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출력 레이저 마커 세계 80여개 업체에 납품… 경쟁상대 없어 당분간 '독야청청'
EO테크닉스의 성규동(44) 사장은 레이저로 세계시장을 제패한 중소기업인이다. 성사장이 개발한 레이저 마커는 세계 반도체 생산기지로 불리는 동남아지역에서 각국별 40~7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성사장의 레이저 마커는 마이크론,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 AMD(에이엠디) 등 80여개의 해외 유명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공급되고 있다. 레이저 마커는 반도체 칩에 상표 및 제조번호를 레이저로 적어 넣는 기계다.지난해 EO테크닉스의 총매출은 전년대비 88% 증가한 3백63억원. 총매출의 80%를 레이저 마커가 차지하고 있다. 성사장은 “올해는 반도체 경기하락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최소한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거나 약간 웃도는 실적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올해는 웨이퍼 마커, PCB드릴러 등 신제품의 매출비중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기 때문이다.서울대 전자공학도 시절부터 레이저에 흥미를 가졌던 성사장은 80년대 초반 대우중공업에 입사하면서 ‘레이저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대우중공업은 기계 등의 절단수단으로 레이저를 이용하고 있었다. 성사장은 이때 레이저를 기계부문이 아닌 전자부문에 응용하면 폭발적인 수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80년대 초반부터 전자산업이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사장은 대우중공업 근무시절 레이저 관련 해외전시회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녀 어떤 해는 해외전시회 참관 후 가져온 카탈로그만 20여m 높이에 달할 정도였다.처음 성사장이 개발에 도전한 것은 레이저 트리머였다. 이는 전자부품들을 미세한 단위로 자르는 첨단장비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전자산업이 급성장하자 고가의 레이저 트리머를 외국에서 1년에 20~30대 수입하고 있었다. 이에 성사장은 레이저 트리밍기를 국산화하기로 하고 먼저 레이저 마커 개발에 나섰다. 레이저 마커에 첨단 측정장치를 장착한 것이 레이저 트리머였기 때문이다. 성사장은 1년여만인 지난 85년 레이저 마커를 개발했지만 국내 기업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너무 앞서 개발돼 국내수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성사장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당시 레이저 쇼가 큰 인기를 끌자 성사장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레이저 마커를 레이저 쇼 장비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이때는 고가의 레이저 쇼 장비를 전량 일본 등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성사장의 국산 레이저 쇼 장비는 단기간에 국내시장 점유율 50%를 훌쩍 넘겼다.협력사 계약파기 등으로 한때 좌절도성사장이 레이저 마커 사업을 본격화한 것은 지난 89년 EO테크닉스를 설립하면서다. 하지만 사업 초기 성사장의 제1주력사업은 레이저 소스였고 레이저 마커 사업은 제2사업으로 밀렸다. 당시 레이저 소스사업은 모든 전자제품을 소형화시키는 원천적인 기술로써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따라서 시장규모 또한 레이저 소스가 마커시장의 두배를 훨씬 넘고 있었다. 성사장은 레이저 소스 사업에 온 힘을 쏟았지만 아끼던 직원이 경쟁자로 돌변하고 미국 협력사가 등을 돌리면서 급기야 97년 이 사업을 접었다.지난해 EO 테크닉스의 총매출액은 전년대비 88%증가한 3백63억원, 총매출의 80%를 레이저 마컥 차지하고 있다당초 성사장의 제2의 사업이었던 레이저 마커는 아남산업(현 암코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아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 국내 유수의 반도체회사들은 일본산 등 외국 마커를 수입해서 사용했지만 아남이 이의 국산화를 성사장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국산 레이저 마커는 아남과 외국 반도체 제조회사들이 일부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진가를 조금씩 얻기 시작했다. 물론 세계 레이저 마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및 독일기업 등 경쟁사들의 견제가 심했다. 95년 성사장이 아남의 필리핀 현지공장에 레이저 마커 2대를 수출하자 현지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독일 경쟁사가 세계 네트워크 망을 총동원해 시장진출에 제동을 거는 등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성사장은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필리핀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장으로 수출지역을 확대해 나갔다.성사장이 국산 레이저 마커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먹혀 들었기 때문이다. 성사장은 경쟁사인 독일 로핑지나르의 OEM전략과 미국회사 지에스아이루모닉스의 대리점전략의 장단점을 철저히 연구해 틈새전략을 짰다. 해외에서 공급업체를 찾는 글로벌 아웃소싱과 현지에 법인 및 사무실을 두고 AS를 강화하는 현지화전략이 그것. 성사장은 “글로벌 아웃소싱 전략으로 해외동향을 발빠르게 파악, 발맞춰 가기가 수월했다”고 설명했다.99년 싱가포르 전시회 통해 세계시장 석권하지만 무엇보다도 성사장의 AS현지화 전략이 빅히트를 쳤다. 성사장은 필리핀을 시작으로 미국 싱가포르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현지에 법인을 세워 영어가 가능한 서비스맨들을 경쟁사들보다 두 배 이상 배치하는 AS강화 전략을 펼쳤다. 성사장의 이런 전략은 미국 및 독일 등 경쟁사들이 인건비 등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서비스맨들을 늘리지 않자 현지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물론 성사장도 글로벌화를 위해 1년의 반인 1백80일을 해외에서 보냈다.성사장은 “현지법인을 세우니까 찾아오는 고객들도 많아졌고 나중엔 이들로부터 경쟁사들의 정보를 얻어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가 편했다”고 말했다. 성사장은 고객들로부터 상대방 제품의 장점을 들으면 늦어도 3~6개월 안에 똑같은 서비스나 제품을 선보였다. 그러다 보니 하자 있는 제품에 대한 리콜 등으로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 직원들은 성사장의 ‘미투(Me Too)’ 전략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드디어 성사장은 지난 99년 싱가포르 전시회를 통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싱가포르 진출 3년만의 일이었다. 성사장은 99년 5월에 열린 싱가포르 전시회에 6곳의 부스를 마련, 야심작으로 개발한 고출력 다이오드 레이저 마커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는 기존의 것보다 출력이 20% 정도 향상된 마커였다. 당시 막강한 경쟁사였던 독일 기업은 성사장이 고출력 마커를 그것도 자사의 OEM업체들을 통해 선보이자 허를 찔린듯 충격을 받아 자신의 제품을 아예 전시조차 못했다 한다. 그해 성사장의 레이저 마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전년(85억여원)의 두 배가 넘는 1백9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세계 1위에 당당히 올라섰다.올초엔 미국 경쟁기업 마저 전략실패로 크게 뒤처져 성사장은 당분간 세계 레이저 마커 시장의 최고 파워맨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넘버원’ 제품 해부웨이퍼 레벨 레이저 마커 ‘wsCSP2000’초소형 칩 제조에 최적 ‘경쟁력’EO테크닉스의 레이저 마커는 레이저를 이용해 반도체 및 웨이퍼의 칩 표면 또는 FPD 기판(유리) 내부 등 각종 재질의 표면에 제품 종류, 로고 및 상호, 조립된 날짜 등 각종 정보를 레이저로 새겨 넣는 장비다. 이 장비는 정전기 발생이 없고 1초당 1천자까지의 고속 마킹이 가능할 뿐 아니라 장비의 콤팩트화 및 자동화가 쉬워 대부분의 반도체회사들에서 적용되고 있다. EO테크닉스가 생산중인 레이저 마커는 반도체 레이저 마커, 웨이퍼 마커, 레이저 글래스 마커 등 세종류다.이 중 EO테크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웨이퍼 레벨 레이저 마킹장비 ‘wsCSP2000’은 세계 굴지의 AT&T그룹의 루슨트사에 납품되고 있다. 이 장비는 웨이퍼 레벨 패키징 공정에 최적화된 웨이퍼 레벨 레이저 마킹 장비로 반도체 칩 회로가 이뤄진 웨이퍼 윗면의 기하학적 정보를 화상으로 인식해 이를 웨이퍼 아래면 전체 칩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마킹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 장비는 제조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제조원가를 40% 가량 절감하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 장비는 이동 전화기나 휴대형 정보기기 등에 필수적인 초소형의 반도체 제조에 적합해 향후 반도체 업계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