. 그러나 그가 서울에 근무한 외국계 은행이 어딘지, 그가 투자자문을 해주는 고객들은 누구인지 등 자신의 이력에 대해 밝히길 꺼렸다.김사장과 비슷한 시기에 쌍용화재 주식을 조금씩 사 모은 곳은 삼애인더스라는 피혁 제조업체다. 이곳은 계열사인 조흥캐피탈과 함께 6월21일부터 7월10일까지 적게는 1만5천주에서 많게는 35만주를 장내매입했다. 그 결과 삼애인더스는 19.02%의 지분을, 조흥캐피탈은 2.94%를 보유, 21.96%를 확보했다. 이를 계기로 쌍용화재의 1대주주는 PCI인베스텍에서 순식간에 삼애인더스로 바뀌었다. PCI인베스텍이 쌍용 관계사 등 우호지분을 합해도 19%여서 삼애인더스에 2% 가량 뒤지는 것이다.쌍용화재의 1대주주가 된 인물은 이용호(44) 삼애인더스 회장이다. 그의 이름이 증권업계에 등장한 계기는 98년 말 상장회사인 인터피온(옛 대우금속)의 대주주가 되면서부터다. 그 뒤 삼애인더스 스마텔 KEP전자 그리고 조흥캐피탈 등 무서운 속도로 거래소 종목을 인수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불과 2~3년만에 사업을 키우자 증권가에서는 ‘사기꾼’이란 얘기부터 ‘숨은 M&A 실력자’ 등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난무했다.특히 이번 쌍용화재의 대주주로 올라서면서 그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갔다. 이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쌍용화재의 사장이 되기위해 주식을 매집했다”며 “급속도로 진행하기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전략을 통해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아직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김사장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6월22일 쌍용화재의 지분 매입계약 뒤 7월8일 쌍용그룹의 관계사인 한일생명 지분 52%를 ‘1원’에 매입하고 운영자금으로 2백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서에 서명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김구룡 한일생명 감사는 “우리도 김사장의 정체를 잘 모른다. 다만 그가 올 초 삼신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몇 차례 삼신쪽 관계자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김사장이 금융기관 인수에 관심이 많다는 정도만 안다”고 전했다.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김사장의 자금은 아직 국내에 유입되지 않았다. 쌍용화재 지분 매입대금을 7월5일 납입하겠다고 했다가 13일로 미뤘으며 다시 25일로 한 차례 더 미뤘다. 이에 김사장은 “내가 자문하고 있는 외국투자자들은 1대주주와 경영권에 관심이 있지 2대주주로 투자이익(Capital gain)을 얻으려는 생각이 없다. (내가 관리하는) 국내투자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따라서 7월25일까지 쌍용화재의 1대주주가 되지 못하면 쌍용화재와 한일생명 투자 계약은 수포로 돌아간다. 한일생명 인수는 쌍용화재와 묶어서 인수하는 조건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왜 쌍용화재 노리는가우연한 시기에 두 자본가들이 쌍용화재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쌍용화재를 눈여겨 보았다. 당시 신문을 통해 쌍용화재 매각 계획을 읽은 이회장은 대주주 지분이 적고 쌍용그룹에서 벗어나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정부가 적대적 M&A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쌍용화재의 순자산가치는 8백억~9백억원대에 달하지만 시가총액은 불과 3백억원대였다. 1백억원이면 충분히 인수할 수 있는 가격대였던 것. 이후 인수 시기를 저울질하던 이회장은 지난 6월초 쌍용화재가 지급보증을 선 쌍용양회가 회사채를 상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행에 옮겼다.이회장은 쌍용양회 앞으로 주당 1만3천원에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으나 답변이 없어 직접 장내 매입을 선택했다. 인수자금은 지난 3월 삼애인더스의 공모자금(6백억원)에서 나왔다.올 초부터 삼신생명 등 국내 금융기관 인수를 엿보던 PCI인베스텍 역시 이 즈음에서 쌍용양회 관계자와 접촉,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주당 1만원에 11.1%를 인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역시 쌍용화재의 숨겨진 가치에 주목해서다. PCI인베스텍의 자금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서 모은 1천3백억원으로 알려져 있다.이런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쌍용그룹 오너의 자금이 외국을 경유해 국내에 우회 유입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쌍용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였던 쌍용화재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런 말을 들었다. 현재 오너의 자금이 유입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려하는 중”이라며 “자본의 투명성과 대주주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쌍용양회측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우회 출자설을 일축했다.현재로선 삼애인더스가 쌍용화재의 대주주다. 그러나 7월25일 PCI인베스텍이 약속한 자금을 납입하면서 추가 우호 지분확보에 성공, 다시 1대주주가 된다면 경영권 싸움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금 증권·금융계에선 쌍용화재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인터뷰이용호 삼애인더스 회장“마지막 투자 … 대주주 절대 양보 못해”“내 인생의 마지막 투자를 한다는 심정입니다. 쌍용화재의 사장이 돼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목표지만 갑작스런 변화보다는 스며드는 전략을 취할 겁니다. 보험 설계사로 일하면서 보험산업을 바닥부터 연구하면서 때를 기다리겠습니다.”서울 명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용호 회장은 쌍용화재 지분 매입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이회장은 지난 3년간 그가 투자한 업체들의 경영성적표를 공개하면서 그가 쌍용화재를 인수할만한 자격이 있음을 강조했다. 지난 2월 기자가 취재중에 만난 이회장은 세상에 나서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만에 그의 태도는 1백80도 바뀐 것이다.“수많은 루머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내 뒤에서 나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까지 만났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쌍용화재 인수를 계기로 전면에 나설 생각입니다.”58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한 이회장은 광주상고를 나와 직장(버스회사 경리)에 다니면서 광주대학교 경영학과 야간에 입학했다. 그러나 포항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다니던 대학을 중퇴했다. 이후 택시업체 가스충전소 등에서 전전하다가 부동산 개발에 눈을 떠 돈을 모았다. 80년대 중반에는 주택임대 사업을 벌였고 90년 초에는 전남일보 계열사인 건설회사 사장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96년 서울로 올라온 이회장은 구조조정 회사를 차려 버려진 공장부지 등을 사고팔면서 1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이를 주식투자로 날리는 등 중대한 고비를 맞았으나 98년 부실화된 상장사 인터피온을 인수, 구조조정 성공으로 주가가 올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금을 마련했다. 이후 삼애인더스 조흥캐피탈 KEP전자 등 남들이 거들떠 보지 않는 상장사를 헐값에 사들였다. 인수한 뒤엔 정보통신 금융 등으로 업종을 전환시키는 구조조정을 단행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쌍용화재를 인수한 자금도 여기서 나왔다. 지난 3월과 5월, 삼애인더스는 회사 운용자금과 투자자금으로 공모를 실시한 결과 6백억원을 모았다. 제2의 우선주를 상장시키는 방법으로 공모에 성공한 이회장은 “이 자금중 쌍용화재 주식 매입으로 1백억원을, 조흥캐피탈에 1백60억원을 사용했고 삼애인더스의 정보통신사업에 1백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는 “삼애인더스의 지분과 우호지분까지 합한다면 30%가 훨씬 넘기 때문에 1대주주 자리를 내놓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경영권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김형진 PCI인베스텍 사장“인수 후 경영 잘해 제 가치 찾는 게 목표”프리미어캐피털의 한국 사무소인 PCI인베스텍은 서울 중구 초동에 있다. 그러나 “사무실 계약만 하고 임대료는커녕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빌딩 관리인의 말은 김형진 사장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마감 직전 미국 시애틀에 있는 김사장과 어렵게 통화에 성공했다.쌍용화재에 관심을 갖은 이유는.쌍용양회가 쌍용화재의 지분을 매각한다는 얘기를 듣고 먼저 접촉했다. 괜찮은 회사다. 내가 금융사업만 했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만 관심이 있다. 쌍용화재뿐 아니라 최근엔 미국의 보험사 관계자들과 함께 인수할 만한 금융기업들을 둘러봤다. 겉으로 보기는 별 것 없지만 인수한 뒤 경영을 잘해 제 가치를 찾는 것이 내 투자 목표다.인수자금의 출처는.주로 해외 기관과 회사들의 자금을 운용한다. 국내 투자자금도 있다. 어디라고 밝힐 수 없다.쌍용오너의 자금을 관리한다는 소문이 있다.절대 아니다.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은 자유다. 그런데 대기업이 처분하는 주식을 산다고 의심한다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투자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지 특정 회사가 좋으라고 투자하지는 않는다.쌍용화재의 지분매입 대금을 두 차례 연기한 이유는.1대주주와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누가 우리 쪽 우호지분이 될 지 알아보고 있다. 7월25일까지 무슨 결정이 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쌍용화재나 한일생명에 투자할 메리트가 없다. 요즘 계약이 확정된 것처럼 얘기하는 데 그렇지 않다. 그때까지 (기사 쓰는 것을)기다려 달라.경영권을 확보한다면 구조조정이 시작되나.계획은 없다. 우선 인수하고 난 뒤 생각할 일이다. 지금으로선 경영진을 교체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다. 쌍용화재 사장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경영을 잘 한다면 교체할 이유가 없다. (나는)경영 자문 정도는 할 수 있겠다.도움을 주는 파트너가 있나.한국은 나이, 사무실 규모, 직원 수 등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 혼자서 일하지는 않고 금융기관이나 회사 등에 투자 파트너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일한다. 한국 사업은 이제 시작이다.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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