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PC·TFT-LCD모니터 등 수요 급증 여세몰이 … 지역밀착형·디자인 현지화로 승부
삼성 LG 대우 등 한국산 가전 브랜드가 일본 시장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일본의 내로라하는 가전 브랜드가 노골적으로 한국시장을 넘보는 이때 ‘적진’인 일본시장에서도 한국산 가전 브랜드가 맹공을 펼치고 있다.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3사는 올해를 일본 원정전(遠征戰)의 전기로 삼고 적극적인 상륙작전에 돌입했다. 일본시장이 급부상한 것은 △IT시장의 폭발 △온라인 비즈니스 활성화 △디지털 위성방송 실시 △장기 복합 불황 지속 등 일련의 환경 변화가 주요인으로 꼽힌다.특히 국내업체들은 일본정부가 IT산업을 국책사업으로 육성, 휴대용PC 등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다 초대형 양판점에서 온라인 비즈니스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보고 있다. 여기에 장기 불황으로 일본 가전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틈’이 시장 개척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그러나 세계 정상을 자랑하는 일본 가전 브랜드의 ‘안방’을 국내업체가 점령하기엔 아직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정공법보다 우회전략, 틈새시장 개척 등 신중한 마케팅에 주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현지 판매법인 영업맨들은 ‘천천히, 지속적으로 잠식해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삼성전자삼성전자는 99년에 1억3천만달러의 대일 가전제품 수출을 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억달러가 넘는 실적을 올렸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어난 3억달러 수출이 목표.삼성전자의 수출 호조는 TV 전자레인지 VCR 등 전통적인 제품들 외에 고가 제품으로 분류되는 TFT-LCD모니터와 완전평면TV DVD플레이어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전자레인지와 TFT-LCD모니터 등은 세계시장 점유율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제품이다.삼성전자는 최근 인터넷 유통망을 통한 직판체제에 일본시장 승부수를 걸었다. 그동안 낮은 브랜드 인지도, 품질에 대한 불신감, 제품의 수적 열세, 쇼룸·AS 체제 미비 등으로 겪어온 어려움을 ‘디지털화’로 돌파한다는 것.지난해 3월 오픈한 전자상거래 사이트 ‘디지털 디파트먼트(Digital Dpt.)’는 일본 소비자 사이의 불신을 제거하고 디지털 제품 판매를 증가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이다. 고즈마, 죠신, 베스트 등 5대 초대형 양판점이 전체 시장의 56% 매출을 점유하고 있는 일본시장의 특성도 인터넷 유통망 개설의 필요성으로 작용했다. ‘디지털 제품은 디지털 유통으로 공략한다’는 모토다.삼성전자는 지난해 1백만원대 TFT-LCD모니터 한 개 모델을 1만대 이상 판매했다. 개인 고객은 물론 대학 관공서 기업체 등에서 두루 인기가 높다. 일본내 액정 모니터 선두주자인 샤프 소니 마쓰시타 등과 경쟁해 3%대의 점유율을 내년에는 2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말 일본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판매 초기 0.7%에 불과했던 액정 모니터 인지도가 5위권인 14.2%로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일본의 인터넷 사용 인구는 3천2백만명으로 추정된다. 전자상거래 시장은 7천7백30억엔 규모. 액정 모니터에서 거둔 자신감과 일본내 전자상거래 시장 확대를 바탕으로 올해는 MP3플레이어 초박형 노트북PC 디지털카메라 등의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모두 ‘디지털 유통’ 주력 방침에 따라 인터넷으로 먼저 선보였다.삼성전자 재팬의 이남식 부장은 “지난해말 삼성 홈페이지에 1백70만건 이상이 접속해 인터넷을 통한 틈새시장 공략이 대성공을 거뒀다”고 말하고 “소니는 전제품을 통틀어 월 9억엔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삼성은 액정 모니터 하나로 월 1억엔 이상 실적을 내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액정 모니터 외에도 색깔있는 TV, 미래형 전자레인지, 완전평면TV, DVD플레이어 등도 인기다. 색깔있는 TV의 경우 젊은 독신자층을 공략, 일본 여성잡지에 인기상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최대한 공간을 절약하는 14인치 사이즈에 패션컬러를 가미한 것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기존 14인치 제품보다 2천엔 비싼 5만3천엔으로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연간 10만대 이상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최근 삼성전자는 김치 냉장고 양문형 냉장고 등 특수상품의 판매를 위해 현지법인에 특별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김치에 대한 높은 인기를 겨냥, 교포는 물론 일본인 대상 판매를 늘여갈 계획이다.LG전자LG전자는 올들어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가전 브랜드로 훌쩍 자라났다. LG전자 재팬은 올해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청소기 등 백색가전의 매출이 지난해 5천7백만달러에서 50% 가까이 신장한 8천5백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또 향후 2005년까지 제품별 일본시장 점유율을 10%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품목별로는 세탁기의 매출 성장이 괄목할 만하다. 이미 점유율 5%대에 진입한 데다 올 매출도 지난해 대비 43% 상승한 3천만달러 선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5㎏이하 용량에서는 15%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라는 설명이다.청소기도 인기 품목이다. 지난 99년 ‘쿠리마루(Clean+마루(丸) 합성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청소기는 일본 다다미방의 최대 고민인 진드기 먼지를 효과적으로 제거, 큰 인기를 모았다.최근엔 독신자용 패지키 가전제품 ‘큐비(CUBEi)’를 출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월 첫 선을 보인 큐비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청소기 TV VCR 등 6개 제품을 한 세트로 묶은 제품. LG전자 일본법인 월 매출의 20% 가까운 실적을 올릴 정도로 히트 중이다.LG전자는 백색가전의 신장세와 큐비 등 틈새시장 제품들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올해 일본 매출을 7억8천만달러 규모로 잡고 있다. 이는 지난해 6억7천만달러 수준보다 15% 신장한 것이다.LG전자가 주목받는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요약된다. ‘경박단소(輕薄短小·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로 대표되는 일본의 가전제품 특징을 고스란히 이용하고 있다. 인기를 끌고 있는 세탁기나 청소기 큐비 등은 모두 좁은 일본 가옥 구조에 적합한 소형인 데다 디자인이 감각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LG전자는 ‘일본적인’ 제품 출시를 위해 동경에 디자인연구소를 별도로 두고 대형 양판점 판매담당자 등 현지 전문가의 조언을 적극 수용한다고 전했다.LG전자는 지난 71년 동경사무소를 개설한 후 81년 판매법인으로 전환, 88년부터 독자적인 가전 브랜드 영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한국에서 팔리는 14인치 컬러TV를 전격만 바꿔 내놓았다. 가장 큰 무기는 ‘저가격’. 그러나 90년대 초반 일본의 거품경제가 가라앉으면서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다시 판매 분야를 강화한 것은 지난 98년부터다. 일본 판매용 제품을 따로 만들기 시작하고 품목에 따라 저가격 고가격 정책을 골고루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도입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대형 냉장고와 완전평면TV TFT-LCD모니터 드럼세탁기 등 고급제품을 적극 투입하고 고가격 정책을 전개해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요즘 LG전자는 선행 마케팅과 월드컵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새미 소사를 모델로 기용해 홈런 1개당 10만엔의 기금을 조성, 일본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자선행사를 펼쳤다. ‘일본 사회를 돕는 한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이다.또 월드컵 마케팅을 본격 전개한다는 신호탄으로 동경 긴자에 대형 네온사인을 설치했다. 올 10월부터는 일본풋살연맹과 공동으로 5인조 축구대회를 개최한다. 다양한 이벤트로 현지 밀착전략을 강화한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대우전자대우전자는 한때 국내 가전3사 가운데 일본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내외적으로 하락한 기업 이미지 탓에 다소 주눅이 든 게 사실이다. 대우전자는 그동안 쌓아 놓은 현지 판매 실적을 바탕으로 저가형 중국산 제품에 대항하는 쪽으로 전략을 맞추고 있다. 또 현지 밀착형 마케팅으로 제품 컨셉 수립부터 판매까지 현지에서 진행되도록 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대우전자는 지난해 초 일본 최대의 양판점 고즈마와 공동으로 누드TV VCR를 출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출시 1개월만에 각 5만대를 판매했고 일본 산업디자인협회에서 우수 디자인 마크를 획득하기도 했다. 특히 누드 VCR의 경우 일본 일류 메이커와 동등한 1만7천엔의 고가격 정책을 썼음에도 하루 평균 2천대씩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또 일본의 좁은 집안 구조를 고려해 작으면서도 소음이 적은 ‘미니밴’ 냉장고를 개발, 중국 등을 물리치고 80~1백30ℓ급 수입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우는 앞으로도 미니밴을 주력상품으로 내놓는다는 생각이다.대우전자는 일찍부터 현지화 상품에 관심을 뒀다. 일본법인 산하에 디자인연구소 동경분소, 후쿠오카 리서치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신제품 개발의 핵심인 조사 기획, 디자인이 일본 현지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다.인터뷰김신곤 LG전자 재팬 상무“틈새 공략으로 야금야금 시장 점유”“4~5년 전까지만 해도 ‘미투(Me Too)’ 전략이 전부였죠. 한국에서 인기있는 제품을 전격만 바꿔 팔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철저히 일본적인 제품으로 승부합니다. 일본의 가옥구조 취향 등에 맞는 모델을 직접 개발, 프로덕트 리더십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나가니 일본업체들도 긴장하는 모습입니다.” LG전자 재팬의 김신곤 상무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시종 ‘전의’ 가득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일본시장에서 한국 가전제품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일부 현지업체는 한국산보다 경쟁력 약한 제품의 생산을 중단할 정도라는 얘기다.김상무는 일본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를 유통가와 언론계에서 체감한다고 전했다. 과거엔 양판점 영업을 위해 두세시간 신간센을 타고 가도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지만 요즘엔 신제품 기획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파트너’ 사이로 발전했다. 일본의 신문 방송들도 올들어 한국 가전메이커를 자주 다루고 있다. 신제품 보도자료를 직접 들고 찾아가도 눈길을 주지 않던 그들이다.“하지만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10배 이상의 시장 규모이면서도 GE나 월풀 같은 다국적 기업이 진입에 실패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이거든요. 이제야 대 일본 마케팅에 눈을 뜬 단계지요.” 93년 10월 동경에 부임, 일본생활 8년째를 맞고 있는 김상무는 ‘비 정공법’을 강조했다. 소니 마쓰시타 등 메이저들이 아성을 지키고 있는 기존시장을 정면돌파하기 보다는 틈새시장 신시장 발굴과 지역밀착형 유통전략, 일본인의 감수성을 공략하는 ‘선행’ 마케팅을 주무기로 서서히 점유율을 높여 가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