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접착제 맞춤 서비스로 ‘초강력 신뢰’ 구축

전종순(55) 동성NSC(dongsungnsc.com) 사장은 누구를 만나든 얼굴보다는 아래쪽을 먼저 본다. 정확하게는 신발을 관찰하는 것이다. 약간이라도 신발 이음부분의 접착이 불량하다고 생각되면 제조회사가 어딘지, 어떤 접착제를 썼는 지를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지난 30년 가까이 신발용 접착제를 만들어 온 것에 따른 일종의 ‘직업병’이다. 하지만 그는 이 고질병 덕분에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신발용 접착제를 만드는 회사의 전문경영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현재 노버프(NOBUFF)를 비롯해 수성 PU접착제 등 그의 결재를 받고 나가는 신발용 접착제는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특히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를 포함한 고급 스포츠 브랜드들의 제품에 쓰이는 접착제 60% 이상이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톱클래스 브랜드들만도 이 정도니 다른 신발 제조업체는 말할 것도 없다.전사장은 지난 73년 동성NSC의 옛 모기업인 동성화학에 입사했다. 인하대 화공과 재학 시절 동성화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인연이 컸다. 말단 사원에서 사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줄곧 신발용 접착제 부문에서 경험을 쌓아 왔다. 98년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ICI에 70%의 지분을 넘기며 합작법인으로 다시 출발한 동성NSC의 수장이 된 것도 수평이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당시 신발용 접착제로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적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ICI에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전사장이 입사하기 한 해 전인 72년 동성화학이 신발용 접착제 사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신발 종류는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스포츠화 전문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갖가지 신발이 선보이게 됐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접착제로는 도저히 불량품 발생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즈음 국내 신발 산업마저 사양길을 걷게 되면서 신발용 접착제의 국내 수요도 주춤하게 됐다. 이 때 다양한 신발 소재에 맞춘 접착제 개발과 판로를 해외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바로 전사장이었다. 그 때부터 해외 유명브랜드를 겨냥, 이에 걸맞는 고가 전략을 구사한 것이 적중했다.그가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제품만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 공장에 접착기술을 함께 제공한 것이 주효했다.신발용 접착제 외길인생, 합작법인도 인정“나이키를 비롯한 유명 신발브랜드들은 항상 새로운 모델의 신발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의 형태와 소재의 성질에 ‘착 달라붙는’ 새로운 접착제가 따라줘야 했죠.” 하지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바이어들의 주문을 받은 신발 공장들은 공정에 쓰이는 접착제가 보다 나은 작업성과 물성을 유지하기를 바랐다. 따라서 이들 공장의 기존 공정에 가장 적합한 접착제를 빠르게 개량해 맞춰줘야 했다. 바이어는 패션 트렌드와 기능성 신발에 맞는 고도의 접착 신기술을, 공장에선 저마다 공정에 맞는 접착제와 접착기술을 각각 요구해 왔던 것이다. 그가 선택한 답은 하나였다. 바로 ‘기술 개발’이었고 이것은 정답이었다. 접착제기술본부장이던 당시 ‘노버프’란 히트작을 내놓은 것도 바로 그 때였다. 제품의 이름처럼 제작 공정에서 소재의 접착면을 문질러 거칠게 하지 않아도 되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나이키에 독점 공급한 이 제품은 당시만 해도 대기업들이 휩쓸었던 장영실상을 그에게 안겨줬다. 현재까지 스포츠화용으로만 3백종이 넘는 접착제를 개발해낸 것도 그 때 초석을 닦아둔 결과다. 바이어가 제시하는 모델에 맞으면서도 공장에서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접착제와 접착기술을 맞춤서비스로 제공했다.“이런 고객중심의 생산과 서비스로 고급 브랜드와 그 생산공장을 파트너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도 오랫동안 거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등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들이 동성NCS가 개발한 접착제를 쓰고 있다.80년대말 한국기업의 무분별한 해외투자로 동남아 등지에서 동종 한국업체끼리 과당경쟁이 벌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1개국 5개사(동종업종) 투자제한’이란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동남아 국가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한국 신발업체는 선착순 5개사로 제한됐다. 이 때문에 신발용 접착제 부문 역시 현지법인 설립에 애로를 겪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한 것 역시 전사장이었다. 사업의 특수성과 투자제한의 역기능을 내세워 관계당국을 설득, 해외 투자에 성공했다.현재 동성NSC는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및 베트남 등 4개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이들 역시 실질적 ‘대부’격인 전사장의 경영 방침을 따르고 있다. 국내외 법인을 통틀어 임직원 수는 약 4백70여명.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1억1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 매출도 18% 성장한 1억3천만달러로 잡고 있다. 이 중 한국 본사의 매출 규모만 약 6백60억원 정도다. 중국 청도 및 대련, 복주를 비롯해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에도 별도의 사무소를 두고 제품과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해외법인과 사무소에 40여명의 한국인 관리자들을 파견했다. 올해말엔 멕시코에도 공장을 세워 가동할 계획이다.동성화학은 IMF 경제위기 때 현금유동성 위기에 빠졌었다. 이때 핵심부문인 신발용 접착제 사업을 분사해 매각했다. 동성NSC 매각으로 동성화학은 경영정상화를 이룬 셈이다. 이와 함께 ICI와 폴리우레탄(Polyurethane) 분야에서의 제휴를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동성NSC 입장에선 ICI의 자회사인 내쇼날스타치가 보유한 풍부한 기술정보를 차세대 제품개발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전사장은 품질과 기술만큼이나 환경과 사용자들의 안전을 중시하는 데 그의 경영철학이 있다. ISO9002와 ISO14001 인증을 획득한 데 이어 환경영향 평가, 자체 안전점검 활동 및 비상사태 대비훈련 등 생산직원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넘버원’ 제품 해부노버프(NOBUFF) 접착제마찰력 없어도 ‘착착’ 접착력 우수92년 전사장에게 장영실상을 안겨준 혁신적인 신발용 접착제다. 이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신발 접착 공정에서 접착면을 문질러 거칠게 해야만 했다. 접착면이 미끄러우면 잘 달라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버프 접착제는 접착면에 마찰력이 없어도 잘 붙도록 고안됐다. 따라서 이 접착제를 사용할 땐 접착면을 문질러야 하는 번거로운 선행 작업이 필요없다.이와 함께 소재 제한도 덜 받게 된다. 이는 다양한 신발 소재를 제시하는 고급 스포츠화 브랜드들의 요구에 딱 들어 맞았던 것이다. 또 공정의 간소화를 가져와 그만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돼 생산공장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신발은 비 눈 바람 자외선 온도변화는 물론 수많은 굴곡 인장 압착 복원 마찰 충돌 등을 모두 견뎌내야 한다. 따라서 고성능 접착제가 필요하다. 신발의 제조원가에서 접착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되지만 이것이 없으면 신발을 만들 수 없다. 노버프시리즈는 피혁, 다공성 재료, 원단 고무, PVC 등 천연소재와 합성소재를 포함, 1백종이 넘는 소재에 적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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