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적기납품 경영으로 해외서 신뢰 쌓아…철저한 현지화도 적극 추진
미국의 펜더와 깁슨, 일본의 아이바네즈. 이들은 세계 유명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최고급 기타의 브랜드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브랜드의 명품 대부분은 국내 기타전문업체인 콜트(Cort)가 생산한다.실제 콜트는 펜더에 OEM(주문자생산) 방식으로 연 18만대의 중고가 기타를 납품하고 있고 아이바네즈에는 연 7만2천대를 공급하고 있다. 이는 두 회사가 자사브랜드로 판매하는 총기타 판매량의 각 40%, 50%를 차지하는 수치다. 결국 전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이들 유명브랜드의 기타 2대 중 1대가 사실상 국내 콜트악기의 제품인 셈이다.콜트악기는 이런 OEM납품 외에 독자브랜드 ‘콜트’ 기타를 전세계 26개국에 수출, 세계 기타시장의 2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기타전문 메이커다. 콜트악기는 지난해 국내(부평 대전) 및 중국(대련) 인도네시아(수라바야) 등지에서 52만8천대(전기기타 및 통기타 포함)의 기타를 생산, 7천2백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기타 액세서리 1천만달러 등 모두 8천2백만달러(1천66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콜트악기를 세계적 기타전문 메이커로 우뚝 서게 만든 주역은 박영호(55) 사장이다. 박사장은 지난 73년 유아통상이라는 기타전문회사를 만들어 기타사업에 뛰어들었다. 박사장은 사실 기타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연주는커녕 유명한 기타리스트 이름마저 알지 못했다. 이런 박사장이 기타사업에 매료된 것은 지난 71년 미국 시카고의 악기박람회장에 전시된 고가의 기타를 관람하고 나서다.부친의 수도피아노사 미국해외영업본부에 근무했던 박사장은 당시 피아노 및 기타수출업무를 맡고 있어 악기박람회를 참관했다. 박사장은 이때 ‘C.F.Martin’이라는 로고의 기타가 무려 3천달러에 달하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고 한다. 이 금액은 당시 수도피아노사가 수출하던 어쿠스틱 기타 1천대와 맞먹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박사장은 그때 ‘앞으로 저런 고가의 악기만이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터득했다고 한다.박사장은 처음엔 3~30달러짜리의 값싼 기타를 수출하면서도 펜더 등 미국 기타 메이커들의 도움으로 실력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유아통상의 기술이 점차 향상되고 생산규모가 커지면서 박사장은 펜더 아이바네즈 야마하 등 세계적 브랜드들로부터 본격적인 OEM납품을 요청받기 시작했다. 기타는 대표적인 노동집약 상품이다. 주로 수제작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이다. 이에 펜더 등 해외유명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한국 등 동남아지역에서 납품처를 찾고 있었다.그러던 중 이들은 수도피아노 시절부터 알고 있던 박사장을 찾았던 것이다. 이들은 기타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직접 엔지니어와 전문가들을 유아통상에 파견, 기타제작의 노하우를 상세히 알려줬다. 특히 일본 기술진들은 기타의 품질뿐만 아니라 생산성과 작업성을 향상시키는 비법까지 알려줬다고 한다.전세계 26개국에 수출 ‘기타전문 메이커’박사장은 회사설립 후 10년쯤 지나 기술이 향상되자 독자브랜드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난 82년 회사명을 콜트악기로 바꾸고 독자브랜드 ‘콜트(Cort)’를 선보인 것이다. 박사장은 특히 독자 브랜드의 고급화를 위해 깁슨 커스텀샵 출신의 짐 트릭스, 아이바네즈 수석디자이너 출신의 프릿쯔 가토, 커스텀 베이스 디자이너인 그렉 커보우 등 세계 유명 기타 디자이너와 제휴를 맺고 독자모델을 디자인했다.이와 함께 박사장은 기타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10년 이상 거래관계를 지속한 업체들만을 공급업체로 선정했다. 이처럼 콜트의 품질이 높아지자 박사장은 26개국에 콜트 독자브랜드의 기타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이런 박사장의 고급화전략과 함께 시의적절한 현지화전략은 콜트를 세계 1등기업으로 만든 초석이 됐다. 박사장은 80년대말 이후 국내 인건비가 오르는 등 여건이 나빠지면서 해외 유명브랜드들이 동남아 생산기지로 눈을 돌리는 것에 주목하고 해외생산기지 진출을 서둘렀다. 이에 박사장은 지난 95년 인도네시아에 당시 단일공장으로 세계 최대규모의 기타공장(연산 30만대)을 세웠다. 해외유명 브랜드들은 인도네시아 공장에 콜트의 고급 기술이 그대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박사장에게 계속 OEM생산을 요청했다.기타는 주로 수제작에 의해 생산된다.박사장은 저가 기타시장도 지키기 위해 지난 99년 중국에 공장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박사장은 고급기타(수출가 5백달러 이상)는 국내, 중저가(3백~5백달러)는 인도네시아, 저가(1백달러 이하)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풀라인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박사장의 이런 전략으로 콜트는 지난 99년 매출이 전년(4천만달러)보다 75%가 증가한 7천만달러를 기록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20%)에 올라섰다.박사장의 남다른 경영철학도 오늘의 콜트를 일궈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사장은 그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수표 및 어음 사용금지, 친인척 배제, 투명한 자금관리, 무차입경영, 정직한 경영이라는 5대 원칙을 고수해왔다고 한다. 이 중 수표 및 어음 사용금지는 박사장의 부친이 어음부도로 곤욕을 치렀던 뼈아픈 경험에서 비롯됐다.특히 박사장은 80년대초 경제적 안정이 이뤄지면서 납품업체들에 어음 대신 매달 대금을 온라인으로 송금해 줬다고 한다. 그러자 부품업체들은 고품질과 적기납품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박사장 또한 해외유명 브랜드에 고품질의 악기를 적기 납품해 상당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콜트악기는 박사장의 무차입경영과 투명한 자금관리로 IMF 외환위기 때 오히려 큰 호황을 누려 직원들의 보너스를 6백%에서 9백~1천5백%로 높여줄 수 있었다.무차입 경영 실천, IMF 위기 때 빛 발해이제 박사장의 목표는 펜더 등 해외 유명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최고급 기타와 이를 전시하는 고급 커스텀 숍을 만드는 것이다. 박사장은 “지난해 일본 야마하 기타공장을 방문했을 때 오히려 우리가 기술부문에서 한 수 높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미국의 펜더나 깁슨과 비교해서도 콜트의 품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넘버원’ 제품 해부베이스 시그너처 시리즈래리 코리엘 모델 등 일본 마니아 ‘매료’콜트가 자체브랜드로 생산중인 기타모델 수는 전기기타 32개, 통기타 40개, 베이스 28개 등 모두 1백여개다. 콜트기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해외에는 80년대부터 시판된 반면 국내에는 지난 92년부터 시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콜트가 올해 야심작으로 내놓은 모델은 전기기타 및 베이스의 시그너처 시리즈다. 이 시리즈에는 최초로 재즈와 록을 접목시킨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는 래리 코리엘(Larry Coryell; LCS-1, LCS-2), 탁월한 재즈 워킹으로 정평이 나 있는 전설적인 스튜디오 맨 조 벡(Joe Beck; BECK6), 블루스 브라더스 밴드 출신으로 정통 델타 블루스를 추구하는 맷 ‘기타’ 머피(Matt ‘Guitar’ Murphy; MGM-1), 훵키 블루스의 귀재로 알려진 하일럼 블럭(Hiram Bullock; HBS), 그리고 불세출의 베이시스트 T.M.스티븐스 (T.M. Stevens; Funkmachine),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익스피어런스 밴드를 함께 한 베이시스트 빌리 콕스(Billy Cox; Freedom)의 시그너처 모델이 있다. 특히 일본 악기전문지 ‘베이스 매거진’은 최근 콜트의 베이스 시그너처 시리즈를 호평하는 기사를 다뤄 베이스 마니아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한편 서태지는 지난해 컴백쇼에서 콜트의 2001년 신모델인 X커스텀을 사용하고 그 성능에 매우 만족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